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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문화의 수수께끼 - 마빈 해리스 [윤중목의 내 인생의 책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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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망치

[경향신문]

경향신문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로다!”의 햄릿풍을 빌려, 억울한 자여, 그대 이름은 돼지로다! 아니, 돼지한테 무슨 일이 있길래? ‘돼지’ ‘돼지우리’ 하면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이 뭘까? ‘더럽다’ ‘냄새나다’ 아닐까?

자신이 싸놓은 똥오줌이 질척대는 바닥에 둔중한 몸을 연신 비벼대는 돼지는, 실은 불결한 동물이라서가 아니다. 돼지 피부엔 땀구멍, 땀샘이 없단다. 코, 돼지코 빼곤. 그래서 부득불 외부의 습기로 피부를 젖게 해야 한다. 그리하지 않으면 더위는, 정확히는 29도가 넘는 기온은 돼지에겐 그만 묫자리 예약과 마찬가지다. 그런즉 돼지로선 ‘똥오줌 샤워’가 생명보존을 위한 고육지책인 거다. 그렇게 천하 불결이란 만고의 누명을 덮어쓴 억울한 돼지 되시겠다.

이 책은 인간의 문화적, 종교적 생활양식에 관계된 오랜 편견과 선입관을 저자의 문화생태학적 통찰과 인류학적 상상으로 여지없이 뒤집어 보여준다. 11개의 대표주제를 들어서. 위의 돼지 경우도 그 하나인데, 유대교와 이슬람교에서 “돼지는 더러우니 먹지도 만지지도 마라”는 야훼나 알라의 가르침, 즉 ‘돼지 혐오’라는 금기의 숨겨진 배경과 이유를 밝혀준다. ‘니체의 망치’ 같다고나 할까.

그렇게 문화적, 종교적 무지, 공포, 오해, 갈등을 초래하는 폐석들을 들어내서 모두 깨뜨려준다. 요는, 낡고 그른 지식의 아집과 허상을 깨뜨리지 않고서는 새로운 지식, 새로운 세계로의 항해는 불가한 법 아닌가.

대학 시절, 1학점짜리 ‘시청각 영어’ 교양선택과목 시간에 도통 수업과는 무관한데도 리포트 과제로까지 내주신 강사님의 유난 덕에 읽게 된 책. 그 한 권을 통해 직접 얻은 지식보다도, 절대적인 줄로 알고 신봉하는 지식이란 얼마나 허약한가, 라는 한줄기 통렬한 깨침을 준 책. 1학점 아니라 유효기간 평생의 100학점 가치가 어찌 아니었겠나.

윤중목 | 시인·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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