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시장,시민운동가·행정가로서의 치열한 삶 마감
고 박원순 서울시장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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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가장자리로 밀려났던 많은 시민들의 삶과 꿈을 회복시키는 데 집중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 6일 서울시청에서 있었던 2주년 기자간담회에서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의 저서 '소명으로서의 정치'를 언급하며 그의 소명을 한 마디로 이렇게 축약했다.
최근까지도 대권도전에 대한 말은 아꼈지만 '한 방'이 없다는 세간의 평가에 아랑 곳 하지 않고 최근 뜨거운 이슈가 되고 있는 부동산정책과 기본소득과 관련해 그린벨트 유지,전국민 고용보험 도입 등 자신만의 색깔을 드러내며 대선으로 가는 길을 닦아 왔다.
하지만 9일 돌연 실종됐던 박 시장이 10일 오전 극단적 선택을 한 채 발견됐다.
박 시장은 1956년 경남 창녕에서 태어나 13세 때 작은 할아버지의 양손으로 입양되는 등 어려운 유년 시절을 보냈다.
그는 전국의 수재들만 모인다는 서울 경기고를 졸업하고 1975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지만 유신체제 반대 시위 등으로 투옥돼 제적을 당했다.
단국대 사학과를 졸업한 뒤 1980년 제22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대구지방검찰청 검사로 임용됐으나 사행집행을 참관하지 못하겠다는 이유로 6개월만에 사표를 낸다.
이후로 1980년 권인숙 성고문 사건과 미국 문화원 사건, 서울대 우조교 성희롱사건 등 사회적으로 민감한 사건을 주로 맡아 인권변호사로서 상당기간 활약한다.
1995년부터 국내 대표적인 시민단체인 '참여연대'의 사무처장을 시작으로 비리 정치인 낙선운동,소액주주운동,사법개혁운동 등 사회참여운동을 활발해 전개하며 시민운동가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2000년 아름다운 재단을 설립하고 이를 토대로 사회적 기업인 아름다운 가게를 열어 기부문화를 우리사회에 정착시키는데도 일조한다.
2006년부터 희망제작소의 상임이사로도 일하면서 시민을 위한 공공정책을 기획하고 제안하는 '소셜 디자이너'로도 맹활약했다.
그런 그는 지난 2011년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사퇴로 공석이된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의 양보로 야권 단일 후보로 당선에 성공한다.
이후 반값등록금, 무상급식,청년수당, 도시재생,원전하나줄이기,토건에서 복지 패러다임으로 전환 등 시민운동가로서 쌓아온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시정에 반영하고 집행하는 행정가로서의 빼어난 자질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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