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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30그램에 240만원…금값의 ‘뉴노멀’ 시대 [정환보의 ‘디스커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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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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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목걸이가 즐비하게 걸려 있는 태국 방콕의 한 귀금속 매장에서 지난 4월 상점 주인이 마스크를 만지고 있다. 방콕|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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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금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4일(현지시간) 뉴욕상품거래소에서 12월 인도분 금 시세는 전날보다 1.7% 상승하며 1트로이온스(약 31.1g)당 2021달러(약 240만원)로 거래를 마쳤다. 종가 기준으로 금값이 온스(트로이온스·OZ.T)당 2000달러를 돌파한 것은 사상 처음이다.

이는 지난달 24일 종전 최고가인 2011년 8월의 온스당 1891.9달러 기록을 깨뜨린 이후 불과 열흘여 만이다. “향후 12개월 이내에 2000달러도 돌파할 것”(골드만삭스) “연말쯤이면 30% 확률로 2000달러를 넘어설 것”(씨티그룹)이라는 전문가들의 전망을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급등에 급등을 거듭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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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 대비 금 선물(Gold futures)과 나스닥 지수(Nasdaq Composite) 추이. 8월4일 현재 금값은 32%, 나스닥 지수는 22% 상승했다. |월스트리트저널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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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가 오르고 금값도 오르는 ‘뉴노멀’

이처럼 금값이 고공행진을 하는 가장 큰 배경에는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흔히들 말하는 ‘경제 위기에는 사람들이 안전한 자산을 선호하기 때문에, 대표적인 안전자산인 금값이 상승한다’는 통념과는 사뭇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 최근의 금값 상승이다.

안전자산의 반대 개념은 위험자산이다. 대표적으로 ‘주가’를 들 수 있는데 통상 금값은 주가가 떨어질 때 오르는 경향이 있다. 주식이 위험하기 때문에 ‘안전한 피난처’인 금으로 자산이 몰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미국 주식시장은 이와는 정반대로 금값과 동조화(커플링)돼 있다. 미국 뉴욕증시에서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지수 역시 이날 역대 최고치인 10941.17를 찍었다. ‘올라도 너무 올랐다’는 일각의 우려를 일축하고 역대 최고 기록을 계속 갈아치우고 있는 상황이 국제 금 시세의 기록적인 상승과 거의 비슷하다.

미국 CBS 방송은 이를 두고 ‘다소 미스터리 같은 현상’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약 5개월 전에는 현재 상황과는 정반대의 동조가 나타났다. 금값과 주가가 한꺼번에 폭락했던 것이다. 코로나19발 글로벌 경기침체 공포가 커지기 시작하던 지난 3월 금값은 1983년 이후 최대의 하락 폭을, 주식시장은 뉴욕증시에 이틀 연속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될 정도로 급락을 기록했다. 통상 증시가 하락장이면 금값이 올라야 하는데, 전례 없는 보건 위기에 “일단 현금을 갖고 보자”는 생각이 퍼지면서 모든 자산을 내다파는 투매 현상이 나타났던 것이다.

너무 풀린 달러가 밀어 올린 금값

최근의 금값 급등은 ‘돈의 가치’, 특히 달러화 가치가 떨어진 것에 힘입은 바가 크다.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이 사실상 제로 금리(0.00~0.25%)와 무제한 양적완화로 돈을 방출하고 있고, 미 행정부와 의회도 경기부양을 위한 ‘슈퍼 부양책’으로 재정지출을 늘리면서 달러화 가치가 떨어진 것이다.

유로화·엔화·파운드화 등 주요 6개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지표인 ‘달러 인덱스’는 뉴욕외환시장에서 4일 현재 93을 오르내리고 있다. 2018년 6월 이후 2년2개월 만의 최저 수준이다. 올해 가장 높았던 지난 3월19일 103.6에 비해서는 약 10% 하락한 수치다. 올해 달러 가치가 가장 높았던 3월엔 금값이 올해 가장 낮았고, 반대로 달러화 가치가 최근 2년 사이 가장 낮은 현재는 금값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것이다.

단순히 ‘금값이 오를 것 같으니 사자’는 일반 투자자의 수요가 몰렸다기보다는 ‘현대판 금’이나 다름 없는 미국 달러화 가치의 급락 위험을 ‘헤지(hedge·위험 회피)’하려는 수요도 금값 상승을 이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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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1온스(31.1g)로 살 수 있는 ‘금빛 제품’들.|월스트리트저널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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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한 시대에 확실한 금’…대체 얼마까지

미국은 물론 세계 경제가 앞날을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도 ‘골드 러시’의 원인으로 분석된다. 코로나19는 잡힐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고, 많은 나라에서 천문학적 재정 투입 등 긴급수단으로 대응해 왔지만 점점 여력이 고갈돼 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 1·2위 경제대국인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고조되면서 언제, 어디서 충돌이 일어날지 모르는 불확실성은 더욱 커졌다. 불확실성은 대부분의 시장에서 기피하는 요소인데, ‘안전자산’ 이미지가 강한 금 시장만큼은 이를 호재로 여긴다.

금융회사 RBC 웰스매니지먼트의 조지 게로 전무이사는 금융매체 ‘마켓워치’에 “금 가격은 경제적·정치적 안정성과 팬데믹 영향의 바로미터”라며 “미·중 사이의 긴장 고조를 포함해 전 세계 투자자들의 불안감이 (금값에)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제는 금조차 지난 3월 급락과 최근 급등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기 때문에 ‘무조건 오른다’는 전망을 쉽게 내놓기도 어려워졌다. 다만 상대적으로 다른 금융상품이나 현물, 통화에 비해서는 금값이 앞으로도 더 오를 여지가 충분하다는 게 시장의 대체적 견해다.

금값의 단기 고점에 대해 골드만삭스 그룹은 2300달러, 뱅크오브아메리카 증권은 2500~3000달러, RBC캐피털마켓은 3000달러까지 오를 것으로 각각 전망했다.

정환보 기자 botox@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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