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설 밀폐 소홀로 날벌레 유입 가능성…살균·세척 공정도 미흡
적수사태 보상에 331억원 쓰고도 1년여만에 또 혈세 지출할 판
배수장 수돗물 점검 현장 찾은 취재진 |
(인천=연합뉴스) 강종구 기자 = 수돗물에서 유충이 나오는 사태가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 대한민국에서 보름 넘게 지속하고 있다.
과거 산업화 시대에도 발생하지 않았던 수돗물 유충 사태가 첨단 정보통신기술(ICT) 중심의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 장기화하면서 당국의 허술한 물관리 시스템을 질타하는 비난 여론도 커지고 있다.
◇ 정수처리시설에 날벌레 사체 수북…관리 소홀
환경부와 인천시는 이번 사태가 서구 공촌정수장 내 고도정수처리시설에서 부화한 깔따구 유충이 걸러지지 않은 채 정수장·배수지를 거쳐 가정까지 간 것으로 추정했다.
전문가들은 불가항력적인 외부 요인보다는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 부실한 정수장 운영방식 때문에 유충 사태가 발생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여름철은 수온 상승으로 유충 생성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에 시설 밀폐와 살균·세척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
그러나 유충이 처음 발견된 공촌정수장의 '활성탄 여과지(분말 활성탄을 활용한 정수 목적의 연못 형태 시설)'에서는 사태 이후 현장 점검 때에도 날벌레 사체가 다량으로 발견됐다.
이 때문에 평소 완전한 시설 밀폐 없이 때때로 부주의하게 출입문이나 방충망이 열린 상태에서 운영됐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날벌레가 유입됐다 해도 오존 살균 시설이 가동됐다면 강한 오존 냄새 때문에 알을 낳기 어려운 환경을 만들 수 있지만, 공촌정수장에는 오존 처리시설이 없었다.
인천시가 고도정수처리시설을 조기 가동하겠다며 작년 9월부터 오존 처리시설 없이 활성탄 여과지를 운영한 것을 두고 반쪽짜리 공정으로 유충 수돗물을 공급한 결과를 낳았다는 지적도 나왔다.
활성탄 여과지 세척이 적절하게 이뤄지지 않았다는 지적에도 인천시는 별다른 해명을 내놓지 못했다.
수돗물시민네트워크는 여과지 세척 주기가 보통 여름철에 3∼5일인데, 공촌정수장의 경우 오존 처리시설도 없는 상태에서 15∼20일 만에 세척이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최승일 고려대 환경시스템공학과 명예교수는 "여름철에는 활성탄 여과지를 2∼3일에 한 번은 세척해야 활성탄 표면에 미생물이 붙어서 살 여지를 없앨 수 있다"며 "이번 사태는 이런 세척을 제대로 하지 않는 등 여과지 관리를 부실하게 했기 때문에 일어났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 관리소홀·늑장대응…지난해 붉은 수돗물 사태 판박이
이번 수돗물 유충 사태를 놓고 인천시 안팎에서는 작년 5월 붉은 수돗물 사태에서 얻은 교훈을 벌써 잊은 것이냐는 비난이 거세지고 있다.
붉은 수돗물 사태는 매뉴얼을 무시한 인천시 상수도사업본부의 무리한 공정 때문에 빚어졌다.
정기 점검에 따라 급수 경로를 바꾸는 수계전환 때 충분한 시간을 두지 않고 밸브를 개방해 유량과 유속이 급증하면서 관로 내벽에 부착된 물때와 바닥 침적물이 수돗물에 섞여 쏟아져 나왔다.
인천 서구·영종·강화 지역 26만1천가구, 63만5천명이 적수 피해를 봤고, 인천시는 피해 보상비로만 331억원의 혈세를 지출해야 했다.
이번에도 시민 피해가 발생한 만큼 보상을 해야 하고 여기에는 시민들이 낸 세금이 투입될 수 밖에 없다.
인천시는 비싼 비용을 지불하고 만들어진 매뉴얼을 이번 유충 사고 때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환경부, 서울시, 한국수자원공사는 지난해 인천에서 붉은 수돗물 사고가 발생하자 지방자치단체 등의 수돗물 수질 관리를 위해 기존의 내용을 보완해 수돗물 수질 민원 대응 매뉴얼을 만들었다.
이 매뉴얼은 수질 민원이 간헐·산발·국소적으로 발생할 경우 현장 확인을 통해 확산 가능성을 검토하도록 했다.
검토 결과는 즉시 상수도사업소장에게 보고하고, 관할 지방자치단체의 재난 관련 부서와 경찰서 등 관계 기관에도 상황을 알리도록 명시했다.
하지만 지난 9일 '수돗물 유충' 발견 민원을 처음 접수한 인천시 서부수도사업소는 당일 현장에서 시료를 채취한 뒤 나흘 만인 13일에야 사업소·관리소·정수장·급수부 관계자가 참석한 대책 회의를 열었다.
박남춘 시장에 대한 보고는 이 대책 회의가 끝난 뒤 처음 이뤄졌다.
인재와 늑장 대응이라는 점에서 수돗물 유충 사고도 지난해 붉은 물 사태의 판박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백명수 수돗물시민네트워크 정책위원장은 "조기 경보시스템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최초 신고 후 5일이 지난 뒤에야 대응에 나선 데 대해 이해가 안된다"며 "붉은 수돗물 사태 때와 마찬가지로 수돗물 유충도 또다시 인재"라고 지적했다.
급식실에 쌓인 생수병 |
iny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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