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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토)

30년 전 여름 극장가를 휩쓴 최고 흥행작 [오래 전 ‘이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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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1960년부터 2010년까지 10년마다 경향신문의 같은 날 보도를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매일 업데이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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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장군의 아들’ 중 한 장면. 경향신문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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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8월3일 여름 극장가 방화 맹위

여름방학과 휴가시즌이 겹치는 8월은 극장가 최대 성수기로 꼽힙니다.

이 시기가 되면 해외 블록버스터를 비롯한 기대작들이 각축전이 벌이곤 하죠.

코로나19로 우울한 상반기를 보낸 올해 영화계도 본격적인 방학시즌을 맞아 속속 관객들을 맞이하고 있는 중입니다.

30년 전 극장가에는 어떤 영화들이 인기를 끌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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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 극장가는 한국영화가 외화를 누르며 맹위를 떨치고 있어 영화인들의 사기가 오르고 있다. 지난 6월말부터 7월중순까지 서울 개봉관에서 선보인 7편의 한국영화와 15편의 외화 가운데 흥행에 성공한 ‘장군의 아들’과 ‘남부군’ 등이 청소년층을 파고들며 수위를 달리고 있다.”

1990년에는 8월에는 여름 대목을 노리며 한국영화붐을 조성해 온 ‘장군의 아들’이 개봉 한달만에 27만명을 돌파하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멀티플렉스 극장이 보편화된 요즘과 달리, 개봉작이 한 도시 한 극장에서만 상영하던 시절이었습니다. 30년 전 27만명 관객 동원은 요즘 기록으로 환산하면 100만명에 가까운 흥행기록입니다.

1990년 6월 개봉한 ‘장군의 아들’은 서울 단성사에서 6개월간 상영하며 서울에서만 총 60만 관객을 동원합니다. 이전까지 한국 영화 최고 흥행작은 1977년 김호선 감독의 ‘겨울여자’(58만5775명)이었는데요, ‘장군의 아들’이 13년 만에 기록을 갈아치우며 한국영화 71년 사상 최대 흥행작에 등극하게 됩니다.

동시에 임권택 감독은 최고 흥행감독으로, 당시 신인배우였던 박상민과 신현준, 김승우, 방은희 등은 스타로 부상하죠. ‘장군의 아들’은 이후 속편과 3편 등이 제작되며 인기 한국영화 시리즈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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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장군의 아들’이 관객 60만을 돌파하여 흥행신기록을 수립한 것을 기념,단성사앞에서 자축행사를 연 모습. 1990년 11월. 경향신문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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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또 다른 한국영화 ‘남부군’도 흥행몰이를 했습니다. 총 32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1990년 상반기 관객동원 1위를 기록하고 있던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31만명)를 앞질렀습니다. ‘장군의 아들’과 함께 젊은층으로부터 인기를 얻은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도 평작이상의 흥행을 기록했네요.

당시 외화들의 성적을 어땠을까요?

홍콩영화 ‘지존계상’이 관객몰이에 성공한 반면 거센 돌풍을 예상했던 ‘백투터퓨처 3’와 ‘배트맨’은 기대이하의 ‘평작 수준’에 머물렀네요. 개봉 당시 예매표가 매진되어 빅히트를 예상했던 ‘닌자거북이’와 ‘고스트바스터즈2’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1990년 여름 극장가에는 영화 홍보를 위해 한국을 찾은 서극 감독의 내한소식도 전해졌습니다.

특수효과 촬영을 통해 당시 영화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준 서극 감독은 ‘천녀유혼’ 시리즈로 당시에도 많은 한국팬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영화 ‘소오강호’ 관객 사인회를 위해 한국에 온 서극 감독은 “동양영화의 발전을 위해 한국영화에서 기꺼이 자신의 기술을 제공하겠다”라고 말했네요.

그렇다면 1990년 한해동안 외화와 방화를 통털어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한 영화는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패트릭 스웨이지와 데미 무어 주연의 ‘사랑과 영혼’(168만)이었습니다.

노정연 기자 dana_f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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