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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8 (수)

아베 절친 가토의, 가토를 위한 ‘日 군함도 역사왜곡’ [세계는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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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와 가토’의 커넥션 / 강제동원 피해 왜곡 앞장 ‘가토 고코’ / 세계유산 등재 때 日 고문으로 참여 / 유네스코 등재 조건 가장 잘 알지만 / 수년간 치밀하게 강제동원 부인 행보 / “상황의 희생자, 가해자는 없다” / 센터 개관 전 미디어 공개행사서 궤변 / 시대 잘못 만난 것 치부… 강제성 부인 / 아베정부서 100억대 예산받아 논란 / 아베 집안과 대를 이은 절친 / 양쪽 집안 아버지 때부터 긴밀한 관계 / 가토, 왜곡 증언 모아 산업유산센터 전시 / 아베 ‘역사수정주의’ 실현에 적극 앞장

세계일보

지난 26일 산업유산국민회의 운영사무국이 5층에 입주한 일본 도쿄도 신주쿠의 건물. 도쿄=김청중 특파원


지난달 26일 도쿄 주오구 니혼바시의 철강회관 6층. 일본의 일반재단법인 산업유산국민회의(이하 국민회의)가 홈페이지에 사무국 주소로 올린 곳이다. 6층 안내도에는 일본프로젝트산업협의회, 드럼통공업회 등의 이름이 있으나 국민회의는 없다. 홈페이지에 운영사무국이라고 쓰인 곳으로 전화했다. 사무국과 운영사무국의 차이를 묻는 말에 관계자는 답변을 피한 채 “직원이 출근하는 곳이 운영사무국”이라고 했다. 국민회의 운영사무국은 도쿄 신주쿠 요쓰야산에이초 6층 건물의 5층에 입주하고 있었다.

◆가토의, 가토에 의한, 가토를 위한 왜곡

국민회의는 한국인 등의 강제동원 피해 왜곡에 앞장서고 있다. 2013년 9월 설립된 국민회의는 나가사키 하시마탄광(일명 군함도) 등 강제노역 시설 7곳이 포함된 일본 산업시설 23곳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주도했다. 지난 3월31일 도쿄 신주쿠구 와카마쓰초의 총무성 제2청사 별관에서 개관한 산업유산정보센터(이하 센터)를 정부 위탁을 받아 운영하는 단체이기도 하다. 센터는 일본 정부의 약속과 달리 강제동원 피해를 부정·왜곡하는 선전물을 전시해 한·일 갈등의 새로운 요인이 됐다.

국민회의가 입주한 건물의 부동산 등기부와 법인 등기부를 열람했더니 이름 하나가 부상했다. 가토 고코(加藤康子·61·이하 가토). 이 건물의 소유주는 웨딩사업과 여행업 등으로 신고된 주식회사의 미켈란젤로이고, 대표이사 마이클 메너의 아내가 바로 가토다.

가토는 국민회의와 센터의 전부이자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국민회의는 홈페이지에서 전무이사 가토를 설립자로 소개하고 있다. 그는 문제의 센터 수장도 겸하고 있다. 지난달 14일과 30일 방문한 센터는 전시패널에 1999년 1월 출간된 가토의 저서(산업유산-지역과 시민의 역사로의 여행)를 세계문화유산등재의 출발점으로 표시하고 있었다. 이번 사태의 시작이 바로 그라는 의미다. 센터가 관람객에게 상영하는 30분 정도 영상에서도 가토는 중심인물이다.

일반 관람에 앞서 지난달 14일 미디어 공개행사에서 가토는 2015년 7월 세계문화유산 등재 당시 일본 정부 대표로서 사토 구니 대사가 약속했던 희생자를 기리는 조치는 어디 있느냐는 질문에 “희생자는 상황의 희생자(victim of circumstances)”라고 주장했다. 시대를 잘못 만난 것이지 구체적인 희생자가 없으니 가해자는 없다는 해괴한 논리의 발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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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토 고코 산업유산국민회의 설립자(전무이사) 겸 산업유산정보센터장(앞줄 왼쪽)이 2015년 7월5일 독일 본에서 열린 제39회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일본 정부를 대표해 당시 사토 구니 주유네스코 일본대사(〃 오른쪽)가 희생자를 기리는 조치를 하겠다고 약속하는 내용을 듣고 있다. 외교부 유튜브


국민회의 운영사무국은 105㎡ 넓이 5층을 더바캉스코포레이션(해외별장 콘도미니엄 알선·통역·여행업 신고 회사)이라는 기업과 함께 쓰고 있다. 더바캉스의 전 대표는 가토의 본인이고, 현 대표는 딸이다. 가토의 국민회의는 남편 회사 건물에서 딸 회사와 동일 공간을 쓰고 있는 것이다.

법인 등기부에 따르면 국민회의는 공고를 관보에 게재한다고 했다. 설립 시점 이래 정부 관보를 검색했지만, 국민회의의 공고는 한 건도 없어 운영사무국의 임차료가 포함된 예결산 신고는 확인할 수 없었다. 고바야시 히사토모 강제동원진상규명네트워크 사무국 차장은 “(설립 이래) 7년간 공고를 하지 않는 것은 법률위반 행위”라며 “(국민회의가) 위법단체 상황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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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총리와 대를 이은 특수관계

아베 신조(安倍晋三·66) 총리 정권은 사실상 가토 개인의 수족이라고 할 수 있는 국민회의에 2017년 1월∼2020년 3월 3년간 100억원대의 예산을 지출했다.

일본 정부의 조달 포털사이트에 따르면 국민회의는 센터 관련 예산을 포함해 내각관방과 내각부 사업 6건을 총 8억5671만9000엔(약 94억1796만9000원)에 낙찰받았다. 일본 정부는 낙찰 금액에 소비세(2019년 10월1일부터 10%, 그 이전 8%)를 반영한 금액에 계약하고 있어 총 9억3571만4520엔(102억9285만9720원)을 지출했다. 일본 정부가 같은 기간 세계문화유산 및 센터와 관련해 지출한 것으로 확인된 예산 15억7232만4984엔(낙찰 금액 기준) 중 54.5%가 국민회의 몫이다. 일부에서 아베 정권과 국민회의에 대해 유착관계라고 표현하는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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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총리와 가토는 대를 잇는 인연이다. 두 사람의 부친인 아베 신타로(安倍晋太郞·1924∼1991) 전 외무상과 가토 무쓰키(加藤六月·1926∼2006) 전 농림수산상은 절친으로 같은 파벌이었다. 1980년대 아베 신타로가 총리 후보로 거론될 때 가토 무쓰키는 아베파의 사천왕(四天王) 중 한 명이었다. 두 집안은 부친 사망 후에도 좋은 관계를 유지해 가토는 아베 총리의 친구로 불린다.

아베 총리의 최측근 가토 가쓰노부(65) 후생노동상과 가토는 처형제부 관계이기도 하다. 대장성(현 재무성) 관료 출신인 가토 후노상은 데릴사위로 들어가 성을 바꿨다. 가토 무쓰키는 원래 결혼시키려던 장녀 가토가 미국 유학을 떠나자 둘째와 혼인시켰다고 한다. 아소 다로 부총리는 포스트 아베 후보로 가토 후노상을 거명하기도 했다.

가토는 아베 총리 덕분에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앞두고 관련 업무 고문격인 내각관방 참여(參與·2015년 7월2일∼2019년 7월31일) 직을 맡았다. 2015년 7월5일 제39회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문제의 시설이 등재될 때 일본 대표단에 소속돼 사토 대사 발언을 바로 대사 오른편 두 번째 자리에서 들었다. 경위를 잘 알고 있는 그가 일본의 약속 뭉개기를 주도하고 있다는 점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가토는 한때 구설에 올랐다. 2016년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가 세계 각국 기업인, 법인의 조세 회피 의혹을 공개한 파나마 페이퍼스 사건 때 일본의 공직자로서 유일하게 휘말렸다. 가토는 의혹이 제기되자 “당시 (문제 회사의) 대표자는 다른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아베 정권도 파고들지 않아 이 파문은 유야무야 끝났다.

가토는 2019년 1월 우익 성향의 잡지 월간 하나다에 내각관방 참여라는 직책을 앞세워 ‘군함도 전(前) 주민이 말하는 징용공의 전(全)진상’이라는 글을 썼다. 그는 이 글에서 세계문화유산 등재 시 한국 시민단체의 반대활동을 계기로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됐으며, 이후 국민회의가 3년간 하시마 등 조선인이 일한 곳에서 한국 측 주장을 반박하는 증언을 채취했다고 썼다.

사실 강제동원은 일본에서도 정설이다. 지난 3월 문부과학성의 검정을 통과한 중학교 교과서들에도 수록돼 있다. 한 예로 도쿄서적 사회과(역사 분야·1∼3학년용) 교과서는 이렇게 적고 있다. “일본은 식민지나 점령지에서도 혹독한 동원을 했다. 다수의 조선인이나 중국인이 의사에 반해 끌려와 광산이나 공장 등 열악한 조건에서 노동을 강요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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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동원 역사를 부정·왜곡하는 산업유산정보센터.


국민회의는 가토 표현대로 ‘정설에 어긋나는 증언’을 그러모으는 활동을 한 주체이고, 그 결과물이 센터다. 이는 결국 가토 본인이나 국민회의, 센터가 아베 정권에서 만연된 역사수정주의와 맥을 같이하고 있음을 자인하고 있는 셈이다.

남상구 동북아역사재단 한일문제연구소장은 “사토 대사 옆에 앉았던 가토씨는 사토 대사의 발언을 입증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기 위해 노력한 것이 아니라 그와 반대되는 조치를 취해온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강제동원도 없었고 강제노동도 없었다는 주장은 결국 2015년 사토 대사의 발언이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속임수였다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결국 세계유산이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고 미화하는 수단으로 이용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도쿄=김청중 특파원 c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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