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명수 시민환경연구소장 |
인천 서구를 시작으로 전국 7개 수돗물 정수장에서 유충이 나왔다. 1908년 국내에 상수도가 보급된 이후 초유의 사건이다. 백명수 시민환경연구소장은 “지난해 적수(붉은 수돗물) 사태의 교훈은 어디 갔나?”라고 묻는다. 백 소장은 ‘수돗물 박사’라는 수식이 따라붙는 연구자이자 활동가다. 수돗물시민네트워크에서 정책위원장도 맡고 있다. “적수 사태 이후 인천시가 혁신안을 발표하고 굉장히 많은 예산을 투자했어요. 유충 사건은 그것이 내실 없는 보여주기식 대책이었다는 걸 보여줍니다.”
아무리 좋은 시설을 들여도 현장에서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면 소용없다. 인천시 상수도사업본부는 붉은 수돗물 사태 이후인 지난해 8월 인천 서구 공촌정수장에 고도정수처리시설을 설치했다. 예산 390억원을 들였다. 하지만 오염물질을 제거하는 시설인 ‘활성탄 여과지’에 날벌레인 깔따구가 알을 낳는데도 까맣게 몰랐다. 유충 및 붉은 수돗물 사태는 직접적 원인이 다르지만 모두 ‘관리체계 부실’로 발생했다. 백 소장은 “수도사업의 최종 책임은 지자체장에게 있다. 인천시장이 중점적으로 관리·점검했어야 한다”며 “고도정수처리시설 확대를 추진하면서도 정확한 매뉴얼을 내리지 않은 환경부도 책임에서 자유롭기 어렵다”고 말했다.
생태학을 전공한 백 소장은 1998년 환경운동연합에서 활동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2000년부터 환경운동연합의 전문연구기관인 시민환경연구소에 몸담고 있다. 수돗물과 인연을 맺은 건 2000년대 초 농어촌 상수도 문제가 터지면서다. 1970~1980년대 새마을운동의 일환으로 설치된 마을상수도는 정수장치 없이 원수를 물탱크에서 소독만 한 채 식수로 공급하고 있었다. 농경지와 축사 인근이라 수질오염은 심각했다. 4대강 사업 이후에는 상수원 수질 문제가 떠올랐다. 생수를 사먹는 이들이 늘면서 플라스틱은 쌓여갔다. 2014년 시민사회가 수돗물시민네트워크를 출범했다. 마음 놓고 수돗물을 마실 수 있는 사회를 위해서다. 중요한 건 ‘시민의 관점’이다.
“전문가들은 과학적 사실에 기반을 둬 위험하다, 아니다를 판단합니다. 하지만 시민 인식은 과학적이면서 사회적이에요. 전문가들이 수돗물을 테스트한 뒤 안전하니 마셔도 된다고 해도 시민은 여전히 불안해합니다. 시민 눈높이에 맞춰 소통해야죠.”
수돗물을 마셔도 건강에 해롭지 않다. 법으로 정한 먹는 수질 기준에 맞게 공급되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수돗물을 그대로 마시는 비율은 5%에 불과하다. 백 소장은 수돗물이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선 “수도정책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가랑비에 옷 젖듯 잊을 만하면 사건·사고가 터지고, 이후에도 소통으로 오해를 풀고 신뢰를 얻는 과정이 없었어요. 지금까지는 경제개발·도시화 때문에 ‘공급’ 위주 정책을 펴왔다면 이제는 시민에게 밀착해 소통 정책을 확대해야 합니다.”
정부나 지자체 내에서 수도사업의 중요도가 낮고, 잦은 인사이동으로 인력의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은 매번 되풀이되고 있다. 백 소장은 “수도사업을 담당하는 전담기구를 만드는 것도 방법이라고 생각한다”며 “수돗물을 잘 관리하고, 생산하고, 공급할 수 있는 책임성 강한 주체를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노도현 기자 hyu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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