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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목멱칼럼]조선 여인들의 '공수인사'에 담긴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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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일 도산서원 원장·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

지난해까지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변화를 요즘 무수히 겪으며 지내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은 재택근무와 온라인 수업처럼 비대면 접촉이 엄청 확대되고 있는 현실일 것이다. 실내 행사는 말할 것도 없고 실외에서 열리는 스포츠 게임까지도 크게
이데일리

위축되고 있다. 프로 야구가 예년보다 두 달 늦게 무관중 경기로 개막했고, 또 다시 두 달이 더 지나서야 겨우 정원의 10% 이내 관중만 입장을 허용하고 있는 것이 좋은 예다. 바깥 사정은 더 심하다. 미국의 국기(國技)라 일컫는 메이저리그 야구는 4개월 늦춰 최근 무관중 경기로 겨우 개막했을 정도이다.

이처럼 지구촌이 움츠러들고 있지만 코로나19의 기승은 언제 종식될지 가늠하기 어렵다. 이러한 현실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당연히 개인방역은 필수다. 덥더라도 마스크를 꼭 착용하고 손 씻기를 더 철저히 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 확진자의 비말이 내 몸에 들어오는 것을 차단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악수로 인한 타인과 신체 접촉도 이제는 반드시 짚어야할 문제이다. 서양식 인사법인 악수가 우리에게도 아주 자연스러운 문화가 된 지 오래다. 그런데 이 악수가 코로나 시대에는 손의 청결유지와 타인과의 거리두기에 정면 배치되는 가장 경계하지 않을 수 없는 행위가 되었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동서양의 모든 나라가 악수 자제를 권하고 있다. 그래서 대안도 등장했다. 주먹을 쥐고 마주치거나 팔뚝을 부딪치는 것이 그것이다. 하지만 익숙지 않아서 아주 어색하고 보기에도 별로다. 이 때문인지 뿌리내리지 못하더니 요즘에는 코로나에 대한 경계심이 이완되면서 악수 문화가 다시 되살아나고 있어 걱정이다.

그렇다면 신체접촉을 하지 않으면서도 상대방을 존중하는 인사방식은 없을까. 하나 있다. 바로 우리나라 유치원 어린이나 초등학생들이 어른들에게 하는 소위 ‘배꼽인사’이다. 두 손을 가지런하게 모아 잡아 배꼽 위에 얹고 허리를 숙이는 인사법이다. 이 인사를 할 때 어린아이의 표정은 아주 의젓하고 아름답다. 인사 받는 어른도 흐뭇해한다.

악수 문화가 없었던 우리 선조들은 인사를 어떻게 하였을까. 실내에서는 남녀노소가 각기 예의에 맞는 절을 하였지만, 밖에서도 차이가 있었다. 여성은 요즘 배꼽인사와 흡사하게 오른손으로 왼손을 감싸 가지런하게 모은 공수(拱手) 자세를 취한 후 이를 배꼽 위에 얹고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다. 이에 비해 남성인 선비들은 읍례(揖禮)를 행하였다.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 배꼽 위에서 맞잡은 양손을 얼굴 가까이 올리며 예를 표하는 방식이다. 이때 양손을 올리는 높이는 상대에 따라 달리 하였다. 아마도 전통 복식의 특성상 이 읍례가 자연스러웠던 것 같다. 지금도 도산서원에서 전통의례를 할 때는 남녀가 각기 이 방식을 따른다.

하지만 선비가 하던 전통 읍례는 서양 복식문화가 주류인 오늘날에는 매우 어색하고 불편하다. 그래서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에서는 여러 해 전부터 여성뿐 아니라 남성 수련생에게 공수를 한 후 허리를 30도 정도 숙여 인사하는 이른바 공수인사(拱手人事)를 권하고 있다. 상대방을 존경하는 인사이기 때문에 선비체험 중에는 물론이고 밖에 나가서도 실천토록 권장하고 있다.

미증유(未曾有)의 코로나 재앙의 시대이다. 타인과의 접촉을 최대한 줄이지 않으면 안 된다. 악수 문화가 비록 오래되었지만 나의 안위와 생명보다 더 소중한, 꼭 지켜야 할 습관일 리 없다. 그동안 익숙한 악수 문화와 결별할 각오를 하고 대안을 찾아야 한다. 상대방을 보다 더 존중하고 공경하는 우리 고유의 공수인사가 있다는 것은 아주 다행이다. 이제부터라도 동방예의지국으로 찬사를 받았던 조상들의 공수인사를 적극 실천하자. 웃어른과 지도층부터 앞장서면 더욱 좋을 것이다. 지금의 한류 붐에 공수인사가 더해져서 세계로 퍼져나간다면 지구촌 팬데믹 근절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세계인으로부터 주목받고 있는 K방역에 이은 또 하나의 K문화로 각광받을 것이다. 어떤가. 시도할 가치가 충분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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