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배현진(왼쪽) 미래통합당 의원과 박정(오른쪽)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여야 의원들이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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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견이 있는 건 똑같았다. 그러나 풀어내는 방식이 달랐다. 체육인 인권보호를 골자로 하는 일명 ‘최숙현법’(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을 30일 합의 의결한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여야 의원들 얘기다. 이들은 팀 내 폭력과 폭언을 견디다 못해 극단적 선택을 한 트라이애슬론(철인3종팀) 종목의 고 최숙현 선수 사건 재발을 막자는 ‘대의’ 아래, 정쟁 대신 협력을 택했다.
문체위는 이날 △법 목적에서 ‘국위선양’ 표현 삭제 △실업팀 불공정 계약을 막기 위한 표준계약서 보급 △폭력 지도자의 자격정지 5년으로 확대 △인권침해 우려 지점에 폐쇄회로(CC)TV 설치 등 내용을 담은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을 위원회 대안으로 처리했다. 위원회 대안은 전날 문체위 체육관광법안심사소위 의원들이 만나 12건의 ‘최숙현법’을 종합해 마련했다. 법안소위가 작동한 것 자체가 소위 구성도 못한 다른 상임위에 비하면 이례적이다.
'국위선양' 삭제 두고 토론...'즉석 대안'까지 도출
9일 오후 트라이애슬론 국가대표 출신 고(故) 최숙현 선수의 고향인 경북 칠곡군의 도로변에 최 선수 가해 사건에 대해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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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 가량 진행된 전체회의에서는 법안소위에서 마련한 대안에 대한 2차 토론이 주를 이뤘다. 조문을 한 줄씩 톺아보는 ‘축조심사’는 생략됐지만, 법안의 표현이나 체계에 관해 꼼꼼한 지적들이 나왔다. 여야는 목에 핏대를 세우는 대신 상대 당의 지적을 귀담아 듣고, 의사 결정에도 이를 반영했다.
‘체육을 통하여 국위 선양에 이바지함’이라는 국민체육진흥법 1조 속 표현이 이날 주된 쟁점이었다. 이 표현을 삭제하기로 한 대안에 대해서 김승수 미래통합당 의원이 “개인의 명예만을 위해서 선수들이 국가대표로 나가는 게 아니”라며 부정적인 입장을 먼저 냈다. 재반박은 소속 정당과 관련 없이 나왔다. 김승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먼저 “국위선양은 법 제정 당시에 있던 표현이 아니라 전두환 정부 때 처음 생겨났다. (표현 삭제는) 시대 상황을 반영했다”고 했고, 이어 배현진 통합당 의원도 “통합당 소위 위원도 엘리트 체육의 부작용을 없애기 위해 삭제하는 데 동의했다”며 거들었다.
이견은 금방 좁혀졌다. 토론을 듣던 문체위 통합당 간사 이달곤 의원이 즉석에서 ‘국위선양’은 삭제하되, ‘자긍심을 높인다’는 표현을 집어넣는 절충안을 꺼냈다. 김승원 의원은 “굉장히 좋은 안”이라고 화답했다. 도종환 문체위원장은 이 의원이 제안한 문구를 메모하더니 “이달곤 간사가 말씀주신대로 1조를 정리하면 어떨까 싶다”며 다른 의원들의 동의를 구했다.
野 "공무원 불필요하게 부르지 말자" 與 "좋은 제안"
더불어민주당 의원들과 미래통합당 의원들이 30일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참석해 인사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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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는 상임위 운영 방향에 대해서도 입장을 좁혔다. 이 의원이 “소수가 믿는 가치도 존중되는 상임위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하자, 도 위원장은 “소수의 발언, 소수가 믿는 가치가 존중되게 해달라는 말에 동의한다. 그렇게 상임위가 운영되게 하겠다”고 화답했다. 상임위 운영에서 다수결보단 정당간 합의를 중시하던 관행을 지키겠다는 의미다.
물론 이견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문체위 민주당 간사인 박정 의원이 “20대 국회는 너무 일을 안 해서 국민의 지탄을 받았다”며 법안소위를 정기적으로 개최하는 ‘일하는 국회’를 언급하자, 배현진 의원은 “법안의 양의 문제가 아니라 위헌 소지 없는 법안을 정제해 심사하는 게 중요하다”고 맞받았다.
여야는 상임위 안건과 관련 없는 공무원들이 세종시에서 국회까지 올라오는 비효율을 줄이자는 공감대도 형성했다. 최형두 통합당 의원이 “오늘 의제가 업무보고도 아닌데 오늘도 23명의 정부 국ㆍ실장이 오셨다”며 “앞으로 국회 참석자를 조정해서 괜히 권위적으로 보이는 일이 없게 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도 위원장은 “아주 좋은 의견 주셨다”고 답했다.
한편, 이날 문체위는 전체회의 후 여야 간사와 위원장 간 회동을 갖고 지난 22일 최숙현 선수 사건 청문회에 출석하지 않았던 동료 선수 정모씨에 대한 고발을 취하하기로 결정했다. 임오경 민주당 의원이 이날 전체회의에서 “피해자가 청문회 불출석으로 가해자가 됐다”며 고발 철회를 요청한 데 따른 결정이다. 이달곤 의원은 이날 본보 통화에서 “피고인에 대해 유리한 증언을 했다는 정황이 있지만 명확하지 않고, 불출석 책임만을 묻는 건 가혹하다 판단해 취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홍인택 기자 heute12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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