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년 개띠 퇴직자의 제주도 1년 살기…쉰한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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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제주 장마는 6월 10일부터 시작되었다. 제주에 내려와 1년 만에 두 번째 장마를 겪고 있다. 비가 쏟아질 때는 마치 온 세상이 물속에 잠겨 있는 듯하다. 남쪽의 한라산이 있는 곳을 바라보면 저만치 야트막한 언덕 너머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북쪽의 바다도 이미 사라졌다. 이 비가 이젠 싫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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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7월초 이곳에 왔을 때도 심한 바람과 함께 비가 내렸다. 그 때 설레는 마음으로 차를 타고 바닷가에 가 바람에 밀려오는 물과 그 물을 때리는 비를 보았었다. 제주 1년 여행 마지막 주를 보내는 지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거실에 앉아 창밖의 비를 바라본다. 열여덟 살부터 시작한 직장생활 40년을 마감하고 정년퇴직하며 이젠 천천히 살자고 다짐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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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정리를 하며 어제 받아온 올레 28 코스 완주증서를 바라보니 지난 일 년 동안 걸은 길이 먼 길이었음을 알겠다. 그간 다녔던 오름과 숲길은 또 얼마나 새로웠는지. 새로 산 올레 수첩을 보며 또 한 번의 완주를 다짐하지만, 이번엔 서둘지 않고 더 오랜 시간, 더 느리게 걷겠다는 생각을 한다. 지난 1년을 돌이켜보면 쫓아오는 이도 없고 밀어대는 이도 없는데 옛날의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여전히 바쁘게 걸었다. 천천히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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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나면 한 해의 마지막 날이다. 새해를 앞두고 늘 무엇인가 삶이 달라질 것이라 기대하고 살아왔지만 지나고 보면 딱히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내가 땀 흘린 만큼만 받으면 다행으로 여겨야 했던 세월이었다. 언젠가 어머니가 늘 세월에 속아 산다고 하신 적이 있었다. 내일은, 다음 달은, 내년엔 다를 것이라 기대하고 살았는데, 늘 달라지는 것 없는 세월이었더란다. 내일 모레 내게 다가올 새해도 올해와 크게 다르지 않겠지. 그렇게 뒤숭숭한 생각 속에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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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 벨 소리가 귀를 찔렀다. 아직 새벽이다. 새해를 하루 앞두고 어머니는 그렇게 가셨다. 그날 밤 요양원의 초인종을 눌러야 했다고 후회하며, 꿈을 꾸는 듯 삼일이 지났다. 어머니를 아버지 곁에 모시고 일가친척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아침에 눈을 뜨니 내 생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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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 샤워를 하고 가방 속에 남아 있던 부의금 봉투를 정리했다. 장례비용 지불하고 남은 돈이었다. 백만 원 단위로 묶어 정리하고 보니 천만 원이 조금 넘었다. 가방에 다시 담아 길을 나섰다. 십오 년 전이던가, 17년 전이던가 돈 때문에 어머니가 궁지에 몰린 적이 있었다. 그 때 내 궁벽함을 눈치 챈 친구가 지방에서 올라와 나중에 갚으라며 천만 원을 어머니께 드리고 갔다. 그도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그가 늘 고마웠다. 가정을 꾸리고 아이 기르다 보니 갚을 엄두도 내지 못한 내 세월이 흘러갔다. 나도 어머니도 그 친구에게 미안했다. 그를 찾아가 어머니가 품고 있었을 마음의 짐을 풀어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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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동북쪽 해안의 조천읍에서 동남쪽 해안의 남원읍까지 제주 동부의 중산간 지역을 거의 직선으로 관통하는 도로가 남조로다. 조천읍에서부터 일주동로, 중산간동로, 번영로, 비자림로 등 서쪽에서 동쪽 해안으로 향하는 길들과 차례로 교차하고 남동쪽에서 마지막으로 서성로와 교차한 후 남원 포구에 닿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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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조로는 양방향으로 각 한 차선 밖에 없는 옹색한 길이지만 제주 동부 관광을 위해서는 매우 중요한 길이다. 이 길 좌우에 제주돌문화공원, 교래자연휴양림, 삼다수숲길, 붉은오름자연휴양림, 사려니숲길, 물영아리오름 등의 숲길과 오름이 있다. 이 길에서 번영로와 비자림로로 방향을 바꾸면 제주 동부의 거의 모든 오름이 차례로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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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다수숲길(제주시 조천읍 교래리 산 70-1)은 누구에게나 익숙한 이름이지만 걸어 본 사람은 많지 않은 길이다. 삼다수숲길은 ‘제주삼다수’ 취수장 뒤의 산림지대에 자리를 잡고 있는데, 오래 전부터 말과 소를 먹이거나 사냥을 위해 다니던 길과 임도를 십여 년 전부터 다시 연결해 제주 동부 숲을 살필 수 있도록 1998년 제주도개발공사와 교래리의 협력으로 만들졌다.
그러나 입구를 찾아가기가 쉽지 않아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찾는 이가 많지 않았는데, 숲길 걷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최근에는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삼다수숲길을 걷고자 할 때 가장 궁금하게 여기는 것이 주차 문제와 길 입구 찾아가는 방법이다. 공식적으로는 교래리종합복지관에 주차를 하도록 안내하고 있지만 삼다수숲길 입구까지 약 2km를 걸어가야 하는데 부담스러운 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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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조로를 따라 남쪽으로 가다가 교래 자연휴양림을 지나면 비자림로와 만나는 교래사거리다. 여기서 300여 미터쯤 직진하면 왼쪽에 교래종합복지회관이 있고, 천미천을 건너는 작은 다리가 보이는데 그 다리 끝에 오른쪽으로 들어가는 샛길이 보인다. 이 길로 2km쯤 가면 삼다수 숲길이다. 다행이 최근 삼다수숲길 입구 가까운 곳에 간이 주차장이 몇 곳이 마련되어 뙤약볕 아래 왕복 4km의 지루할 수도 있는 길을 걸을 필요가 없어졌다.
삼다수 숲길은 체력과 시간에 맞추어 걸을 수 있도록 짜여 있다. 꽃길이라 불리는 제1 코스는 약 1.2km인데 30분 정도 걸으면서 삼다수 숲길의 여러 특징을 단편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길이다. 제1 코스 반환점에서 테우리길이라는 이름의 제2코스로 접어들면 약 5.2 km를 걷게 된다. 테우리는 과거에 말과 소를 관리하는 사람들이었다. 테우리길에서는 인공조림지인 삼나무숲과 편백나무숲은 물론 한라산 동쪽 경사면의 물들이 모여 흐르는 천미천을 살필 수 있으며 다양한 나무들이 경쟁하고 양보하며 자리를 잡고 있는 편안한 자연림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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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코스 분기점에서 오른쪽 길을 선택하면 제3 코스의 8.2km를 걷는다. 제3 코스는 ‘사농바치길’이라 하는데 사냥꾼을 뜻하는 제주어다. 사농바치길에서는 천미천의 다양한 모습을 살피고 붉은오름자연휴양림에서 탐방로 반환점으로 설정해 둔 말찻오름, 오름 분화구에 물을 담고 있는 물찻오름 경사면을 살피며 숲이 변해가는 과정까지도 얼핏 볼 수 있는 길이다. 어디서 하늘을 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숲이 매우 울창하고 깊지만 문득 천미천 건너 오름의 나무들이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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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봄에 찾아오면 제주 세복수초의 화려함에 마음을 빼앗길 것이고, 여름이라면 산수국의 수수한 아름다움을 품게 될 것이며, 가을이 깊어지면 천미천가의 붉은 단풍이 마음을 달굴 것이다. 삼다수 숲길은 동백동산 숲길보다는 다양하고, 올레길이나 한라산둘레길보다는 편리하게 제주의 다양한 숲을 경험할 수 있는 길이다. 적어도 세 번은 찾아와야 할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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