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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직설]연약함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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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어떤 소설은 재밌게 읽었다는 말만으로 이미 내밀한 고백이 된다. 내게 존재만으로도 고백이 되는 소설은 여럿 있지만,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언제나 그 목록의 앞자리에 있어왔다. 오래 남은 대목은 테레사가 그동안 그토록 참을 수 없었던 ‘연약함’을 갑자기 매력적인 무언가로 받아들이는 장면이다. 병원에 누워 며칠을 보낸 연상의 연인 토마스를 보며 테레사는 말한다. “당신이 늙었으면 좋겠어요. 십 년, 이십 년 더요!” 그리고 설명이 이어진다. “그녀가 이 말을 통해 말하고자 한 것은 당신이 약해졌으면 좋겠어요, 당신이 나처럼 똑같이 약해졌으면요 하는 것이었다.” 누군가의 연약함이 혹독한 비판의 대상이나 단점이 아니라 자신을 끌어당기는 매력이자 애정의 요소가 되는 순간. 너와 내가 한곳에서 만나는 자리를 찾으려는 노력이 납득도 공감도 되었으나, 나의 연약함이 있는 위치로 너를 맞추어 위안을 얻는다니 의문도 남았다.

경향신문

인아영 문학평론가


비슷한 시기에 발레리나 오렐리 뒤퐁의 인터뷰를 읽고는 다른 방향의 해답에 닿은 것도 같았다. 그녀는 파리 오페라 발레단의 에트왈(최고무용수)이 되기 전, 테크닉을 완벽하게 소화하는 강인한 발레리나가 되어야 한다는 압박으로 힘들었던 시기를 회상한다. 그녀가 그 시기를 이겨낼 수 있었던 계기는 ‘봄의 제전’ 무대를 준비하는 도중 안무가 피나 바우슈에게 들었던 다음과 같은 말이었다고 밝힌다. “그래, 너는 아주 강한 여자이고 강한 무용수야. 하지만 동시에 난 네가 무척 연약하다고 생각해. 그게 너를 택한 이유야. 그걸 내게 보여줘.” 이후 뒤퐁은 춤과 커리어에서 많은 것들이 변화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자신의 힘과 의지를 단련하는 방식이 아니라 연약함과 예민함을 이해하는 방식으로. 그러니 감탄한 것은 피나 바우슈의 안목이었다. 연약함은 그것을 발견해내는 누군가의 섬세한 시선을 통해 강인함으로 전환될 수 있다.

최근 다시 연약함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게 된 것은 한정현의 소설집 <소녀 연예인 이보나>를 읽으면서다. 이 책에 실린 단편소설 ‘우리의 소원은 과학 소년’에서 식민지 경성의 제중원 간호원 안나는 자신을 낳자마자 죽었지만 살기 위해 인생의 매 순간을 애쓴 어머니를 떠올린다. 그리고 부여받은 이름과 타고난 젠더로부터 벗어나 삶을 개척해 나가려는 소설가 연인 경준의 손을 꼭 쥐고 말한다. “그이도 너도 모두 강한 사람들이야.” 나는 이 소설을 한국 근현대사의 국가폭력이나 젠더 규범에 억압받은 이들이 서로의 강인함을 발견하는 이야기로 읽었다. 그렇기에 식민지 제국에서 온당한 시민권을 부여받지 못하고 언제나 경계에 설 수밖에 없었음에도 “낙관하자”라고 말할 수 있는 소설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안나가 이들에게서 강인함을 발견하고 낙관하자 말할 수 있었던 데는, 평생 제 이름을 가져보지 못하고 죽어간 어머니와 변태성욕자로 명명되고 연애소설가라 차별받던 경준의 연약함을 오랫동안 바라보고 헤아려온 과정이 선행했음을 다시 생각한다. 우리는 우연히 때론 필연적으로 만나 서로의 연약함과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그리고 서로의 연약함을 비추고 읽어냄으로써 강인함을 갱신한다.

인아영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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