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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설왕설래] 대통령의 애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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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사형선고를 받은 안중근이 붓을 들었다. 뤼순 감옥의 늦겨울 한기가 망국인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견리사의 견위수명(見利思義 見危授命)’이라고 쓴 뒤 손바닥 도장을 찍었다. 이익을 보면 의로움을 생각하고 나라가 위태로우면 목숨을 바친다는 뜻이다. 그는 감옥을 찾은 동생들에게 짤막한 유언을 남겼다. “천국에 가서 대한독립의 소리가 들려오면 나는 춤을 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미국 독립전쟁 때 해엘이라는 앳된 청년이 조지 워싱턴 장군에게 입대를 허락해 달라고 애원했다. “아직 어려서 전투에 참가할 수 없네.” “그래도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입니다.” 마침내 군에 들어간 청년은 빵 장수로 위장해 첩보활동을 하다 적에게 붙잡혔다. 모진 고문에도 끝까지 비밀을 지키고 사형장으로 끌려갔다. “아, 원통하다! 나라에 바칠 목숨이 왜 하나뿐이란 말인가.” 해엘이 남긴 최후의 말은 모교 하버드대학교에 세워진 그의 동상에 적혀 있다.

1907년 한 중국 청년이 일본에 유학을 갔다. 당시 각국 유학생들은 나라별로 따로 화장실을 썼다. 그가 보니 중국인 화장실이 가장 더러웠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가장 깨끗해졌다. 마침 교장이 밤중에 학교를 둘러보다 화장실을 청소하는 학생을 보았다. 교장이 물었다. “공부하기도 바쁠 텐데 어째서 청소하는가?” “사람들이 중국인 화장실이 제일 더럽다고 놀려댑니다. 조국의 명예를 위해 매일 청소하고 있습니다.” 교장은 특별장학금을 주어 학생을 격려했다. 그가 훗날 중국 총통에 오른 장제스다.

한·미·중 3국 젊은이에게 관통하는 마음은 애국심이다. 애국은 한자말로 忠(충)을 의미한다. 忠은 풀어쓰면 ‘中心(중심)’이다. 중심에 있는 참마음이자 의로운 마음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모처럼 애국심을 소환했다. 그제 소비 촉진 행사에 참석해 “과거엔 아끼고 저축하는 것이 애국이었지만 지금은 소비가 애국”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의 애국은 중심에 있지 않고 늘 한쪽으로 치우쳤다. 조국, 윤미향, 윤석열을 둘러싼 논란에서도 의(義)보다 정파적 이익을 앞세웠다. 대통령은 애국을 말할 자격이 없다.

배연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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