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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이기수 칼럼]못 믿을 게 ‘선의’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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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8월의 첫날, ‘조세저항 국민집회’가 열렸다. 세입자 거주권을 4년으로 늘리고, 전·월세 인상을 5% 내로 묶은 임대차 3법이 화두였다. 비 뿌리는 하늘로 신발을 던졌다. 포털 검색창엔 ‘사유재산 강탈정부’라고 썼다. ‘황구징포(黃口徵布)’란 말도 회자됐다. 조선시대 아이에게까지 군포를 물리던 짓을 비유한 것이다. 다주택자가 약자인가. 되묻는 머릿속에 ‘선의(善意)’라는 글자가 맺힌다.

경향신문

이기수 논설위원


주변엔 ‘착한 집주인’ 얘기도 많다. 52만명이 된 임대사업자 장려·양성화 정책도 3년 전 선의로 출발했다. 집회엔 세금 혜택받고 임대료 5% 인상 약속을 지킨 ‘억울한 임대인’도 섞였을 게다. 문제는 그 선을 넘은 투기, 선의를 악용한 불로소득에 있다. 등록임대사업자 70%가 규정을 어겼다는 자체 실사결과가 있었다. 서울 신규주택 4채 중 3채는 다주택자가 사들이고, 강남4구와 ‘마용성’ 주택 거래의 60~70%가 전세 끼고 사는 갭투자이다. 임대사업·펀드로 세테크하고 ‘투기의 꽃길’ 걸으며 단물만 챙긴 사람도 많았다는 뜻이다. 뛸수록 수요가 몰리는 게 대한민국 집값이다. 그 투기를 끊지 못하면 실수요자가 흔들린다. 미래통합당이 다주택자가 몰려올 장외집회를 선뜻 못하는 이유도 짐작된다. 과거 트라우마도 있지만 전국에 38%(서울 51%)나 되는 임차인이 무서울 게다. 좌불안석인 세입자 눈높이에 세상이 먼저 부응할 때가 됐다. 법은 공정하되 따뜻해야 한다.

끝까지 가봐야 알 게 또 있다. 검찰개혁이다. 법무검찰개혁위에서 검찰총장 수사지휘권을 고검장에 분산하고, 법무장관이 고검장을 지휘하라고 권고했다. ‘옥상옥’ 권고안이다. 서초동에 ‘TK 아성’을 쌓은 MB 정부의 김경한 법무장관, 채동욱 총장을 찍어낸 박근혜 정부의 황교안 법무장관이 있었다. 우병우 민정수석이 검찰조사실에서 팔짱 끼고 웃던 게 불과 4년 전이다. 제2의 김경한·황교안·우병우가 쥐락펴락하고 “민주적 통제”라 하면 수긍할 건가. 수사 독립을 흔드는 생뚱맞고 근시안적인 권고에 고개가 저어진다.

검찰개혁 당위성은 차고 넘친다. “거악(巨惡)과 싸운다”며 내부의 거악엔 눈감고, 그릇된 치부·독직·성폭력·전관예우에 무딘 칼을 들이민 흑역사는 끊어야 한다. 홍만표(수임탈세), 진경준(스폰서 주식), 김대현(부하 갑질), 김학의(접대 동영상)를 기억하는 이유도 그것이다. 길 정한 대로, 검찰개혁은 직접수사를 줄여 어깨 힘을 빼고 인권옹호를 솔선케 하면 될 일이다. 의정부·6조·3사가 떠받친 조선 왕에 세종도 있고 연산군도 있었다. 추미애·윤석열·한동훈·이성윤을 ‘빈칸’으로 둔 사법수사 설계도를 짜야 한다. 국회 가서 함흥차사 된 공수처도 다를 바 없다. 처장의 덕목은 ‘독립과 균형’이다. 이승만 정부의 경찰, 박정희 정부의 중앙정보부, 1987년 헌법 체제의 검찰은 공통점이 있다. 무소불위 힘으로 군림하고, 내부 적폐에 관대한 ‘괴물’이었다. 공수처도 또 하나의 괴물이 되지 않도록 부단히 경계하고 완성해가야 한다. 어찌보면 권력자에겐 ‘매력 없을 조직’으로.

답은 시스템이다. 집주인이 2년 뒤 ‘4년치 임대료 폭탄’을 물릴 거라는 선동적 예단이 나온다. 정책도 생물이다. 막을 수 있고 막아야 한다. 필요하면 전·월세 신고를 수기(手記)로 앞당기고, 지역·층·방향 따라 기준 삼을 표준임대료도 정할 수 있다. 1989년 임대차 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늘릴 때 혼선은 6개월쯤 지나 잡혔다. 당시 노태우 정부 처방에도 200만호 공급 플랜과 투기 부동산을 포기케 하는 ‘토지공개념 3법’이 있었다. 헌재도 위헌 판결을 내며 부정하지 않은 게 헌법 속의 토지공개념이다. 정책은 방향이고 뚝심이다. 그 날갯짓은 길고 입체적이어야 한다. 공공임대를 늘리고, 공공기관 지방 이전도 속도를 내야 한다. 다주택 고위공직자는 부동산백지신탁으로 막고, 국회 개혁은 ‘상전 법사위’의 자구심사권을 옮겨야 물꼬를 잡을 수 있다. 자의와 정략이 비집고 들어갈 여지를 줄이는 게 시스템이다.

“긍정적으로 구상하고, 비관적으로 계획하고, 낙관적으로 실행하라.” 2001년 미국 심리학자 가브리엘 외팅겐(뉴욕대 교수)이 한 말이다. 그래야 오류가 줄고, 마지막에 더 웃는 사람과 조직이 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공부도 여행도 기업경영도 연애도 다이어트도 그렇다. 국정도 다를 바 없다. 멀리 갈 정책에선 선의와 사람의 거품을 빼야 한다. 낙관적으로 호시우행(虎視牛行)하고, 비관적으로 심모원려(深謀遠慮)한 정책만이 지속 가능하고 예측 가능할 수 있다. 그 시스템 위에서 선의와 사람이 춤추게 해야 한다.

이기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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