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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성추행 항의하니 '직장 내 괴롭힘'에 해고까지···'딱 한번만' 하는 상사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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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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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희롱과 성추행을 겪은 피해자들은 성적 수치심과 굴욕감으로 깊은 고통을 겪게 된다. 가슴에 구멍이 난 모습을 표현한 일러스트 | 이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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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임원이 수시로 카카오톡을 보내 사적인 얘기를 했습니다. 휴가나 주말에도 이어졌습니다. 상대방이 임원이어서 강경하게 의사 표시를 하지 못했습니다. 퇴근 시간에 맞춰 회의를 시작하고 연차를 못쓰게 했습니다. 막말과 부당한 업무지시도 심각합니다.”(직장인 A씨)

“상사가 폭언과 성희롱을 일삼습니다. 일주일에 (성)관계를 몇 번 하느냐는 질문도 들었습니다. 동료들이 같이 들었지만 증언을 해줄까 걱정입니다”(직장인 B씨)

“이사가 여성 직원의 신체를 지속적으로 만지는 성추행과 성희롱을 일삼았습니다. 제가 못참겠다고 말하자 저를 내보내기 위해 괴롭히고 있습니다. 야근을 밥 먹듯 해도 수당 한번 나오지 않고 아파도 병원도 가지 못하고 있습니다.”(직장인 C씨)

“입사 이후 임원로부터 성희롱을 당해왔습니다. 많이 힘드냐며 어깨를 주무르다가 얼굴을 만졌고 악수하면서 손바닥을 꾹 누르고, 혼전임신 얘기를 꺼내기도 했습니다. 수치스럽고 모멸감이 느껴졌지만 핵심 임원에게 밉보이면 그만둘 수밖에 없기 때문에 참고 지내왔습니다. 증거가 별로 없는데 신고할 수 있을까요.(직장인 D씨)

“상사의 성추행을 참다 못해 회사에 신고했습니다. 가해자는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났지만 가해자와 친한 상사가 저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인사를 받지 않고 업무공유를 해 주지 않고는 제 업무태도를 문제 삼으면서 제가 책임감이 없고 능력이 부족하다는 소문을 내고 있습니다.”(직장인 E씨)

“지속적으로 성희롱과 성추행을 하는 상사가 회식 자리에서 제 팔을 붙잡고 귓속말로 술을 따드라고 강요했습니다. 평가 권한을 가진 임원이기 때문에 거부하기 어려워 술을 따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신고를 할 경우 상사가 부인할 것 같습니다.”(직장인 F씨)

“성희롱에 항의했다고 이전에 없던 인사평가 시스템을 적용받아 해고를 당했습니다. 계약기간이 남아있고 평점도 높았는데 저를 해고했습니다. 성추행과 갑질을 한 당사자는 아무 징계 없이 일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직장인 G씨)

‘직장갑질 119’가 그간 제보 받은 성희롱·성추행 사례들을 3일 공개했다. 대체로 상사로부터 성희롱과 성추행을 지속적으로 겪었지만 가해자가 사내에서 우월적 지위에 있기 때문에 신고가 어렵다는 내용이다. 신고를 했더니 상사는 사실관계를 부인하고 동료들은 못본 척 하는 가운데 해고 등의 보복을 당했다는 내용도 상당수다.

직장 내 성희롱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성적인 언동’을 함으로써 상대에게 성적 굴욕감을 느끼게 하는 모든 행위를 포괄한다. 그중 신체 접촉을 한 경우에는 법적으로 주로 성추행으로 본다.

직장갑질 119가 제보를 분석해 보니, ‘직장 상사 가해자’들에겐 일정한 행동 패턴이 있었다. 딱 한번만 신체 접촉을 하는 이들은 없었다. 처음엔 윙크 등의 비접촉 성희롱을 시도했다가 상대의 반응을 살펴가며 강도를 점차 높여갔다. 그래서 직장갑질 119가 시작한 운동이 ‘119말고 112 캠페인’이다. 폭행과 성추행을 ‘딱 한번만’ 하는 상사는 없기 때문에 경찰에 바로 신고하자는 캠페인이다. 직장갑질119는 “처음에 신고하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는 제보가 적지 않았다”면서 “신체 접촉 행위를 당했을 때는 바로 112에 신고해,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죄로 성폭력 특별법에 따라 현행범으로 처벌할 것을 요구하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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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집회의 한 참가자 손바닥에 ‘미투’와 함께 ‘당신의 가해자를 폭로하라(#Balance Ton Porc)’는 구호가 써 있다. 파리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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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음, 기록, ‘주변에 알리기’ 등의 방법도 활용하는 게 좋다. 직장갑질119는 “가해자들은 보통 성희롱 직후 가해 사실을 인정하기 때문에 가해자에게 성희롱 사실을 확인 받고 이를 녹음해 두는 것도 매우 유용하다”면서 “성추행 즉시 경찰에 신고를 하는 것만으로도 유리한 증거가 되며, 소리를 질러 주변에 알리는 것도 유용한 증거가 된다”고 설명했다.

직장갑질 119의 윤지영 변호사는 “직장내 성희롱은 권력관계에 기반 하기 때문에 한 번 발생한 성희롱은 이후에 계속 반복되기 마련이므로 초기 발생 시 즉각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법원이나 정부기관은 성희롱의 밀행성을 고려하여 피해자의 증언이 구체적이고 일관된 경우 증언만으로도 성희롱 사실을 인정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성희롱 상황을 구체적으로 자세히 기록해 둘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직장갑질 119는 이날 ‘직장 내 성희롱·성추행 타파 5계명’도 공개했다. 5계명은 ①성추행을 당한 즉시 경찰에 신고하기 ②피해 사실을 기록하고 증거 남기기 ③주변에 도움 요청하기 ④사과인지, 징계인지, 피해 구제인지 원하는 바를 명확히 정하기 ⑤성희롱 예방에 최선을 다하기 등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성희롱·성추행을 막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사법부와 정부의 강력한 의지다. 직장갑질 119는 “(성희롱·성추행) 신고를 이유로 한 불리한 처우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는 범죄행위”라면서 “그러나 정부의 솜방망이 처벌로 인해 보복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비정규직 노동자의 경우 “근로계약관계가 인정되지 않아 범죄의 사각지대가 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직장 내 성희롱·성추행 사건에서도 비정규직 노동자는 가장 취약한 위치에 놓이는 셈이다.

송윤경 기자 ky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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