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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월 100만원씩 냈는데…美서 뇌수술했다던 팀닥터 황당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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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경북체육고등학교 2016학년도 졸업앨범에 실린 고(故) 최숙현 선수의 사진. 트라이애슬론을 상징하는 싸이클을 들고 있다. [최 선수 유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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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뇌 수술을 집도하고 왔다고 했어요. 그런데 의사가 아닌 운동처방사라니 황당하죠. 그동안 월 100만원씩 냈다는 게 너무 허탈해요.”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팀 출신 A 선수는 ‘팀닥터’ 안 모 씨를 두고 이같이 말했다. 안 씨는 고 최숙현 선수의 폭행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이다. 안 씨는 2014년부터 치료비 명목으로 경주시청팀 소속 선수들에게 개인당 월 100만원씩을 받아왔다. 선수들 역시 그를 ‘팀닥터 쌤’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안 씨는 의사, 물리치료사도 아닌 운동처방사였다. 그는 경주시청팀에서 일하기 전 경북 경산시 한 의원에서 물리치료사 보조로 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무면허’ 팀닥터는 경주시청 트라이에슬론팀에만 있는 건 아니다. 체육계와 의학계에선 “의사가 아닌 사람을 팀닥터라고 부르는 건 체육계의 관행”이라며 “이번 기회에 바로잡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최 선수, '팀닥터'에 치료비로 1500여만원 지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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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 김규봉 감독, 장 모 선수, 김 모 선수가 6일 오전 국회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고 최숙현 선수 사망 사건과 관련 회의에서 의원들 질의에 답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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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씨는 팀닥터 행세를 하며 선수들에게 심리치료까지 했다. 최 선수는 경주시청에 소속돼 있을 당시 ‘심리치료’ ‘치료비’ 명목으로 16차례에 걸쳐 총 1490여만원을 안 씨 계좌로 입금했다. 최 선수의 아버지는 “현금으로 낸 적도 있어 실제 안 씨에게 준 돈은 더 많다”고 했다.

안 씨는 폭행·사기·의료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고 있지만 현재 행방은 묘연하다. 징계 대상에서도 제외된 상태다. 대한철인 3종 협회 혹은 경주시청팀 소속이 아니기 때문이다. 경주시청 측도 “팀닥터 앞으로 배정된 예산이 없고, 그 사람의 존재도 몰랐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안씨는 감독과의 친분으로 지난해 중국 우한에서 열린 세계군인체육대회 국군대표팀에도 합류했다.

문제는 전국에 안 씨와 같은 무면허 ‘팀닥터’가 얼마나 더 있는지는 파악할 수 없다는 점이다. 대한체육회 관계자는 “체육회 차원에선 지도자에 해당하는 감독, 코치 명단만을 관리하고 있을 뿐 팀별 ‘팀닥터’ 명단은 없다”며 “팀 닥터는 보통 각 실업팀 혹은 선수가 개별적으로 고용하고, 공식적인 호칭이 아닌 팀 내 편의상 부르는 호칭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체육계에 '무면허 팀닥터' 만연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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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이애슬론(철인3종 경기) 국가대표 출신 고 최숙현 선수와 전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 운동처방사 안모씨가 살았던 경북 경산의 원룸. 같은 모양의 A(오른쪽)동과 B동이 나란히 세워져 있다.2019년 복귀한 최 선수는 제100회 전국체육대회를 앞두고 제주도 전지훈련을 떠나기 전까지 2~3개월 정도 이 원룸 A동(오른쪽)에서 생활했고, 팀닥터 안씨는 올해 3월까지 1년이 넘는 기간 같은 원룸 B동에서 생활한 것으로 확인됐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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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무면허 팀닥터’ 고용은 체육계에선 흔한 일이라고 했다. 나영무 스포츠의학회 회장은 “규모가 큰 일부 프로야구팀에선 허리전담 의사, 다리전담 의사 등 주치의를 두기도 하지만, 대부분 실업팀에선 의사의 월급을 감당하지 못해 전문자격증이 없는 사람이 팀닥터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 회장에 따르면 국내에서 전업으로 일하고 있는 팀닥터는 단 한명뿐이다. 축구 국가대표팀에만 전업 팀닥터가 있고, 다른 팀엔 의사면허를 보유한 전업 팀닥터는 없다.

그는 “트레이너들이 의사 역할을 하며 잘못된 의학지식을 선수들에게 퍼뜨리는 것도 종종 봤다”며 “실제로 의사가 아닌 사람을 ‘팀 닥터’라고 부르는 관행이 국내 경기팀에서 만연해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대한의사협회 역시 “의사가 아닌 사람을 팀닥터로 부르는 체육계의 관행이 근본적인 잘못”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나 회장은 “안 씨가 했다는 심리치료 역시 스포츠 심리치료사가 따로 있는 전문분야”라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의료전문성이 없는 사람을 팀닥터로 부르는 관행을 고치고 각 팀에서도 의료에 더 많은 투자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지아 기자 kim.ji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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