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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단독]적발돼도 제재 없는 이상한 입찰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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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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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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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산업개발이 80억원 규모의 관급공사에서 입찰비리를 저지르고도 아무런 행정제재를 받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사업을 발주한 경기 광주시는 석연치 않은 이유를 들어 한전산업개발에 대한 제재를 미루고 있다. 한전산업개발은 발전설비 운전·정비업체로 1990년 한국전력의 100% 자회사로 편입됐다가 2003년 민영화됐다. 최대주주는 31%의 지분을 보유한 한국자유총연맹, 2대 주주는 29% 지분을 갖고 있는 한국전력공사다.

입찰비리가 벌어진 사업은 2012년 광주시가 발주한 노후 도로조명 개선사업으로 83억원 규모의 대형 프로젝트다. 한전산업개발이 2011년 ESCO(에스코·에너지절약)사업 부문을 신설한 이래 수주한 최대 관급공사다. 2012년 광주시는 도로사업과에서 ‘에너지 절약사업’의 일환으로 가로등 교체사업을 추진했고, 2012년 12월 20일 국가전자조달시스템인 나라장터에 노후 도로조명 개선사업 제안서를 등록했다. 조달청 나라장터 사업 제안요청서에 명시된 사업 내용은 광주시 읍·면·동 노후 가로등, 보안등 1만5444곳의 램프와 안정기, 등기구 교체다.

해당 사업은 발주부터 계약체결, 공사까지 전 과정이 비리로 얼룩졌다. 사업 계약은 부당 체결됐고 사업 진행 과정에서 입찰방해와 밀어주기 담합, 뇌물 수수 등이 벌어졌다. 감사원은 ‘계약분야 회계비리 특별점검’을 통해 비리 사실을 적발했고, 여기에 연루된 광주시 공무원과 한전산업개발 담당자는 입찰방해로 형사처벌(2016년 10월 27일 대법원)을 받았다.

입찰비리에 적발된 사업자는 부정당업자로 등록돼 입찰참가자격제한처분(입찰제한)을 받는다. 입찰제한 기간이 끝난 뒤에도 입찰제한 기록은 이후 입찰 적격심사에서 감점 요인으로 적용돼 불이익을 입는다. 실효성 있는 입찰비리 처벌을 통해 재발을 막겠다는 취지다.

담합·뇌물 수수로 83억원 공사 따내
그런데 해당 사업 과정에서 ‘비리와 편법’을 동원한 한전산업개발은 이제껏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았다. 감사원과 법원, 광주시 행정사무감사를 통해 비리가 드러났지만 회사는 아무런 불이익을 입지 않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광주시는 한전산업개발과 업무협약(MOU)을 체결해 사업을 진행하는 ‘그린리스’ 방식으로 도로조명 개선사업을 추진했다. 하지만 그린리스 방식이 특혜 시비를 부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자 광주시는 사업자 선정 방식을 2단계 공개입찰(1단계 서류전형, 2단계 최저가 낙찰)로 전환했다. 공개입찰에는 한전산업개발을 포함해 7개 업체가 응찰했고, 2013년 1월 18일 한전산업개발이 사업자로 선정됐다.

광주시 공무원과 한전산업개발 담당자는 서류전형 통과를 위해 자격 제한을 한전산업개발에 맞춘 ‘특별시방서’를 만들었고, 한전산업개발은 이른바 ‘들러리’ 업체 2곳과 함께 1차 서류전형을 통과했다. 이후 한전산업개발은 들러리 업체와 입찰가격 담합을 벌여 최저가 낙찰에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광주시 공무원은 억대 뇌물을 수수했다.

해당 분야 사업과 관련해 사업제안서 한번 작성해본 경험이 없는 한전산업개발은 사업 수주 이후 하도급 업체에 일체의 사업을 맡겼다. 대신 하도급 업체로부터 한전산업개발 명의로 사업을 수주한 대가로 입찰금액의 일부를 받기로 사전에 공모했다.

이들의 범행 사실은 경쟁업체의 고발을 통해 덜미가 잡혔다. 2015년 2월 검찰이 회사 직원 2명을 입찰방해 혐의로 기소하자 한전산업개발 측은 대형 법무법인을 통해 회사 차원의 대응에 나섰다. 한전산업개발은 “형사소송 결과에 따라 회사의 입찰 참가자격이 제한되는 등 회사 사업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소송”이라며 적극 응소하겠다는 내부 방침을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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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등이 설치된 경기 광주시내 도로 전경 / 광주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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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과 2심에서 한전산업개발 직원에 대한 유죄판결이 나오자 변호인 측은 상고이유서에서 “두 사람의 입찰방해죄에 대한 유죄가 확정될 경우 발주처인 광주시가 한전산업개발에 대해 ‘담합행위’를 이유로 지방계약법에 따라 입찰참가자격제한처분을 내릴 것”이라며 “(한전산업개발이) 이렇게 되면 최대 2년간 국가, 지방자치단체, 한국전력, 한국남부발전 외 5개사, 공공기관의 입찰에 참여할 수 없게 돼 매출 감소를 넘어 존폐 위기에 빠지게 될 것”이라며 선처를 호소했다.

광주시 “다시 한 번 검토하겠다”
대법원은 한전산업개발의 상고를 기각했고, 담당 직원 2명 모두 유죄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한전산업개발 측이 우려했던 매출 감소와 존폐 위기는 벌어지지 않았다. 예상과 달리 광주시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발주처인 광주시가 부정당제재 절차를 밟지 않으면 다른 기관에서는 한전산업개발의 입찰비리 여부를 알 수 없다. 당연히 입찰 제한도 이뤄지지 않는다. 중소벤처기업부 관계자는 “발주처인 지자체에서 문제가 생긴 사업체를 부정당업자로 지정정보처리장치에 등록해야 제재 내역과 처분 사실이 공유된다”며 “지자체에서 누락을 하면 정부 부처에서도 별도로 파악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광주시는 문제의 사업이 서류상 ‘일반 위탁사업’으로 분류돼 있어 부정당제재를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발주처의 사업자에 대한 제재는 지방자치단체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지방계약법)을 근거로 이뤄진다. 그런데 해당 사업은 애초에 계약체결 권한이 없는 사업부서(도로사업과)가 민관협력·위탁 방식으로 발주하고 계약을 체결한 사업이어서 지방계약법을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광주시 관계자는 “정상적인 절차를 밟아 계약담당 공무원이 한전산업개발과 계약을 체결했다면 적법한 절차에 따라 입찰참가 제한과 같은 처분을 내릴 수 있지만 지금처럼 비정상적인 계약이 이뤄진 경우에는 지자체에서 손 쓸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요컨대 사업 발주·계약 시기부터 불법적인 방식을 택하면 차후 문제가 생기더라도 입찰제한 조치와 같은 치명적인 제재를 피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한전산업개발 측은 “입찰제한 조치를 예상하고 회사 차원에서 대응한 것은 사실”이라며 “발주처에서 움직이지 않는데 회사에서 먼저 나서서 처분 여부를 물어볼 수는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한편 광주시는 “한전산업개발 제재 여부와 관련해 법률 검토 과정에서 놓친 부분이 없는지 다시 한 번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추가로 전했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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