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 윤창현 의원실자료 입수
MB '토건세력'으로 비판했던 文대통령
정부 출범후 3년간 88조 105개 사업 '면제'
실시사업의 5.4배 달해···제도무력화 논란
與, 예타면제 기준 사업비 500억 상향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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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4년차인 올해 7월 현재 예비타당성조사 면제사업 규모가 88조원을 기록하며 앞선 이명박(60조6,000억원)·박근혜(23조9,000억원) 정부를 합한 수치를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문 정부 후반기 들어 예타 시행사업보다 면제사업이 많아지며 사실상 제도가 무력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경제가 5일 윤창현 미래통합당 의원실로부터 입수한 ‘12년간 예비타당성조사 실시 및 면제사업 목록’을 분석한 결과 문 정부는 출범 이후 3년 남짓 총 88조원 규모의 105개 사업에 예타 조사를 면제했다. 이는 문 대통령이 ‘토건세력’이라고 비판했던 이명박 정부보다 27조5,000억원가량 더 많은 액수다.
문 정부 첫해 17조6,000억원, 2년째에 12조9,000억이었던 예타 면제 규모는 3년째 36조원, 4년째에는 21조6,000억원에 이르며 절대적으로 커지는 추세다. 이번 3차 추가경정예산안에도 그린뉴딜 관련 9개 사업이 9,343억원 규모로 통과되며 예타 면제 규모는 더 늘었다. 아직 2022년 본예산이 채 꾸려지기 전인 만큼 규모는 더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3·4년차에는 예타 ‘면제’사업 규모가 ‘조사’사업보다 커지며 대통령이 사실상 제도를 형해화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문 대통령이 ‘국가 균형발전’을 이유로 대규모 토건 예타 면제를 실시한 지난 2019년에는 면제 규모가 36조원으로 실시사업 규모인 15조1,000억원의 2.38배였다. 또 대통령 말 한마디에 긴급재난지원금과 그린뉴딜 관련 사업이 예타를 거치지 않은 2020년에는 면제사업 규모가 실시사업의 5.4배에 달했다.
이처럼 대통령의 말에 수십조원 규모의 사업이 심사를 거치지 않고 시행되는 상황임에도 더불어민주당은 관련법을 개정해 예타 면제사업 조건을 500억원 이상에서 1,000억원 이상으로 완화한다는 입장이다.
윤 의원은 “예타 수행사업보다 면제사업이 더 많으면 재정상태를 건강하게 유지할 수 없다”며 “짜게 먹는 습관이 고혈압·당뇨 등 질병을 유발하듯이 예타 수행사업보다 면제사업이 더 많으면 재정상태가 건강해질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선공약사업에 수조 펑펑…與는 이와중에 "문턱 더 낮추자"
집권 초반 ‘소득주도 성장’과 ‘복지 확대’ 등 대선공약에 집중됐던 문재인 정부의 예비타당성조사 면제는 총선을 1년 앞둔 지난 2019년 24조원 규모의 지역 토건사업으로 확대되며 규모가 크게 증가했다. 정부 후반기에는 비용편익성을 검증하는 사업보다 검증하지 않는 사업이 많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여당은 예타 면제기준을 더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집권 1년 차인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은 21조8,876억원에 달하는 41개 사업에 대해 예타를 면제했다. 이 중 약 13조3,611억원이 대선공약이었던 ‘아동수당 지급’에 쓰였고 2조9,707억원은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으로 인한 부작용을 완화하기 위한 ‘일자리안정자금’에 활용됐다. 2년 차인 2018년에는 ‘청년 중소기업 신규채용 지원’을 위해 지역주도형 청년일자리사업(3조3,607억원), 중소기업 청년내일채움공제(1조7,083억원), 청년구직활동지원금(1조3,252억원) 등이 예타 면제됐다.
이는 문재인 정부 출범 당시 악화된 국제경제상황과 맞물린다. 당시 미중 무역전쟁으로 통상 여건이 나빠지자 정부는 내수경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소득주도성장정책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그 과정에서 사용된 도구가 바로 ‘예비타당성조사 면제’다. 정부는 내수 증진을 위해 일자리안정자금이나 아동수당 등의 정책을 추진하고자 했다. 그러나 해당 사업들의 비용편익성이 보장되지 않자 예타를 면제해 사업성 검증절차를 건너뛴 것이다.
총선을 1년 앞둔 2019년 정부의 예타 면제 정책 방향은 급선회한다. 문 대통령이 앞장서 비판하던 ‘토건사업’에 24조1,000억원 규모의 예타 빗장을 푼 것이다. 문 대통령은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였을 때 이명박 정부가 실시한 22조2,000억원 규모의 예타 면제에 대해 “환경 재앙과 국민 혈세 22조원 낭비”라고 혹평했으나 이보다 1조9,000억원이나 많은 돈을 ‘지역균형발전’이라는 명목으로 풀었다. 문 대통령은 당시 김경수 경남지사가 추진하던 남부내륙철도사업(4조7,000억원 규모)의 예타를 면제했고 평택~오송 복복선화(3조1,000억원), 충북 청주~제천을 잇는 충북선 철도 고속화(1조5,000억원) 등도 사업성 검증 대상에서 제외했다. 이 같은 지역 선심성 예타 면제로 여론이 악화하자 문 대통령은 “제도는 유지돼야 하지만 국가균형발전을 위해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답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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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기야 예타 면제 남발은 ‘예타 면제사업 규모’가 ‘정상 실시’사업을 넘어서는 결과를 초래했다. 2019년 예타 면제사업은 35조9,750억원으로 실시사업(15조484억원)의 2.38배에 달한다. 2020년에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을 위한 긴급재난지원금·저소득층·아동수당 지원(11조5,675억원), 그린뉴딜(5조119억원), 남북철도사업(2조8,520억원) 등 21조6,427억원 규모의 사업이 면제돼 실시사업(4조원)의 5.4배였다. 문재인 정부 마지막 해에도 1~4년 차를 평균한 규모로 예타를 면제한다고 가정하면 총사업비는 약 110조1,000억원까지 치솟는다. 문 대통령 취임 이후 매해 4대강 사업을 할 수 있는 규모다.
문 대통령이 말 한마디로 주요 사업들의 경제성 검증을 건너뛰며 “제도를 무력화시켰다”는 지적은 불가피해 보인다. 예타는 그간 국책사업비의 41%를 절감하는 ‘세금 안전판’ 역할을 해왔다. ‘2018 한국개발연구원(KDI) 공공투자관리센터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1999년 제도 도입 이후 2018년까지 345조7,335억원 규모에 달하는 789개 사업에 대한 예타를 실시한 결과 총 143조원이 절감됐다. 이명박 정부 당시 5년(2009~2013)간 예타가 실시된 사업은 총 261개로 105조2,262억원 규모다. KDI는 이 중 37.6%에 해당하는 39조6,630억원이 절감됐다고 분석했다. 반면 문재인 정부 4년 동안 예타가 정상 실시된 사업은 103개(50조4,931억원)로 이명박 정부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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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도 더불어민주당은 예타 면제의 문턱을 더 낮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민주당 코로나19국난극복위원회는 지난달 24일 활동보고를 발간해 “사회간접자본(SOC)사업에 한정해 예타 대상 기준을 사업비 500억원에서 1,000억원으로, 국고지원 300억원에서 500억원으로 인상하는 국가개정법 개정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2015년 야당이었을 때의 입장을 180도 뒤집은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당시 ‘예비타당성조사 개선 방향’ 보고서를 통해 “대중영합적인 사업이 남발될 경우 재정 경직성에 미치는 압박이 크므로 이에 따른 예비타당성조사는 필요하다”며 박근혜 정부의 예타 면제 정책을 비판했다.
미래통합당은 우선 3차 추가경정예산에 포함된 예타 면제사업들을 다시 예타 실시사업으로 되돌려놓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가재정법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국회가 의결로 요구하는 사업에 대해 예타를 실시해야 한다. 윤창현 통합당 의원은 “대통령의 오류를 바로잡고 건전재정을 확립하기 위해 국회가 정상화되면 소관 상임위원회에서는 가장 먼저 혈세 낭비를 막을 수 있도록 예타 수행을 의결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인엽·구경우기자 insid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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