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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9 (수)

AIDS와 HIV, 오해와 편견 [오래 전 ‘이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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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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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후천성 면역결핍증(에이즈) 감염자가 지난해말 1000명을 넘어선 데 이어 올해 상반기에만 110명이 추가로 확인됐다. 3일 국립보건원에 따르면 지난 1~6월 에이즈 바이러스(HIV) 감염자 110명(여자 14명)이 추가로 확인돼 6월 말 현재 전체 감염자 숫자가 1173명(여성 186명)으로 늘어났다. 이 기간 중 21명의 감염자가 환자로 전환되고 28명이 숨져 현재 생존한 감염자는 911명인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같은 기간(1~6월) 신규 감염자가 1997년 56명에서 98년 64명, 99년 88명, 올해 110명으로 매년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감염경로가 확인된 1021명 중 성접촉에 의한 감염이 981명으로 96%를 차지했으며 접촉대상은 국내 이성이 432명, 국외 이성이 277명, 동성연애 272명 등으로 분류됐다. 한편 지난 6개월 동안 에이즈정보센터에 전화나 방문을 통해 상담한 사례가 2930건이나 됐고 PC통신, 인터넷을 통한 정보이용사례는 181만여건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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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단체들이 지난해 11월 세계 에이즈의날(12월 1일)을 앞두고 서울역광장에서 ‘HIV 양성반응’과 ‘긍정’의 의미를 동시에 담은 ‘POSITIVE’ 플래시몹을 펼치고 있다. 김정근 기자 jeong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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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오늘 경향신문 사회면에는 ‘에이즈 감염 급증, 상반기 110명 추가확인···총 1173명’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제목 그대로 국내의 에이즈 감염자 수가 급증하고 있으며 감염자의 대부분이 성적 접촉에 의해 감염됐고, 접촉대상은 동성보다는 이성인 경우가 많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국내에서 첫 HIV 감염자가 확인된 것은 1985년입니다. 질병관리본부 자료에 따르면 1985년 국내에서는 내국인 남성과 외국인 남성 각각 1명씩이 감염자로 확인됐습니다. 첫 HIV 감염자가 확인된 지 35년이 지났지만 한국 사회에는 여전히 HIV와 AIDS에 대한 오해, 그리고 편견들이 존재합니다. 가장 큰 오해는 HIV와 AIDS를 혼동하는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여전히 헷갈려하는 HIV와 AIDS 가운데 HIV는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uman Immunodeficiency Virus)의 줄임말입니다. 코로나19 사태를 일으키고 있는 코로나바이러스와 마찬가지로 사람을 감염시키는 바이러스입니다. HIV 감염인은 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체내에 보유하고 있는 사람을 뜻합니다. AIDS는 후천성면역결핍증(Acquired Immune Deficiency Syndrome)의 줄임말로 HIV에 감염된 후 면역력이 떨어지면서 각종 질환, 합병증 등이 발생하는 경우를 뜻합니다. HIV에 감염된다고 해서 모두 AIDS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며 HIV에 감염되고도 모른 채 지나가는 이들도 있을 수 있는 것이지요.

다음으로 큰 오해를 사고 있는 부분은 HIV가 다른 이에게 감염되는 경로에 대한 것입니다. HIV 감염인과 음식을 먹거나 손을 잡는 등 접촉을 하고, 같이 운동을 하면 HIV에 감염된다, 감염인과 키스를 하면 HIV에 감염된다, 모기를 통해서도 HIV에 감염될 수 있다는 등의 얘기들은 모두 과학적 사실과는 거리가 먼 내용들입니다. 우선 음식에 들어간 HIV는 생존할 수 없으므로 HIV 감염을 일으킬 수가 없습니다. 또 HIV는 성관계나 상처, 점막 등을 통해 상대방의 몸속으로 들어가야 감염될 가능성이 있고, 일상적인 신체접촉으로 교환될 수 있는 체액인 땀에는 극히 소량의 바이러스만 들어있기 때문에 설령 상대방의 몸 안으로 들어간다 해도 HIV 감염을 일으킬 수 없습니다. 키스를 통해서도 HIV 감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침에는 감염을 일으킬 만한 충분한 양의 HIV가 들어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HIV 감염인과 성관계를 가질 경우의 감염 확률 역시 낮은 평입니다. 1회 성관계로 감염될 확률은 0.1~1%입니다. 다만 이는 평균 감염률이고, 한 번의 성관계로도 감염될 가능성은 존재하기 때문에 성관계 때 콘돔 사용을 습관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건당국은 권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편견은 HIV에 감염되면 바로 죽게 된다는 것인데, 이 역시 사실과는 다릅니다. 아무 치료를 받지 않을 경우에도 HIV에 감염되고, 면역결핍으로 인한 사망에 이르기까지는 약 10년~12년 정도의 기간이 걸립니다. 만약 올바른 치료와 건강관리를 한다면 30년 이상 건강하게 살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해 에이즈는 현재 만성질환으로 분류돼 있습니다. 그룹 퀸의 프레디 머큐리가 HIV에 감염돼 세상을 떠난 것은 이제 옛날 얘기가 된 것입니다. 현재 HIV 감염인들이 복용하는 치료제는 HIV의 증식을 억제해 질병의 진행을 지연시키는 약입니다. 꾸준한 약제의 복용을 통해 감염인들도 얼마든지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HIV에 감염되려면 적절한 치료를 하고 있지 않은 HIV 감염인의 혈액이나 체액 등이 혈관, 상처, 점막 등을 통해 다량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치료를 잘 받고 있는 HIV 감염인의 경우는 어떤 경로로 접촉하든 감염 가능성은 극히 낮습니다. 국제에이즈학회(IAS)는 적절한 치료로 몸 속 HIV가 극히 줄어들어 ‘미검출’ 단계로 떨어지면 피임기구 없는 성관계를 할지라도 감염되지 않는다고 설명합니다.

이 같은 과학적 사실들에 대한 오해가 많다보니 한국 사회에는 HIV 감염인에 대한 편견이나 차별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HIV 감염인의 ‘전파매개행위’를 금지하는 ‘에이즈예방법 제19조’가 대표적인 차별 사례로 꼽힙니다. 에이즈예방법 제19조는 HIV 감염인이 혈액이나 체액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전파매개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고, 제25조의2는 전파매개행위를 하면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내용입니다.

이에 대해 인권단체들은 막연한 공포를 부추기는 법조항이라고 비판해 왔습니다. 법 규정이 모호한 내용을 담고 있는 데다, 감염인에게 사회적 낙인을 찍는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지적이었습니다. 이 같은 비판이 이어지면서 이 법조항들은 현재 헌법재판소의 심판대에 오른 상태입니다. 서울서부지법은 지난해 11월 에이즈예방법 제19조와 제25조의2가 위헌인지 판단해달라는 내용의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결정한 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20년이 지난 현재 국내의 HIV 감염 현황은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마침 지난 3일 질병관리본부가 발간한 지난해의 HIV/AIDS 신고 현황 연보를 보면 지난 35년 동안의 변화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신규 HIV/AIDS 감염인은 1222명으로 2018년에 비해 비 16명(1.3%) 증가했습니다. 연간 신규 감염인 수는 20년 전보다 10배 이상 늘어났지만 한국의 인구 10만명당 AIDS 환자와 HIV 감염인 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가운데 두번째로 적습니다. 2017년 한국의 인구 10만 명당 AIDS 환자는 0.3명, HIV 감염인은 2.0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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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ECD 국가별 HIV/AIDS 발생 현황. 질병관리본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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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2명 가운데 내국인은 1005명으로 2018년 대비 16명 증가했고, 외국인은 217명으로 전년과 같은 수치를 기록했습니다. 성별로는 남자가 1111명(90.9%)으로 대부분을 차지했고, 여자는 111명으로 9.1%로 나타났습니다. 연령별로는 438명(35.8%)인 20대와 341명(27.9%)인 30대가 전체의 3분의 2에 가까운 63.7%를 차지했습니다.

감염 경로에서는 다수가 성 접촉에 의한 감염으로 나타났습니다. 신규 감염인 중 내국인 1005명에 대한 감염경로 조사에서 821명(81.7%)이 성 접촉으로 인한 감염이라고 응답했습니다. 이 가운데 동성 간 성 접촉에 따른 감염은 442명(53.8%), 이성 간 성 접촉은 379명(46.2%)으로 나타났습니다.

검사를 받게 된 동기로는 증상이 나타나면서 질병 원인을 확인하기 위한 경우가 332명(35.9%)으로 가장 많았고, 자발적 검사가 273명(29.5%), 수술 전 검사가 175명(18.9%)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처럼 감염인이 늘어난 것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우선 검사 자체가 늘어나면서 감염 사실이 밝혀지는 경우가 많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앞서도 설명드린 것처럼 HIV에 감염되고도 별다른 이상없이 일상생활을 영위하던 이들 중에 우연히 다른 질병으로 수술을 받게 되거나 군에 입대하기 전 검사 등으로 감염 사실이 확인되는 경우도 있다는 것입니다. 성 문화가 과거와는 달라진 것 역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렇게 HIV와 AIDS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줄이다보면 차별 역시 줄어들 수 있을 것입니다. HIV는 대부분 성 접촉이라는 경로로 감염되며 콘돔을 끼면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이 이미 입증돼 있기도 합니다. HIV 감염인 역시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일상생활을 영위할 권리가 있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HIV 감염에 대한 예방, 진단, 치료 접근성이 높아져 감염인이 오랫동안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음을 강조한 바 있습니다. 질병관리본부 정은경 본부장은 “에이즈는 전 세계적으로 치료제 개발로 인해 충분히 관리 가능한 만성 감염질환”이라며 “이에 따라 국가 정책도 질병 예방, 조기 진단과 치료에 역점을 두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정 본부장은 또 “HIV 감염 예방을 위해서는 안전한 성 접촉 등 예방수칙을 준수하고, 감염 의심이 되는 사람은 전국 보건소를 방문하여 조기에 무료 검사(익명검사도 가능) 받을 것”을 당부했습니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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