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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이슈 끝나지 않은 신분제의 유습 '갑질'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 1년, 신고율은 3%…여전한 '직장 갑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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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1년

괴롭힘 신고 3%뿐…직장인 63% "괴롭힘 그냥 참는다"

"회사 너무 싫다" 오리온 20대 직원, 직장 내 괴롭힘에 극단적 선택

아시아경제

사진은 기사 중 특정 표현과 무관.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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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허미담 기자] # 직장인 김모(31)씨는 최근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 그는 "상사가 나만 보면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다. 똑같은 실수를 해도 나한테만 유독 심하게 몰아붙인다"라며 "사소한걸로도 과하게 지적당하니까 요즘은 일할 때도 긴장의 연속"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신고하고 싶어도 상사를 직접 처벌할 방법은 없다더라. 신고해봤자 무슨 소용있겠냐"라고 덧붙였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으로 불리는 개정 근로기준법이 시행 1년을 맞았다. 그러나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법 개정 촉구 목소리가 여전히 나오고 있다. 해당 법에는 가해자에 대한 직접적인 처벌 규정이 마련돼 있지 않고, 4인 이하의 소규모 사업장에서는 법 적용이 되지 않기 때문에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이렇다 보니 직장 내 폭언 및 폭행을 당했다고 호소하는 직장인들도 여전하다. 법안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일부 시민단체는 의무교육 강화 필요성 등을 강조했다.


지난해 7월16일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됐으나 한계는 여전하다.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은 '사용자 또는 노동자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노동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말한다.


이에 따라 현행법상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려면 ▲직장 내에서 지위나 관계의 우위를 이용할 것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설 것 ▲그 행위가 노동자한테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일 것 등 3가지 요건이 모두 충족돼야 한다.


그러나 이를 입증하기는 쉽지 않다. 직장 내 괴롭힘 여부를 증명하기 위해선 피해자가 상대의 폭언 등을 일일이 녹취하거나 목격자인 동료들로부터 진술을 받아야 하는데 이 자체가 쉽지 않은 탓이다.


중소기업에 다닌다고 밝힌 직장인 A(29)씨는 "직장 상사가 어느 순간부터 내 말을 무시하고, 회의할 때도 나만 쏙 빼놓고 다른 팀원들과만 이야기하더라"며 "심부름시킬 때만 나를 찾았다. 커피 심부름은 물론이고 담배 심부름까지 한 적 있다. 억울해서 신고하려고 했더니 내 사례가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판단되지 않아 하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신고를 하더라도 내 사례가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되지 않는다면, 상사는 더 당당하게 회사를 다닐 것 같았다. 또 회사에서도 뒷말이 얼마나 나오겠나. 곤란한 상황이 될 것 같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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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온 익산공장 청년노동자 사망 사건 추모와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사회모임'이 지난달 29일 오전 오리온 익산 3공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시민사회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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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폭언과 폭행을 당했다고 호소하는 직장인의 목소리는 여전하다. 5일 직장갑질119가 지난달 19일부터 25일까지 19~55살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절반(45.4%) 가까이가 지난 1년 동안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들 중 갑질을 신고한 비율은 3%에 불과했다. 응답자의 절반 이상(62.9%)은 갑질을 경험한 뒤 참거나 모른 척 한 것으로 나타났다. ▲개인적으로 항의(49.6%) ▲친구와 상의(48.2%) ▲사직(32.9%) 등의 답변이 뒤를 이었다.


지난 3월에도 오리온 공장에서 일하던 20대 직원이 직장 내 괴롭힘에 시달리다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례가 있었다. 오리온 전북 익산공장에서 일하다 극단적 선택을 한 故 서모(22)씨는 사내 유언비어와 부서 이동 등으로 괴롭힘을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씨는 업무시간 외에도 상급자에게 불려 다녔고 시말서 작성을 강요당해 울면서 고통을 호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사내 연애 중이던 서씨는 선임노동자들에게 "꼬리 친다", "남자 꼬신다" 등의 발언을 들었다며 친구에게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고인이 작성한 유서에도 "오리온이 너무 싫어", "돈이 뭐라고", "이제 그만하고 싶어" 등의 내용이 적혔던 것으로 알려졌다.


오리온 측은 지난달 30일 입장문을 내고 "고용노동부의 조사결과, 고인의 상관이 고인에게 시말서 제출을 요구한 행위에 대해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는 통보를 받았다"며 "고용노동부의 개선 지도와 권고 조치를 이행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직장갑질119 측은 "비교적 처벌이 쉬운 폭행과 달리 폭언을 처벌할 수 있는 모욕죄와 명예훼손죄는 공연성을 요구해 가해자와 피해자만 있는 자리에서 폭언이 이뤄지면 처벌이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법안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해당 법안 내 ▲가해자 처벌 명시 ▲특수인(친인척·원청업체·주민 등) 적용 ▲4인이하 적용 ▲지체없는 조사, 피해자 보호, 가해자 징계 불이행 처벌 등 조항 신설 ▲의무교육 강화 필요성을 강조했다.



허미담 기자 damd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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