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19 (일)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볕 좋은 날/이재무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서울신문

볕 좋은 날/이재무

볕 좋은 날

사랑하는 이의 발톱을 깎아 주리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고

부은 발등을

부드럽게 매만져 주리

갈퀴처럼 거칠어진 발톱을

알뜰, 살뜰하게 깎다가

뜨락에 내리는 햇살에

잠깐 잠시 눈을 주리

발톱을 깎는 동안

말은 아끼리

눈 들어 그대 이마의 그늘을

그윽하게 바라보리

볕 좋은 날

사랑하는 이의 근심을 깎아 주리

강으로 내려가는 계단입니다. 계단 위에 서서 몇 번이나 눈을 부빕니다. 세상에 이럴 수가. 말문이 막히는군요. 어제까지 강변에는 여름 꽃들 지천으로 피었지요. 원추리 망초 금계국 분홍 애기달맞이꽃 메꽃 붓꽃…. 꽃들의 빛이 너무 이뻐 산책 동안에는 코로나19의 악령에서 잠시 놓여날 수 있습니다. 강변 야생화들 예초기로 다 베어 버렸군요. 평지의 풀들은 베더라도 경사로의 야생화들 강물 닿는 곳의 갈대는 베지 마세요. 해마다 시청에 편지도 쓰고 전화도 넣었지요. 다 베 버렸군요. 힘없이 걷는데 앞에서 노인네 두 분 손잡고 걸어 오네요. 하얀 마스크를 쓰셨군요. 마스크가 이렇게 따뜻한 느낌으로 다가오다니. 그래요 삶이 험할수록 우리 따뜻한 마음으로 살아요. 마스크를 쓸 때면 하늘을 향해 “사랑해요”라고 한마디 말해요.

곽재구 시인

▶ 밀리터리 인사이드

- 저작권자 ⓒ 서울신문사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