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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3 (월)

미국서 혐오범죄 스멀스멀…“백인만 소중" 외치고 나치 경례한 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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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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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고리 하웰(29)이 지난달 22일 자신의 차에서 내려 흑인 운전자에게 나치식 경례를 해보이고 있다. 이첼 로페즈 인스타그램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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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의 생명만이 소중하다(Only white lives matter).”

미국의 한 백인 부부가 도로 한가운데서 흑인 운전자에게 “화이트 파워(백인 권력)”라고 외치면서 나치식 경례를 하는 일이 벌어졌다. 10대 흑인 인권 운동가가 총상을 입고 숨지는 일도 벌어졌다. 백인 경찰 데릭 쇼빈이 흑인 조지 플로이드를 살해한 이후 미국 사회에 ‘제도적 인종주의’에 대한 자성이 일어나고 있는데도, 반대급부로 소수인종에 대한 혐오범죄도 일어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 3일(현지시간) 보도를 보면, 이첼 로페즈와 흑인 남자친구는 지난달 22일 캘리포니아주 토런스의 한 도로에서 자동차를 타던 중 정지신호에 서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한 백인 여성이 트럭에서 내리더니 “백인 생명만이 중요하다”고 외쳤다. 트럭 운전석에 있던 백인 남성도 내려 “화이트 파워”라고 외치며 나치식 경례를 했다. 이 남성은 로페즈의 남자친구가 차를 몰고 가려고 하자 삽으로 이들의 차를 쳤다.

두 백인은 29세의 그레고리 하웰과 그의 부인 레이첼로 밝혀졌다. 경찰은 지난달 31일 두 부부를 증오범죄와 기물 파손 혐의로 체포했다고 밝혔다. ‘백인 생명만이 소중하다’는 말은 인종차별 반대 시위의 핵심 구호인 ‘흑인 생명은 소중하다’를 뒤집은 혐오 발언이다. ‘화이트 파워’는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세력을 과시하기 위해 쓰는 말이다. 경찰은 이들의 발언과 위협 행위가 혐오범죄라고 봤다.

지난 5월 미니애폴리스에서 백인 경찰 데릭 쇼빈의 가혹행위로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숨진 이후 석 달째 인종차별 반대 시위가 일어나고 있지만, 혐오 범죄 또한 일어나고 있다. 지난 6월 버지니아주 리치먼드에서 백인우월주의단체인 쿠 클럭스 클랜(KKK)의 지도자가 인종차별 반대 시위대를 뚫고 차를 몰고 운전하다가 증오 범죄로 기소됐다. 위스콘신주에서는 흑인 학생에게 침을 뱉은 백인 여성이 혐오범죄로 고발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6월28일 지지자가 “화이트 파워!”라고 외치는 동영상을 트위터에 걸었다가 3시간 만에 삭제하는 일도 벌어졌다. 미 법무부 통계를 보면, 2018년 미국에서 7036건의 혐오범죄가 접수됐는데 그중 57.5%인 4047건이 인종차별 관련 범죄였다.

증오범죄 여부는 확실치 않으나, 지난 2일엔 흑인 학생인권 운동가인 칼렙 리드(17)가 괴한으로부터 총에 맞고 숨지는 일이 벌어졌다. 웨스트 리지에 있는 매더고등학교 3학년이던 리드는 시카고 공립학교 내 경찰 배치에 쓰는 세금 3300만달러(393억8000만원)를 학생 복지에 써달라는 운동을 해왔다. 지난달 31일 웨스트로저스 공원에서 총에 맞고 쓰러진 채 발견돼 병원에 이송됐으나 2일 숨졌다. 범인은 아직 잡히지 않았다.

리드는 고교 2학년이던 작년 농구경기에 참가했다가 신분증이 없다는 이유로 경찰에 체포된 경험이 있다. 그는 지난 6월16일 학내 경찰 철수를 요청하는 기자회견에서 당시를 회상하며 “경찰서에 6시간 동안 앉아 있으면서 전혀 옳지 않다는 것을 알았지만, 속으로 화가 나서 혼란스러웠다”면서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범죄자로 낙인 찍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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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3학년 흑인 인권 운동가인 칼렙 리드(17)가 총에 맞고 지난 2일 병원에서 숨졌다. 트위터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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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에 노출되면서 불안에 시달리는 흑인들도 늘고 있다. 미국 인구조사국이 지난 6월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증오범죄 위협으로 심각한 불안과 우울증을 겪은 흑인 비율은 조지 플로이드 사망 전인 지난 5월21~26일 36%에서 사망 직후인 5월28일~6월2일에는 41%로 급증했다.

코로나19 대유행 기간 아시아계 미국인에 대한 인종차별도 늘어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콜로라도 대학 연구팀이 최근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지난 4월부터 석 달간 캘리포니아주에서 발생한 아시아계 미국인에 대한 차별과 괴롭힘 사건만 800건이 넘는다. 아시아인들에게 ‘중국 바이러스’라고 부르는 등 반아시아 정서가 높아졌다는 것이다. 법무부 국가범죄피해자조사 결과 2014~2018년 아시아계 미국인 대상 증오범죄가 7% 감소했지만, 증오범죄 피해자의 47.6%만이 경찰에 신고한 것으로 조사됐다. 실제 피해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김윤나영 기자 nayo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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