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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7 (화)

우크라이나 인질범이 추천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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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경향신문

영화 <지구생명체>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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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로부터 북서쪽으로 400㎞ 떨어진 인구 20만의 도시 루츠크. 이곳에서 지난 7월 21일(현지시간) 나라 전체를 발칵 뒤집히게 만든 인질극이 벌어졌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인질범의 ‘황당한’ 요구 때문에 화제가 됐다. 덩달아 개봉한 지 15년 지난 다큐멘터리 영화가 새삼 주목받고 있다.

이날 오전 9시쯤부터 승객 20여명을 태우고 달리던 버스에서 인질극이 벌어졌다. 인질범 막심 크리보슈(44)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장관과 법원 수뇌부, 국회의원 등이 “나는 합법적 테러리스트다”라고 말하는 영상을 유튜브에 올리라고 요구했다. 크리보슈는 자신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인질들의 안전을 장담할 수 없으며, 다른 장소에 설치한 폭발물을 터뜨릴 것이라고 겁을 줬다.

크리보슈는 우크라이나 경찰 2인자가 직접 나서 설득작업을 벌인 뒤에야 임신부를 포함해 인질 3명을 우선 풀어줬다. 그러고는 ‘황당한’ 요구를 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페이스북에 2005년 개봉한 영화 <지구생명체(Earthlings)>를 보라고 권하는 동영상을 올리라”고 한 것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곧장 모든 국민에게 이 영화를 보라며 추천하는 동영상을 올렸다. 크리보슈는 이를 확인한 뒤 남은 인질을 모두 풀어주고 경찰에 투항했다.

이후 언론의 관심은 크리보슈의 이력과 그가 추천한 영화의 메시지로 향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크리보슈는 사기, 불법 무기 취급으로 10년간 감옥에서 복역한 전력이 있다. 한편으론 동물권운동가로서 유기견 구호활동을 했다.

그가 대통령까지 끌어들여 전 국민이 보도록 추천하게 만든 영화 <지구생명체>는 모피산업, 투우, 개 생산 공장 등 인류가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동물들을 잔혹하게 착취하는 모습을 고발한다. 2005년 영화제작자들의 사회운동가로서 공로를 치하하는 아티비스트(Artivist) 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 다큐멘터리상을 받았다. 내레이션을 맡은 할리우드 배우 호아킨 피닉스는 2007년 한 인터뷰에서 “내가 여태껏 참여했던 작품 중 관객들로 하여금 가장 많은 말을 하게 만드는 작품”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로도 인류의 동물 착취는 계속됐다. 이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지구생명체>의 각본·연출을 맡았던 숀 먼슨은 2015년 속편 격인 <유니티(Unity)>를 통해 인류가 철학과 종교, 문학을 가지고 있음에도 왜 살인과 동물 학대, 자연파괴를 막아내지 못하는지를 따졌다. 피닉스는 올해 초 동물보호활동가들과 함께 영국 런던의 타워브리지에 “공장식 목축은 지구를 파괴한다. 채식주의자로 돌아가자”라고 쓴 현수막을 내걸었다.

아르센 아바코프 우크라이나 내무장관은 동물을 보호하자며 인질극까지 벌인 크리보슈를 두고 자신만의 왜곡된 세계관을 가진 불안정한 사람으로 깎아내렸다. 하지만 인간의 탐욕으로 소리 없이 병들어가는 지구를 위태롭게 바라보는 이는 크리보슈 말고도 많다.

박효재 기자 mann616@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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