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 방안도 온통 시뻘건 진흙탕'…집마다 물 퍼내고 가재도구 꺼내
흐린 날씨에 복구도 더뎌…공무원·군인 장병·자원봉사자 지원 '온 힘'
복구 작업에 투입된 군 장병 |
(대전=연합뉴스) 한종구 기자 = "방바닥인지 논바닥인지 구분이 안 돼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31일 오전 전날 내린 폭우로 집이 물에 잠긴 대전 서구 정림동 코스모스 아파트 주민 A씨의 입에서는 깊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
전날 대전에 시간당 100㎜에 달하는 집중호우가 쏟아졌다.
새벽 4시께 검게 변한 하늘에서 천둥 번개가 몰아치더니 굵은 빗줄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주민들은 잠을 자던 중 "빨리 대피하라"는 관리사무소의 안내방송을 듣고서야 잠옷 바람으로 집을 빠져나왔다.
빗물은 고지대에서 저지대로 흐르며 저지대에 있는 이 아파트 주차장으로 밀려들었다.
인근 갑천으로 빗물이 빠져나가야 하지만, 집중호우로 갑천의 수위가 상승하면서 물이 빠져나가지 못한 것이다.
역류한 빗물은 다시 모여 내려온 빗물과 만나 이 아파트 2개 동을 집어삼켰다.
A씨는 전날 새벽 내린 폭우로 집에 물이 차기 시작하자, 잠옷에 슬리퍼 차림으로 급하게 대피했다.
대전시에서 임시 생활시설을 마련해줬지만, 집 걱정에 뜬눈으로 밤을 보내다시피 했다.
날이 밝자마자 아침도 먹지 않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생각보다 심각했다.
집안은 거실, 안방 할 거 없이 온통 진흙탕이었다.
토사가 밀려 들어와 방바닥인지, 논바닥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A씨는 "우리 집이 너무 끔찍할 게 뻔하기 때문에 돌아오기 싫었다"며 "하지만 집에 올 수밖에 없는 현실이고, 이제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할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
견인되는 차량 |
이웃 B씨는 아내와 함께 양동이와 빗자루 등을 이용해 집안 청소를 시작했다.
아내가 화장실 수도꼭지에 연결된 호스로 물을 뿌리면 B씨는 빗자루로 열심히 쓸어냈다.
B씨는 "우리집이 바로 여기까지 물에 찼다는 증거"라며 취재진을 향해 하얀 벽지를 가리켰다.
하얀 벽지에는 황토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한동안 청소를 한뒤 집안이 어느 정도 깨끗해졌다는 생각에 소파를 들어내자 더 많은 토사가 쌓여 있었다.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연신 "이걸 어째"라는 말만 반복했다.
주민 C씨는 비에 젖은 이불을 정리하며 흙탕물에 젖는 가족사진을 발견하고는 손으로 닦아 냈다.
그는 "아들 대학 졸업식 때 찍은 사진"이라며 "아들이 보고 싶을 때마다 보려고 머리맡에 뒀는데, 이렇게 됐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합선 우려로 전기까지 차단된 상황에서 어두운 방 안에 주저앉은 C씨의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물에 젖은 가재도구들을 말려야 하루빨리 일상생활로 돌아갈 수 있지만, 날씨가 흐려 피해 복구 작업에도 속도가 붙지 않아 주민들은 애간장이 타들어 갔다.
전날 쏟아진 빗물에 거대한 물웅덩이로 변한 아파트 주차장도 복구가 시작됐다.
물이 빠진 주차장에서는 침수된 차량들이 끊임없이 견인 차량에 끌려 나갔다.
자원봉사자들은 물론 32사단 군 장병들도 훈련을 뒤로 미루고 복구 작업에 가세했다.
자원봉사자들은 주민들을 도와 방안에 가득 찬 토사 제거 작업을 했고, 장병들은 눈을 치울 때 사용하는 커다란 삽을 이용해 주차장을 집어삼킨 토사를 치웠다.
전날 내린 폭우로 이 아파트 235세대 가운데 2개동 28세대가 침수됐고, 주차장에 있던 차량 78대도 물에 잠겼다.
허태정 시장은 이날 박병석 국회의장과 함께 피해 현장을 둘러본 뒤 "모든 행정력을 동원해 복구작업을 진행하겠다"고 주민들에게 약속했다.
jkh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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