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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화가’ 독일 팀 아이텔 작품전

현대인의 단절과 고독, 고요한 울림

회화 67점 사진·책 400점 함께 전시

중앙일보

팀 아이텔의 2003년 작 ‘해변’(oil on canvas, 25x20㎝, 독일 Viehof collection). [사진 대구미술관]


꿈일까, 현실일까. 어두운 실내 공간, 작은 배에 몸을 실은 남녀가 보인다. 남녀의 얼굴은 보이지 않고, 화면 전체에는 어둡고 불안한 공기가 팽팽하게 감돈다. 독일 출신 화가 팀 아이텔(Tim Eitel·49)의 대표작 중 하나인 ‘보트’(2004)다.

이 작가의 신작 ‘멕시코 정원_전경 1, 2’는 한 화면에 있지만, 전혀 ‘함께’ 있지 않은 것 같은 두 여성을 보여준다. 들여다보면 두 여성 외에도 사람들이 더 있다. 그러나 이들은 철저히 ‘따로’ 다. 이 두 점의 대작은 지난 3~5월 코로나19로 유럽 도시가 봉쇄됐을 때 작가가 파리에서 격리 생활을 하며 완성한 것이다.

일상의 기묘한 순간을 포착해 화폭에 재구성해온 화가 아이텔의 개인전 ‘무제(2001-2020)’가 지금 대구미술관(관장 최은주)에서 열리고 있다. 작가의 20년 작업을 망라한 대규모전이다.

대표작 ‘보트’ 외에 ‘검은 모래’(2004), ‘오프닝’(2006), ‘푸른 하늘’(2018) 등 회화 67점과 그의 그림의 모티프가 된 사진 370여장, 작품에 영향을 준 책 30여권도 함께 소개한다. 대구미술관 측이 8개국 50여 곳의 소장자와 기관에 협조를 구한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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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를 위해 완성한 신작 ‘멕시코 정원_전경 2’(oil on canvas, 210x190㎝). [사진 대구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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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아이텔, Red and Blue 빨강과 파랑 2002 (Oil, acrylic on canvas 90 x 120cm) [대구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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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독 슈투트가르트 인근 레온베르크 출신의 아이텔은 철학과 문학을 공부하다 과거 동독지역이었던 라이프치히에서 회화를 전공했다. 전통 회화성이 강했던 동독과 추상성이 강한 서독의 화풍이 더해진 라이프치히 화파의 스타일을 계승해 ‘신 라이프치히 화파(Neue Leipziger Schule)’ 화가로 불린다. 빼어난 테크닉에 시적 정서가 결합된 그의 작품은 색감, 화면 구성, 등 돌린 인물 등 특유의 표현을 통해 현대인의 내면을 울림 있게 담아낸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상 풍경을 사진으로 찍은 뒤 필요한 부분만을 따와 캔버스에 담는다. 이 과정에서 그가 처음에 찍은 사진 속 현실 풍경은 전혀 새로운 세계, 비현실적이고, 모호한 풍경으로 변모한다.

그는 몇 년 전 독일의 인터뷰 매체 ‘프렌즈 오브 프렌드’와의 인터뷰에서 “그림이란 우리 세계를 또 다른 세계로 바꿔 보여주는 것”이라며 “(내가 추구하는) 이런 방식은 연극과도 닮았다”고 말한 바 있다. 어두운 무대 위 배우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의도적으로 인공성(artificiality)을 만들어 낸다는 얘기다.

그의 그림에는 얼굴 정면을 보여주는 인물이 거의 없다. 자화상 ‘앉아 있는 형상’ 외에는 모두 측면이나 뒷모습뿐이다. 그는 멕시코 건축가 루이스 바라간(1902~1988)을 존경한다고 밝혀왔다. 바라간은 최소한의 건축언어로 고요함 속에서 강렬함을 추구한 건축가다. 기하학적인 도형으로 표현한 공간과 “이상하리만치 조용한” 화면 세계가 만들어진 맥락이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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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아이텔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전시장 전경. [사진 대구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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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아이텔 전시가 열리고 있는 대구미술관 전시장. [사진 대구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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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진 대구미술관 전시기획팀장은 “관객들에게 다양한 해석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아이텔의 작품은 ‘사색의 회화’라 부를 수 있다”며 “사실적이면서도 추상적이고, 모호한 이미지로 가득한 그의 작품은 친근하면서도 고립된 인간의 다양한 감정과 내면을 돌아보게 한다”고 말했다. 관람 예약은 인터파크에서 온라인으로 해야 하며, 매주 화~일 1일 4회 총 200명까지만 볼 수 있다. 전시는 10월 18일까지.

대구=이은주 문화선임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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