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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9 (수)

[김지연의 미술소환] 홍제유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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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경향신문

홍제초등학교 학생 10명·인왕초등학교 학생 10명, 홍제유연 미래 생태계, 2019, 축광페인트, 블랙라이트, 5.8x3.3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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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내 세대를 끝으로 화가는 멸종할 거야.” 예순을 바라보는 한 화가는 말했다. 무한경쟁을 지지하는 세상의 속도는 화가에게 붓으로 고민하는 시간을 충분히 허락하지 않고, 그의 고독을 용납하지 않는다. 여러 가지 이유로 더 이상 그리기에 몰두할 수 없는 시대 안에서 화가는, 특단의 조치가 없다면 여느 멸종위기 생명체처럼 정말 사라질 수도 있겠다. 화가의 서식지는 이미 파괴되고 있다.

얼마 전 개장한 유진상가 지하 홍제천을 걷다가 지역의 어린이들이 그린 벽화를 보았다. 한국전쟁 발발 70년을 맞이하여 전쟁의 의미를 되새기던 이들은, 1970년 언제든 벌어질지 모를 북한의 남침에 대비하기 위해서 대전차 방호목적으로 지었다는 유진상가 지하를 일종의 ‘전시공간’으로 정비하는 선택을 했다. 물과 사람의 인연이 흘러 예술로 치유하고 화합한다는 의미를 담아 ‘홍제유연’이라고 이름 붙였다.

인왕초등학교와 홍제초등학교 어린이들이 ‘전시공간’으로 정비된 유진상가 지하 환경과 홍제천 일대의 생태계를 둘러보면서 이곳의 미래 생태계를 상상했다. 자연의 빛이 들어오지 않는 지금의 지하 환경에서도 강인한 생명력으로 진화하는 동식물들의 등장을 상상하면서 홍제유연의 미래 생태계 모습을 담았다고 했다.

새, 물고기, 식물처럼 보이는 생명체가 유진상가 일대에 배치되어 있다. 어린이들이 상상한 미래의 생태계 속 생명체들은 비오는 날 걸었던 홍제천에서 내가 마주친 풀, 물고기, 새들과 닮아 있었다.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바꾸어야 할 것은 전체가 아니라 작은 부분일지도 모르겠다. 축광페인트로 그린 덕분에 블랙라이트를 받아 어둠 속에서 더 푸르게 발광하는 그림을 보며, 문득, 이미 서식지를 파괴당하기 시작한 화가들의 진화를 상상해 본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kimjiyo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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