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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최선희 "美 마주앉을 필요없다"···이례적 담화속 숨은 계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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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주 비건 방한 앞두고, 미 독립기념일 맞아 담화

"미국, 북미 대화를 국내 정치적 도구로 여겨"

"미국의 장기적 위협관리 전략적 계산표 짜놔"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4일 “조미(북·미) 대화를 저들의 정치적 위기를 다뤄나가기 위한 도구로밖에 여기지 않는 미국과는 마주 앉을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최 제1부상은 두 차례의 북ㆍ미 정상회담을 포함해 미국과의 협상 실무를 챙겨온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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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무성 제1부상.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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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부상은 이날 발표한 담화에서 오는 11월 미국 대통령선거 전 북ㆍ미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과 관련, “조미 관계의 현 실태를 무시한 수뇌회담설이 여론화하는 데 대해 아연함을 금할 수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최 부상은 이어 “미국이 아직도 협상 같은 것을 갖고 우리를 흔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라며 “우리는 이미 미국의 장기적인 위협을 관리하기 위한 보다 구체적인 '전략적 계산표'를 짜놓고 있다”고 강조했다.

오는 11일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지지율이 떨어지며 재선 레이스에 노란불이 켜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선 전 북ㆍ미 정상회담을 전격 시도할 가능성이 최근 한국과 미국에서 제기되자 선을 긋고 나선 것이다.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특별대표는 지난달 29일 “11월 대선 전 대면 정상회담은 열릴 것 같지 않다”고 언급했지만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비롯해 미국 내에선 오는 10월 정상회담 가능성이 제기됐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달 30일 한-EU(유럽연합) 정상회담에서 “미국 대선 전에 북ㆍ미 간 대화 노력이 한 번 더 추진될 필요가 있다”며 한국의 촉진자 역할 의지를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최 부상이 직접 공식 담화를 낸 건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북ㆍ미 대화에 관여했던 전직 정부 고위 당국자는 “비건 부장관의 다음 주 방한은 북·미 협상 재개를 위한 한·미 공조 방안을 논의하는 등 대화의 바퀴를 굴리려는 움직임”이라며 “북한이 비건 대표가 이런 움직임을 보이자 최 부상이 나서서 자신들의 주장을 미국이 수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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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이 지난해 3월 베트남 하노이 멜리아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북미 2차 정상회담이 결렬된 데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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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화에서 최 부상은 표면적으로 북ㆍ미 대화를 거절했지만, 행간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과 대선 정국에서 어려움에 부닥친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대북 제재 해제 등 북한의 주장을 수용하라는 압박일 수 있다는 얘기다. 지난 2017년 7월 미국의 독립기념일을 기해 장거리 미사일을 쐈던 북한이 북ㆍ미 협상이 중단된 상황에서도 군사적 도발이 아니라 담화를 냈고 담화에 원색적인 비난이 없다는 점도 이런 분석을 뒷받침한다.

이와 관련, 일각에선 최근 북ㆍ미 간에 비공개 접촉이 있었지만, 북한이 미국의 제안에 만족하지 않아 이번에 최 부상이 직접 공개적으로 나섰다는 관측도 있다. 한 소식통은 “북한과 미국이 지난해 10월 스웨덴 실무협상 이후 대화가 중단된 듯하지만, 뉴욕 채널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대화 재개를 시도했을 것”이라며 “비공개 접촉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 내에서 정상회담 필요성이 제기되자 ‘마주 앉을 필요가 없다’며 벼랑 끝 전술을 쓰는 차원일 수 있다”고 밝혔다.

전현준 국민대 겸임교수는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와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북한 입장에선 북ㆍ미 관계 개선이 더욱 절실한 상황”이라며 “북한이 지난 3월 대미협상국을 신설한 것을 알리는 담화를 낸 것도 자신들은 협상할 준비가 됐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최 부상은 이날 담화에서 "당사자인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겠는가에 대해선 전혀 의식하지 않고 서뿌르게(섣부르게) 중재 의사를 표명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이라고 언급, 최근 정부의 북·미 대화 중재 노력을 비판했다. 한국을 통하지 않고서도 충분히 미국과 직거래를 할 수 있다는 입장을 강조한 것이다. 개성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이후 남북관계 개선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정부에겐 넘어야 할 산이 많은 셈이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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