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성의 최숙현을 누가 무너뜨렸나
최숙현 선수의 해외 훈련일지
2017년, 2019년 일지에 남은
열심히 훈련하고 싶은 마음과
폭력 속에서 힘겨워하는 모습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
일기에 드러난 고통스러운 진실
힘들어도 “운동이 좋았다”
그 안의 폭력을 견디기 힘들어
운동을 하기 위해 글을 썼다
<한겨레>는 2017년, 2019년 일지 전부를 입수해 분석했다. 왼쪽은 그 일지의 일부를 발췌한 사진. “그 사람들의 죄를 밝혀줘” 펼침막은 최 선수의 고향인 경북 칠곡 시내에 걸린 호소다. 온몸에 땀이 가득한 채 앞을 응시하는 최 선수는 2019년 한 경기 영상을 갈무리했다. 대구 경산 칠곡/글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그래픽 박향미 기자phm8302@hani.co.kr, 사진 연합뉴스TV 갈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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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불안하다. 집중할 곳이 필요했고 글 쓰는 것으로 선택해봤다.” 고 최숙현 선수는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 작성한 2019년 훈련일지 끝에 이렇게 적었다. 그는 뉴질랜드에서 날마다 일지를 남겼다. 장창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이를 “치료적 글쓰기”라며 “팀 안에서 관계망이 망가져가면서 자신 내면의 심리 안에 남은 마지막 자원의 불씨를 지폈던 것”이라고 분석했다.
최숙현씨의 친오빠는 아직 답을 구하지 못했다. 동생은 평범했다. 평범한 게 욕먹을 이유는 아니다. 누구도 그런 이유로 때릴 순 없다. 엘리트 선수였지만, 실업에서 1등은 아니었다. 전국체육대회(전국체전)에서 2015년 5위, 2016년 4위, 2017년 4위, 2019년 14위를 했다. 전국체전에 참가하는 1만8000여명의 선수 중 1등은 1000명이 될까, 3등까지 따져봐야 3000여명이다. 대한체육회가 운영하는 전국체전 누리집에는 3등까지, 겨우 숫자만 기록한다. 최 선수는 여기에 기록되지 않는 ‘4등 선수’ 중 한명이었다.
<한겨레>는 최 선수가 작성한 2017년, 2019년 두편의 뉴질랜드 오클랜드 전지훈련 일지를 가족에게서 건네받았다. 고인이 유독 힘들어했다는 뉴질랜드 훈련 당시의 기록이다. 일지에는 95일 동안 수영, 사이클, 육상 등을 훈련하며 쓴 214개 기록이 분과 초 단위로 적혀 있다. 빼곡한 숫자 아래로 그날의 평가도 남겼다. “팔이 빨리 말리고 무겁다”(수영)거나 “상체가 조금씩 들리는 것 같다”(육상) 등의 반성도 있지만 “(페달이) 잘 밟히니까 이대로만 하자, 숙현아”(사이클)와 같은 자기 격려도 있었다. 눈에 띄는 것은 일지 곳곳에서 느껴지는 고통이다. 어느덧 일지는 일기가 되고, 고백이 되고 때론 격문이 됐다. 그의 일지에 주변의 증언, 전문가의 견해를 더했다. 가족의 허락을 받아 일기를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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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3일
“새벽 육상<트랙> 지속주 12000m 26바퀴 2’ 페이스 2’00’’~2’01’’. 오전 수영<실내> W-up 400m. DPS 66×8. Main 800×3 10’40’’. Sprint 33×4×2set. 수중보강 부력운동. 오후 사이클<로라> 1분10개 10초10개×2set. 수영을 열심히 잘하고 있었는데 ○○오빠가 지나갈 때마다 뒤에서 발을 잡아당겼다. 계속 서게 되고 턴할 때도 자기 자리로 안 돌고 안쪽으로 들어와서 나를 서게 만든다.”
경주시청의 훈련은 혹독했다. 하계 스포츠에서 동계 전지훈련은 근력 강화나 컨디션 유지를 위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경주시청은 새벽, 오전, 오후 세번의 훈련을 5일 동안 매일 강도를 달리하며 이뤄졌다. 팀을 떠난 선수들이 “운동보다 행복을 택했다”고 할 정도였다. 이날도 마찬가지다. 최 선수는 훈련을 힘들어하지는 않았다. ‘워밍업’(W-up)으로 시작해 팔을 한번 저을 때마다의 거리 늘리는 훈련(DPS)으로, 짧은 거리를 전력질주하며 순발력을 키우는 훈련(Sprint)을 반복했다. 동료 선수들은 “훈련을 받는 태도만큼은 최고였다”고 했다.
최 선수의 원래 종목은 초등학교 시절 수영이었다. 철인3종경기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시작했고, 입문과 동시에 단체전 금메달을 땄다. 당시 김규봉 감독이 지도했고, 최 선수는 자연스럽게 체중, 체고를 거쳐 김 감독이 있는 경주시청 선수가 됐다. 경주시청은 2014~2016년 철인3종 여자부 단체전 각종 대회 우승을 이어갔다. 독보적 1위였다. 최 선수가 기록한 이 장면은 경주시청의 팀 훈련이 어떤 식으로 이뤄졌는지 보여준다. 누군가 제지했다는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한 선수를 향한 노골적인 폭력에 누구도 반응하지 않는다. 한 체육계 관계자는 “단체훈련을 할 때 한 선수가 자꾸 멈추고, 충돌 우려가 있게 되면 코치진이 사고를 막기 위해서라도 즉각 조치를 해야 한다. 이 정도면 감독이 집단 린치를 방관하고 있는 것”이라며 “이 자체로 징계감”이라고 했다.
2017년 2월6일
“육상 뛰는데 종아리가 자꾸 아프다. 사이클 내려서 뛸 때가 제일 아프다. 종아리가 뭔가 문제인 거 같다. 뛰어지지를 않는다. 큰일이다.”
부상을 방치하는 방식으로도 폭력은 가해졌다. 기록을 보면 최 선수의 부상은 분명해 보인다. 일지 어디서도 부상을 관리받은 흔적은 없다. 부모, 동료 등의 증언을 종합해보면 제때 치료받지 못했다. 겨울의 종아리 부상은 두 계절을 지나 전국체전까지 이어졌다. 최 선수는 2017년 98회 전국체전에 경북 대표로 참가했다. 최 선수는 당시 왼쪽 종아리를 녹색 밴드로 감았다. 경기력을 높이기 위한 수준이 아니라 아예 종아리 살이 거의 드러나지 않을 정도로 무릎 아래를 다 덮었다. 방치된 부상은 종아리만이 아니었다. 병원만 가도 나았을 부상까지 달고 다녔다. 지난 7월23일 <한겨레>와 만난 최숙현 선수의 아버지 최영희씨는 “내가 무뎌서…, 휴…” 말을 잇지 못했다. 최 선수의 어깨 얘기다. 고등학교 시절 최 선수는 경주시청 팀에 위탁돼 훈련을 받고 있었다. 최 선수의 사이클이 넘어졌다. 그때 어깨가 탈골됐다. 곧바로 병원에 가야 했다. 하지만 가지 않았다. 팀닥터로 불렸던 안주현씨의 괜찮다는 말을 믿었다. 아버지는 다시 한숨을 쉬었다.
“‘아빠, 수영하다 어깨가 빠졌는데, 그냥 내가 끼워서 갔어’라고 하더라고. 잘 참았다고 할 일이 아니었는데. 그때 병원에 데려갔어야 했어. 결국 인대도 찢어지고 어깨가 망가졌지.”
방치된 부상, 정신적 학대
체중감량 압박 속 구토, 이탈
1년을 쉬었다 다시 돌아가
“앞으로 운동 오래하고 싶다”
고 최숙현 선수가 2013년 소년체전에서 활약하고 있다. 최영희씨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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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8일
“새벽 휴식. 오전 수영 W-up 200×1. Long(평소보다 긴 거리) 2000×1. 오후 휴식. 오늘은 불완전 휴식을 하는 날이었다. 근데!! 이날마저 욕먹을 수도 있구나! 대단하다! 욕을 그냥 밥보다 많이 먹으니 배가 터진 것 같다. 뇌도 같이! 펑!”
최숙현은 주로 훈련을 방해받거나 훈련 뒤 회식자리에서 배제되는 등으로 왕따를 당했다. 3월24일 일지의 “내가 진짜 소문 하나로 이렇게 나쁜 애가 되는 건가”처럼 채 10명이 되지 않는 팀 내에서 자신과 관련된 나쁜 소문으로 상처를 받기도 했다. 전지훈련에 참가했던 한 동료 선수는 “철인3종 한다는 것만으로도 모두가 힘든 운동 한다고 인정한다. 힘들어 구역질을 하면 그걸 똥물을 토한다며 당연한 것처럼 여길 정도”라며 “매일같이 욕설에 구타에 왕따까지 당하면, 누구도 버티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이유를 찾기 힘들어 더 힘들었다. 집단 따돌림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어떤 날은 훈련을 방해했다고, 어떤 날은 훈련에 성실하지 않았다는 게 이유였다. 이유를 말하지 않는 날이 더 많았다. 지켜보는 모두가 갸우뚱했지만 토를 달지 못했다.
대한체육회 등에 낸 진술서를 보면, 최 선수가 변화를 만들어보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최 선수가 팀 주장인 장윤정 선수에게 “한잔하자”는 말을 꺼냈을 때, 장윤정은 최 선수가 쓰러지도록 술을 먹여 창피를 줬다. “서운하다”고 했을 땐 멱살을 잡았다. 장 선수는 최 선수의 고등학교 10년 선배인데다 대한민국 철인3종의 간판이었다. 그는 팀에서 군림하는 존재였다고 알려져 있다. 최 선수 사망 뒤 애초에 그는 가혹행위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거나 “사실과 다르다”고 했다. 김규봉 경주시청 감독도 마찬가지다. 지난 7월22일 ‘철인 3종경기 선수 가혹행위 및 체육분야 인권침해에 대한 청문회’에 참고인으로 나선 경주시청 옛 동료 편차희 선수(현 천안시청)는 “가해자들은 매일같이 폭행하고 폭언을 했기 때문에 그것을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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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섭고 죽을 것 같다”
2017년 뉴질랜드 훈련 막바지 어느 날
“왜 살까 죽을까 뉴질랜드에서 죽으면 어째? 만약 못 죽으면?”
비극을 암시하는 문구가 등장한 것은 3년 전이다. 훈련을 다 소화하지 못하는 스스로를 채근하거나 원망할 때조차 “죽는 줄 알았다”(2017년 2월4일)고 했다. 힘든 훈련을 소화한 뒤에도 “저세상에서 날 부르는 소리”(2019년 1월22일), “저세상 보고 왔다”(이하 같은 해 2월26일)고 했다. 훈련 중 넋두리로도 들린다. 하지만 그 안에 “숨 막혀서 죽고 싶어”(3월25일), “무섭고 죽을 것 같다”(7월10일), “죽어버렸으면. 이런 생각이 수백번씩 머릿속에 맴돈다”(마지막 일지 기록) 등이 하루 이틀 건너 섞여 있다. 장창현 느티나무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트라우마 안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상황으로 보인다”며 “스스로 위축되는 게 밖으로도 표출됐을 것이다. 그러면서 팀에서 더욱 궁지에 내몰렸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그의 종아리와 어깨처럼, 마음의 부상도 팀 안에서는 관심 밖이었다. 도리어 최 선수는 “정신병이 도졌느냐”(2017년 2월9일)는 김 감독의 말로 상처를 받았다.
2018년
“오래 운동하고 싶다”
2017년 98회 전국체전(10월20일~26일)을 마지막으로 결국 최 선수는 철인3종 선수생활을 접었다. 그리고 수영강사 생활을 시작했다. 물론 이렇게 끝내는 것은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애초 1등은 꿈이 아니었다. 운동 그 자체를 재미있어했다고 아버지는 전했다. 체중, 체고를 진학한 것도 그래서였다. 나이를 먹어서도 제자들과 함께 운동하는 지도자가 될까 하는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꿈을 바꿨다. 아빠에게 “선수들에게 모질게 할 수 없으니 국제심판을 하고 싶다”고 했다. 더 이상 선수로 활동할 수 없는 처지에 심판도 어려워졌다. 서울로 가서 공부를 하고 싶었다.
그가 없이도 경주시청 팀은 잘나갔다. 전국체전 5연패를 달성했다. 문제는 체전 직후였다. 한 선수가 팀을 옮기겠다고 나섰다. 집단 따돌림의 결과였다. 자연스레 6연패를 꿈꿨던 김규봉 감독과 장윤정 선수는 대체 선수를 구하러 나섰다. 하지만 ‘경주시청은 장윤정만을 위한 팀’이라는 것을 선수 중 모르는 이가 없었다. 결국 두 사람은 최 선수를 설득해보기로 했다. 체전 다음달인 11월 김 감독이 직접 최 선수의 아버지를 찾아와 그사이 체중 등으로 압박을 준 사실, 가혹하게 훈련을 시킨 사실 등을 인정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장 선수도 최 선수의 고향을 찾았다. 결국 최 선수의 마음이 움직였다. 가족들은 복귀 이유를 명확하게 듣지는 못했다. 그저 엄마에게 “앞으로 그만두지 않는다. 할 수 있는 만큼, 최소 10년은 더하겠다”고 했다. “잘하기보다 오래 운동하고 싶다”고 했다. 아버지가 직접 김 감독을 만나 “장윤정 선수가 전지훈련에 참가하지 않는 조건”으로 동계훈련부터 복귀하기로 했다.
2019년 1월23일
“몸에 힘이 없다. 죽을 것 같지만 끝까지 해보자. 빨리 체중 빼고 몸 만들어서 언니랑 오기 전에 욕먹을 거리 하나는 줄여놓자! 이틀째 금식, (내일이면) 끝이다. 내일은 더 잘하자!”
때로 최 선수는 체중계를 떠올리기만 해도 구역질이 올라왔다. 같은 팀 동료였던 편차희 선수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여자 선수들은 매일 새벽 5시 반에 일어나자마자 체중을 재기 시작해 얼마나 빠졌는지 아홉번을 체크한다. 체중계 올라서는 게 꿈에 나올 정도였다”고 했다. 일지에 기록된 감량의 방법은 굶는 것이다. 식단 조절은 없었다. 한 운동생리학 전문가는 “만약 1200㎉ 이하로 식단을 운영하면서 훈련했다면 그 자체로 가혹행위”라고 설명했다. 최 선수는 6일 만에 4.8㎏이 빠졌다고 썼다. 경주시청팀은 왜 이렇게 체중 감량에 집착했을까. 전직 국가대표 트레이너를 한 연구자는 “마라톤이나 철인3종 등은 체지방에 반비례해서 경기력이 향상된다는 게 정설이다. 가장 효율적인 몸을 만들어 가장 좋은 기록에 빠르게 접근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국체전을 앞두고 훈련 강도를 높여가던 2017년 5월 몰래 먹은 음식을 토하다가 하필 장 선수에게 들켰다. 다음날 새벽 최 선수는 팀을 나왔다. 최 선수는 경찰에 낸 진술서를 보면, “체중 문제로 감독, 선수들이 쪼아서 이렇게 하다가 죽을 거 같아서 숙소를 이탈했다”고 했다. 경주시청에서 체중 조절은 선수 개인보다는 팀을 위한 것이었다. “다이어트하러 왔냐” “민폐 끼치지 말라” 등 모멸이 훈련 도중 쏟아졌다. 성봉주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 수석연구위원은 “최 선수의 감량 방식을 보면 체지방률, 근육량을 고려한 선수 중심의 체계적인 감량보다는 하루빨리 팀에 쓰일 선수로 만들기 위한 의도가 분명해 보인다”고 설명했다.
정상적으로 영양 섭취를 해도 힘든 훈련이 철인3종이다. 이를 최 선수는 묵묵히 견뎌냈다. 훈련 시작 당시 60㎏를 훌쩍 넘기던 몸무게는 훈련종료 열흘을 남기고 55.8㎏이 됐다. 최 선수가 가장 좋은 성적을 낼 때는 55㎏ 내외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체중 다 뺐는데도 욕은 여전”(2월26일)이라는 기록처럼 코치진의 닦달은 멈추지 않았다. 선수 시절로 돌아간 것은 체중만이 아니었다. 숙소에서부터 수영장까지 12.6㎞를 달리는 훈련 기록을 보면, 첫날 기록은 1시간15분이다. 이날 일지에는 “진짜 뛰다가 죽을 뻔했다”고 돼 있다. 보름여 만인 2월11일에는 1시간9분18초(“오늘 몸이 괜찮았던 거 같다”)로 6분을 단축했다. 그리고 다시 한달이 지난 3월4일에는 1시간2분대에 진입한다. 최초 기록과 비교했을 때 13분을 단축한 것이다. 최 선수 스스로 자신감도 생기기 시작한 듯하다.
“1월의 마지막 날 행복하게 마무리! 좋다!”(1월31일), “오늘 하루도 끝. 행복하다. 사이클도 별로 안 떨어졌다”(2월2일), “누구에게나 자랑스러운 사람이 되자! 지금처럼!”(2월5일), “오늘도 수고 많았어!”(2월14일, 2월19일, 2월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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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지를 훔쳐보고 있다’
2019년 2월21일
“그냥 사망신고 낼 뻔한 날 죽지 않고 살아있음에 감사. 차희 길 잃었어서 마음 아팟어. 괜찮아서 다행 놀라고 무서웠을꺼 생각하니 맘 아프다. 푹 쉬고 내일 힘내쟈 차희♡.”
국회 청문회에 나와 2016년 장 선수의 지시로 후배 선수를 구타했다고 인정한 선수가 있다. 정아무개 선수다. 그는 “때리지 않았다면 저 또한 왕따를 당했을 것이고 심한 폭언이나 정신이 피폐해질 정도로 사람을 괴롭혀 심적 고통을 느끼게 됐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정 선수도 장윤정 선수에게 괴롭힘을 당한 적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 선수의 행동은 피해자들의 전형적인 생존 방법인 ‘가해자와의 동일시’다.
최 선수는 어땠을까. 그는 후배들을 유달리 챙겼다. 기록으로도 남아 있다. 편차희 선수는 국가대표 팀 훈련을 마치고 경주시청 전지훈련에 복귀했을 때, 길을 잃고 고생한 날을 기억했다.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최 선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숙현 언니는 엄마 같은 존재라고 해야 하나. 후배가 잘못했어도, 오히려 언니가 감싸주고 그랬어요. 길을 잃은 날 그랬던 것처럼, 힘들어서 울면 달래주고 안아주곤 했죠.” 최 선수의 메모에는 편 선수를 아끼는 마음을 담은 내용이 더 있다. “운동 같이 하는 후배이고, 평생을 함께하고 싶은 동생”이라고 돼 있다.
2019년 2월28일
“이제 빠질 것도 없는가. 구라 친다고 지랄하는 것(을 듣는 것)도 지치고, 물 먹고 700g 쪘다고 욕먹는 것도 지치고. 내 일지 훔쳐보면 솔직히 니가 인간은 아니지. 방 뒤질 생각도 말고. 니가 내 일지 보면 어쩔 건데.”
최 선수는 누군가가 자신의 일지를 보고 있다고 느꼈다. 이날 최 선수는 일지에 욕설을 썼다. 그리고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그리 힘들게 하는데 가만있지 마라, 녹음해라, 녹음하고 나서 곧바로 아빠한테 보내야 해. 혹시라도 휴대전화 검사할 수도 있으니. 나한테 보내면 여기서 알아서 할게.” 아빠는 몇번을 당부했다. 최 선수가 녹음을 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그날이다. 그리고 다음날 일지에 그 누군가를 향한 글을 다시 남긴다.
“우리 운동 나간 사이 니가 내 일지를 읽었다면 나 건들지 말아줘. 일년 쉬고 니가 생각한 거보다 더 성장했고, 변했으니까. 나도 당하고만 있지 않아 ㅎ.”(2월29일)
관련 청문회에 참가한 한 의원실 관계자는 “장 선수와 팀 동료들은 일지를 보는 차원을 넘어 최 선수가 잠든 뒤 휴대전화도 들여다봤다는 증언을 확보했다”고 전했다. 당시 최 선수의 휴대전화는 지문을 눌러 잠금해제를 하는 방식이었다. 의원실이 확보한 증언에는 최 선수가 잠든 뒤 최 선수의 손가락을 접촉해 잠금을 풀었고, 가족과 어떤 문자 대화를 주고받았는지 어떤 녹취를 남겼는지 확인했다는 내용도 있다.
복숭아 한개 먹었다고
뺨 20대, 발에 차여 넘어져
갈비뼈 아파 숨쉬기 힘들어
“가만있지 않겠다” 녹음 시작
검경, 시청, 체육회 등 외면
2019년 뉴질랜드 전지훈련 일지 중 일부. “비 오는 날 먼지나게 맞았다”고 적은 이날 고 최숙현 선수는 복숭아 한개를 몰래 먹었다는 이유로 뺨 20대 등 무차별적인 구타를 당했다.장철규 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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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8일
“오늘 비 오는 날 먼지 나게 맞았다. 거짓말 치지 말자. 그리고 여기는 아니다. 몇달만 버티자. 뽜샤”
일지에 남은 네 문장만으로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구체적으로 떠올리기 어렵다. 최 선수는 이날의 일을 1년 뒤 체육회 등에 가져간다. 그가 낸 진술서를 보면, 최 선수는 이날 유달리 배가 너무 고팠다. 1월20일 전지훈련을 시작한 이후로 아침을 거의 먹지 못했다. 아니 먹지 못하게 했다. 결국 견디지 못하고 복숭아 한개를 몰래 베어 물었다가 들켰다. 이를 꽉 물고 뺨을 20대 맞았다. 발길질도 있었다. 가슴과 배도 맞았다. 수영 연습 뒤 숙소로 돌아온 김 감독과 팀닥터로 불린 안씨에 의해서였다. 이후 편 선수와 남성 선수 2명도 함께 구타를 당했다. 최 선수는 이 상황을 녹음했고, 곧바로 아버지에게 전송했다. 이날의 폭행은 검찰, 대한철인3종협회 등의 증거자료로 남아 있다. 이날 이후 그는 급속히 무너져갔다. “하루하루 눈물만 흘리는 중 조금은 무뎌질 수 있을 줄 알았다.”(3월10일) 구타에 따른 부상의 기록도 보인다. “가슴뼈가 계속 아팠다. 운동하는 내내 남들은 그게 그렇게 싫은가 보다. 감독도 선배들도 자기들 아픈 건 엄청 아픈 거고, 나는 아파서도 안 되는 건지 서럽고 서러운 하루다. 진짜 그만하고 싶다. 눈물만 흐른다. 그만하고 싶다.”(3월11일)
2019년 3월14일
“Dobby is free♡.”
구타 사건이 있던 즈음인 3월12일 최 선수는 “왜 뒤에서 내 욕 안 할 거란 생각을 했을까. 내 욕한다고 내 멘탈이 무너지는 걸까. 왜 이렇게 서러운 마음인지, 그만 좀 괴롭히라고 소리치고 싶다”고 썼다. 그리고 이틀 뒤인 14일 ‘Dobby is free’ 문구가 등장한다. 도비(Dobby)는 영화 <해리포터>에 나오는 요정 캐릭터로 노예의 삶을 상징한다. 이날 일기에는 주어 없이 “물루라바 시합 감”이라고 적혀 있다. 실제로 이날부터 사흘간 장 선수는 오스트레일리아 물루라바에서 열린 국제대회에 참가했다. 일기에 다른 설명은 없다. 사흘 뒤인 3월17일에는 “Dobby is free. the end”라고 적었다. 장 선수가 돌아오면서 최 선수의 짧은 자유는 끝난 것이다. 그는 경주시청의 성적을 위한 도비(노예)의 삶을 살아야 했다. 팀 복귀 뒤에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경북 칠곡군 왜관읍의 고 최숙현 선수 고향 마을에 “가혹행위 철저 수사”를 촉구하는 펼침막이 걸려 있다. 장철규 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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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사람들이 두렵다. 내가 죄인인가?”
2019년 7월10일
“예전 뉴질랜드에서 썼던 일지를 읽어봤다. 나 정말 열심히 했구나. 그 누구보다 더 열심히 했네. 근데 다 헛수고가 됐구나. 사람은 사람이 적인 게 맞는데 그만 상처받고 싶다. 너무 힘이 들어서 버틸 수가 없다. 솔직히 너무 힘들다.(중략) 나 조금은 나아졌다고 생각했는데 또다시 하루하루 버티고 있어. 고기. 복숭아.”
최 선수가 전지훈련 일지를 다시 읽어본 이유는 무엇일까. 고기, 복숭아라는 단어를 쓴 이유도 알 길이 없다. 전지훈련 당시의 구타 사건을 다시 떠올린 것인지도 모른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일까. 최 선수가 일지에 남긴 마지막 기록은 아래와 같다.
“힘들 때 생각들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저 사람들이 두렵다. 정말 저 사람들 생각처럼 내가 죄인인가? 자기를 가지고 놀았으면 제자리에 돌려둬라. 나는 너를 가지고 논 적 없다. 정말 힘들었고 아팠다. 아직도 너네를 보면 옛날의 일들이 다 생각난다. 잊을 수가 없다. 아니 잊혀지지가 않는다. (중략) 내가 어떻게 하는 게 맞는 일인 걸까. 솔직히 뭘 어찌해야 될지 모르겠다. 마음이 불안하다. 집중할 곳이 필요했고 글 쓰는 것으로 선택해봤다. 운동을 못 하겠다. 마음도 안 잡힐뿐더러 여기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예전 모습들 그리고 이 특유의 분위기 속에서 나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토가 나올 정도로 겁이 난다. 죽어버렸으면. (중략) 그래도 후회하지는 않는다. 아프긴 아파도. 너무 마음이 아프다. 생각조차 힘들다. 버거워.”
2017년과 2019년 일지를 함께 검토하던 고 최숙현 선수 아버지 최영희씨는 “일지를 유품으로 받고서야 숙현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자세히 알게 됐다”며 “숙현이와 같은 희생은 앞으로 없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장철규 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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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그 사람들 죄를 밝혀줘”
2020년 1월 최 선수는 경주시청에서 부산시청으로 소속을 옮겼다. 2017년처럼 운동을 그만두고 싶지는 않았다. 운동을 이어가고 싶었지만 더 이상 경주시청 팀에서 운동을 할 수는 없었다. 한달 뒤인 2월6일 아버지 최씨는 경주시청에 가혹행위와 관련된 민원을 접수시켰다. 경주시는 곧바로 이를 경주시체육회에 알린다. 곧이어 체육회에서는 뉴질랜드 전지훈련 중인 김 감독에게 소식을 전했다. 같은 달 10일 대한철인3종협회도 민원을 인지한다. 시청에서 협회까지 거의 실시간으로 교감이 이뤄졌다. 그리고 침묵했다. 결국 아버지 최씨는 이틀 뒤 12일 이 사건을 인권위원회로 가져갔다. 당시 인권위에는 ‘조재범(전 여자쇼트트랙 국가대표 코치) 사건’을 계기로 스포츠인권 특별조사단이 출범해 있었다. 2019년 7~8월 인권실태조사까지 나선 상황이라 적극적으로 나서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인권위로부터 “3개월이 넘게 걸릴 수 있다. 사법기관에서 처리하는 게 빠를 것 같다”는 답변을 듣게 된다.
최 선수가 직접 나섰다. 3월4일 경주시에 ‘복숭아 사건’을 적은 민원 서류를 낸다. 같은 날 검찰에도 고소장을 제출한다. ‘그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4월7일 대한체육회 스포츠인권센터에 다시 신고했다. 그리고 5월 반격이 시작됐다. 김 감독과 장 선수는 최 선수를 제외한 전·현직 선수들을 불러모아 선수 폭행 여부에 대한 진술서를 쓰도록 하고 이를 직접 검토한 것이다. 김 감독이 당시 “내 밥줄을 건드리는 것은 인정 못 한다. 내 등에 칼 꽂는 제자는 가만 안 둔다”고 이들을 협박한 내용이 국회 청문회에서 공개되기도 했다.
최 선수는 6월이 되자 다시 한번 용기를 냈다. 검찰에 변호인을 통해 의견서를 제출해 수사를 촉구했다. 하지만 이때도 움직임은 없었다. 민원과 고소를 계속하는 동안 최 선수는 부산시청 훈련에 성실하게 참가했다. 그리고 6월26일 4등의 삶을 스스로 마감했다. 한달이 흘렀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이 사건을 언급하면서 수사는 급물살을 탔다. 대한체육회가 움직였다. 국회 청문회가 열렸다. 그 자리에 김규봉 감독, 안주현씨, 장윤정 선수는 불참했다. 7월29일 대한체육회는 대한철인3종협회를 관리단체로 지정했다. 협회는 기존 모든 권리와 권한이 중지되고 체육회가 구성하는 관리위가 업무를 관장한다. 임원진은 모두 해임됐고, 가해자들은 영구제명됐다. 정용철 서강대학교 교수(스포츠심리학)는 “최 선수 사건을 계기로 등수를 위해 반인권적 행위를 해도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인식 자체를 이제 끝내야 한다”며 “방법을 몰라서가 아니다. 누가 실행을 막고 있는지 찾아 거기부터 손봐야 한다”고 했다.
대구 경산 칠곡/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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