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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큰돌고래 고아롱과 벨루가 루이가 유언을 남겼다면[살아남아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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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김기범 기자의 살아남아줘서 고마워(32) - 큰돌고래 고아롱과 벨루가 루이가 만약 유언을 남겼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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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8일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앞바다에서 포착된 남방큰돌고래 춘삼이와 다른 남방큰돌고래들의 모습. 김기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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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동물을 사랑하는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만든 소식이 있습니다. 바로 국내 수족관에서 사육 중이던 고래류 중 두 마리가 잇달아 폐사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먼저 7월20일 한화 아쿠아플라넷 여수의 벨루가(흰고래) 3마리 중 수컷 ‘루이’가 폐사했고, 이틀 뒤 울산 남구 장생포 고래생태체험관의 돌고래 ‘고아롱’이 폐사한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두 수족관은 이들 고래류의 죽음이 급작스러운 것이었다며 부검을 통해 사인을 조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고아롱과 루이의 죽음은 동물보호단체, 환경단체 등을 중심으로 한 ‘고래류 사육 금지 및 사육 개체의 방류, 또는 바다쉼터 마련’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다시금 높아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두 고래류의 폐사 소식을 듣자, 이들이 죽음으로써 무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우리 둘을 끝으로 더 이상 좁은 수족관에서 생을 마치는 고래류가 없어야 한다’고 호소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것이죠. 마침 이들 두 개체가 폐사한 시기는 남방큰돌고래 제돌이를 비롯한 불법 포획 돌고래들이 바다로 돌아간 ‘제돌절’ 7월18일에 즈음한 때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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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8일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앞바다에서 포착된 남방큰돌고래 제돌이와 다른 남방큰돌고래의 모습. 김기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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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역시 거의 매년 제돌절을 기념해 제주 남방큰돌고래에 대한 얘기들을 기사로 소개해 왔습니다. 남방큰돌고래들이 잘 지내고 있다는 소식부터 어떤 위협에 직면해 있는지, 또 제주에서 어디에 가면 돌고래들을 만날 가능성이 높은지 등에 대한 기사들이었습니다. 올해에도 남방큰돌고래들에 대한 소식을 전하기 위해 7월 초 며칠 동안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에 다녀왔고, 운 좋게 제돌이와 춘삼이를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습니다. 어느 개체인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새끼를 데리고 다니는 암컷까지도요. 그리고 7월17일을 시작으로 지면과 온라인을 통해 ‘제돌이 방류 7주년, 한국의 돌고래들 안녕하십니까’라는 기획기사를 보도하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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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8일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앞바다에서 다른 남방큰돌고래들 앞에서 헤엄치고 있는 새끼 남방큰돌고래의 모습. 김기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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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는 10년 간 절반이 죽어갔다···돌고래 수족관은 잔인한 수용소라는 제목의 기사였습니다. 한 국회의원실을 통해 해양수산부가 집계한 국내 수족관 돌고래 현황을 받아보았는데 돌고래들의 폐사율은 예상한 것 이상으로 높았습니다. 해양수산부가 단순히 나열만 해놓은 사육 현황을 제가 직접 합산해 폐사율을 계산해 보니 절반에 가까운 수치가 나왔습니다. 지난 17일 현재 국내 수족관 8곳에서 전체 61개체 중 29개체가 폐사해 폐사율이 47.54%에 달했던 겁니다.

고기나 알, 가죽 등을 위해 농장에서 키우는 가축의 경우라도 만약 폐사율이 절반에 가깝다면 사육하기에 적합한 동물이 아니라는 지적이 나오지 않을까요. 하물며 인간과 영장류 외에 도구를 사용하는 것이 확인된 유일한 동물인 돌고래처럼 매우 지능이 높은 동물의 폐사율이 이만큼 높았습니다. 즉, 절반에 가까운 폐사율만 봐도 고래류는 수족관에서 키우기에 적합한 동물이 아닌 것입니다.

그럼에도 수족관들은 돌고래들의 건강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변명만을 거듭해 왔습니다. 이 말이 진실이라면 더더욱 고래류를 수족관에서 키우는 것이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최선을 다해 보살펴도 절반이 죽어나가는 것이 수족관 돌고래의 현실이라는 얘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수족관에서 죽어간 고래류들이 대체로 10~20세 안팎의 비교적 젊은 개체들인 점을 볼 때, 고래류의 수족관 사육을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립니다. 야생에서 돌고래와 벨루가의 수명이 상황마다 다르지만 30~50세에 달한다는 연구결과들을 감안하면, 수족관 사육이 이들의 수명을 크게 단축시켰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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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단체와 동물보호단체 등 활동가들이 지난 27일 울산 남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돌고래 방류를 촉구하고 있다. 핫핑크돌핀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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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가 보도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앞서 언급한 고아롱과 루이의 폐사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두 개체의 죽음으로 인해 해수부 자료를 토대로 집계한 폐사율은 50%를 넘어섰습니다. 전체 61개체 중 31개체가 죽으면서 폐사율이 50.82%로 증가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정을 바꿔 당초 계획했던 기사들에 앞서 두 돌고래의 폐사에 대한 기사들을 먼저 게재하게 되었습니다. 원래는 제주 남방큰돌고래들에게 현재 어떤 위협이 존재하고, 또 어떤 위협은 해소되었는지, 어떤 이들이 돌고래들을 지키려 애쓰고 있는지, 어떤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지 등에 대한 기사를 게재하려 했지만, 뒤로 미뤄둔 상태입니다.

고아롱과 루이의 잇따른 폐사 소식을 접한 것은 기획기사 첫 회에서 주요하게 사용한 폐사율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고래류가 국내 수족관에 갇혀지내다 죽어갔는지 쉽게 전달하기 위해 폐사율이라는 수치를 사용했지만, 그 안타까운 죽음들을 단순히 수치로 정리해 버려도 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31차례에 달하는 죽음 중 어느 하나 안타깝지 않은 죽음이 있었을까요. 바다로 돌아가 잘 적응해 살고 있는 데다 출산 소식도 전해주고 있는 남방큰돌고래들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듭니다. 벨루가 루이의 폐사 소식이 알려지기 하루 전 기획기사 중 두번째로 게재한 7마리가 돌아갔는데 9마리가 늘어났다, 제주 남방큰돌고래의 기적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바로 대부분의 방류된 개체가 야생에 잘 적응하고, 잘 지내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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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보호단체, 환경단체 활동가들이 지난 24일 서울 중구 한화빌딩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벨루가 방류를 촉구하고 있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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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하면, ‘7마리가 돌아갔다’는 것은 제돌, 삼팔, 춘삼, 태산, 복순, 금등, 대포 등 모두 7마리가 방류되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9마리가 늘어났다는 것은 방류한 개체들이 모두 4마리의 새끼를 낳은 것과 방류 후 모습이 확인되지 않고 있는 금등, 대포를 줄어든 것으로 잡아 계산한 결과입니다. 즉, 주 남방큰돌고래의 방류를 통한 개체 수 변화는 ‘7+4-2=9’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기사 내용 중에도 들어있지만 7마리의 방류를 통해 9마리가 늘어나면서 제주의 남방큰돌고래 전체 개체 수의 10%에 가까운 수가 방류와 방류 개체의 출산을 통해 추가되는 성과를 낳은 것입니다.

사실 2013년 남방큰돌고래 제돌이 방류를 시작으로 불법 포획된 뒤 돌고래쇼에 동원되어온 돌고래들을 바다로 돌려보내는 성과가 이어지면서 한국 사회의 동물권에 대한 인식, 특히 돌고래를 포함한 해양포유류에 대한 인식 역시 성장해 왔습니다. 그러나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돌고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돌고래와 벨루가를 수입해 쇼나 체험 프로그램 등에 이용하는 시설들이 잇달아 생겨난 것도 한국 사회의 현주소였습니다. 부당하게 갇혀있던 이들을 사회적응과정을 거쳐 석방할 정도로 인식이 높아졌지만, 동시에 해외에서 죄수를 데려와 구경거리로 삼는 야만적인 문화도 상존한 것입니다.

부디 고아롱과 루이 두 개체의 죽음이 이런 야만의 시대를 끝내고, 국내 수족관에 있던 모든 고래류가 자연으로 돌아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수족관들이 고래류 방류를 방해하는 세력이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으로 방류를 추진하고, 바다쉼터 마련에 나서면서 생태적인 기관으로 거듭나는 기회를 잡게 되는 것도 소망해 봅니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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