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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fn스트리트] 시골우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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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것은/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청마 유치환의 명시 '행복'의 첫 구절이다. 외로운 사람끼리 그리움을 이어주는 시골 우체국의 따사로운 정경을 잘 그려낸 시다.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는 표현처럼 말이다.

우정사업본부가 '별정우체국' 제도를 대대적으로 손질하기로 했다. 친인척 채용이나 매관매직 등 부조리를 근절하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21대 국회에 제출할 별정우체국법 개정안은 지정승계·추천국장 제도를 폐지하는 내용을 담을 예정이다. 전국 3429개 우체국(올 5월 기준) 중 현재 별정우체국은 726개(21%)로, 이 중 95%가 읍·면 지역에 있다. 시골 우체국들이 수술대에 오른 셈이다. 133명의 4대째 세습 별정우체국장을 낳은 '현대판 음서제'에 여론의 따가운 시선이 쏟아진 결과다.

별정우체국은 국가예산이 태부족했던 1961년 도입됐다. 벽지 주민에게 보편적 우편서비스를 제공하자는 취지였다. 별정우체국장이 개인 부담으로 청사를 마련해 위탁업무를 수행하는 대신 취급수수료(이를테면 300원 우편 하나당 3원)로 경영을 책임지는 게 애초의 시스템이었다. 그러나 우편 이용빈도가 계속 떨어지면서 6급 공무원 대우 국장 연봉과 직원 임금 등을 우정사업본부에서 지원해야 했다.

이미 도시에서는 각종 고지서도 전자문서로 받는 추세다. 우표를 붙인 손편지는 희귀하고, 소포도 사설택배를 이용하기 일쑤다. 그러나 인적이 드문 오지는 사정이 다르다. 농산물 택배의 사각지대인 데다 된다고 하더라도 주민 입장에서 높은 비용을 감당하기 쉽지 않다. 그러니 국장 승계비리 등은 마땅히 도려내야겠지만, 폐국이 능사는 아닐 듯싶다. 초등학교와 보건소 등 공공기관이 속속 사라지면서 지역이 소멸되고 있는 현실까지 감안해 합리적인 별정우체국 경영합리화 방안이 나오길 기대한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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