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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기자메모]원칙 허문 기재부의 중위소득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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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경향신문

“기획재정부의 허락을 구하는 자리였다.”

내년도 기준 중위소득 결정에 참여한 한 전문가는 지난달 31일 중앙생활보장위원회가 끝난 직후 이렇게 말했다. “최저생계비에서 중위소득으로 복지급여 기준을 개편한 취지가 무색해졌다”고 말한 전문가도 있었다. 왜 이런 말이 나오는 것일까.

2021년도 기준 중위소득은 4인 가구 487만6290원, 1인 가구 182만7831원으로 결정됐다. 4인 가구는 2.68% 인상에 그쳤지만, 복지급여 대상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1인 가구는 4.02% 인상됐다. 1인 가구 인상폭은 가계금융복지조사에서 나타난 2016~2018년 중위소득 증가율 평균(4.69%)과 엇비슷하다. 균등화(가구원 수에 따라 소득을 보정하는 과정) 방식을 1인 가구에 유리하게 바꿨기 때문이다. 이것만큼은 반가운 일이다.

문제는 ‘격차해소기간’을 정하는 과정에서 원칙이 흔들렸다는 점이다. 중위소득을 산출하는 근거 자료를 통계청 가계동향조사에서 내년치부터 가계금융복지조사로 바꾸면서 발생하는 격차를 몇 년에 걸쳐 해소할지는 중요한 문제였다. 원래는 3년과 6년의 선택지가 테이블 위에 올라올 것으로 예상됐고, 위원 다수는 3년을 지지했다. 이렇게 해야 인상폭이 커지고, 3년에 한 번씩 편성하도록 돼 있는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도 짜임새 있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재부는 중생보위 회의를 사흘 앞두고 느닷없이 10년을 제시했다. 이에 원래 ‘3년과 6년’이었던 논의는 ‘6년과 10년’으로 초점이 옮겨졌고, 결국 6년으로 결정됐다.

기재부는 기습전략으로 재정건전성을 지켜냈다고 자부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 같은 ‘승리’는 중위소득을 결정하는 정부와 전문가들의 자리에 대표를 내보내지 못하는 다수 빈곤층의 희생에 바탕한 것이다. 통계청의 소득통계를 기준으로 중위소득을 결정하는 제도가 무색하게 됐다. 기재부가 증명한 것은 단 사흘 만에 ‘통계’가 아닌 ‘힘의 논리’에 따라 중위소득을 결정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알려왔습니다
기획재정부는 격차해소기간 결정과 관련해 7월 3일 열린 중앙생활보장위원회 기초생계소위TF에서 경제학·사회복지학 등 전문가들의 토론 끝에 6년안과 10년안이 다수안으로, 3년안이 소수안으로 채택됐으며 기재부가 사흘 앞두고 10년안을 제시한 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습니다.


박은하 | 경제부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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