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21 (화)

"회개하라는 쪽지를 건네주신 분께…난 당당하다고 말하고 싶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경향신문]

경향신문

윤연재씨가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피켓을 들고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김기남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5일 오후 12시쯤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보슬비가 내렸다. 대학생 윤연재씨(20)는 우산 없이 비를 맞으며 피켓을 들었다. 그의 머리카락에는 빗방울이 맺히고 옷도 젖어갔다. 그가 든 피켓에는 ‘나중은 없다. 우리가 있다. 국회는 차별금지법 제정하라’고 적혔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지난달 17일부터 시민 신청을 받아 매일 국회 앞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1인 릴레이 시위를 벌인다. 윤씨는 이날 참가자 중 한 명이다. 전날도 참가했다. “외롭네요. 혼자 우뚝 서 있는 이 상황이 앞으로 펼쳐질 제 미래 같아요. 많은 사람들이 (차별 속에서) 이런 상황을 견뎌왔을 거예요. 다들 혼자가 아니니까 꿋꿋이 서 있으면 좋겠어요.”

윤씨가 차별금지법 제정을 바라는 이유 중 하나는 여성 차별 문제 때문이다. 윤씨는 2년 전인 고교 3학년 때 ‘이씨’에서 ‘윤씨’로 성을 바꾸기 위해 법적 절차를 밟았다. 그의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것은 물론 윤씨의 고민을 귀담아 들어주는 친구였다. 윤씨는 아버지 대신 어머니의 성을 따르고 싶었다. ‘이연재’에서 ‘윤연재’가 되는 건 쉽지 않았다. 6개월이란 긴 시간이 걸렸다. 성씨를 바꾸기 위해 필요한 서류만 약 15장이었고, 조부모로부터 개명 동의도 얻어야 했다. “할머니가 섭섭해 하셨어요. 주변에서도 ‘꼭 바꿔야 하느냐’고 물었죠. 성을 따르지 않아 섭섭하다면 모든 엄마들은 모두 섭섭해 해야 하나요. 성 하나에도 차별이 축적돼 있다고 생각했어요.”

윤씨도 때로 타인을 차별한 경험이 있다. 그는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해 ‘노력한 사람이 보상 받는 게 당연한 게 아니냐’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는 “이후 노력이라는 것도 굉장히 조건화된 그룹만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모든 사람은 어떤 측면에선 주체고 어떤 측면에선 타자다. 차별금지법은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라는 점을 사람들이 알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성소수자 인권 활동가 이드씨(가명)가 5일 오후 6시쯤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윤기은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성소수자 인권 활동가 이드씨(가명)도 전날 오후 6시쯤 시위자로 나섰다. 그는 성소수자 지인들이 교사나 사회복지사 일을 하다가 정체성을 드러낸 뒤 실직하는 것을 목격했다. 지난달 국회 앞에서 한 차별금지법 지지 기자회견에 참여했을 때, 어떤 여성으로부터 우산으로 위협을 당했다. 우산대 끝이 얼굴을 찌를 듯 다가왔지만 경찰은 이를 제지하지 않았다고 한다. 혐오 발언도 무방비로 들어야 했다. 이드씨는 말했다. “기자회견조차 인정받지 못했어요. 동등한 시민으로 대우해주지 않는 거죠.” 최근 신촌역에서 훼손된 성소수자 지지 광고판에는 그의 친구 사진이 담겨져 있었다. 그는 차별금지법이 생겨 혐오가 줄어들기를 바란다. “정치인들이 국민에게 위임 받은 권력을 보편적 인권을 위해 힘쓰기를 촉구합니다.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가길 바랍니다.”

이들 외의 다른 릴레이 1인 시위 참가자들도 “회개하라는 쪽지를 건네주신 익명의 분께…. 난 당당하다고 말하고 싶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함께 할 수 있어 기뻤다. 아직 차별금지법 국민동의 청원에 서명하지 못한 분이 있다면 꼭 참여하시고 주변에도 널리 공유 부탁드린다” “비 내리는 국회 앞에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의 날, 맑게 갠 하늘을 상상했다” 등의 소감을 밝혔다.

아래는 차별금지법제정연대로부터 제공 받은 1인 시위 참가자 28명의 참가 소감이다.

경향신문

서채완씨가 지난달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박한희

“역사적인 릴레이의 첫 시작을 함께 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하늘, 일월

“성소수자부모모임 하늘입니다. 국회 정문 앞에서 차금법 제정을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있는 저편에, 동성애가 에이즈를 확산시킨다는 가짜뉴스 팻말을 들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소수자 자녀를 둔 부모들은 지금 당장, 차별금지법 제정을 원합니다.”

위선희

“빨간 신호등에 멈춰있는 버스 안에 있는 승객이 빤히 보실 때 창문을 내리고 욕하는 건 아니겠지(생각했어요)…. 무섭기도 했지만 글귀를 읽어주신다는 생각에 용기가 더 나기도 했던 시간이었어요.”

전숙경

“모든 차별에 반대합니다. 21대 국회에선 꼭 제정돼야 합니다.”

서채완

“차별을 금지하는 것은 인권을 위한 당연한 요청입니다. 국회 인근 차별금지법 반대를 외치는 혐오를 보며 더욱더 우리에게는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 느꼈습니다.”

렉사

“거의 모든 사람이 무시하고 지나가고 눈길 한 번씩만 주거나 하는 게 좀 슬프더라고요. 한 사람은 ‘뭐야 이게’라며 째려봤는데 마스크도 안 낀 사람이어서 그냥 코웃음만 나왔어요.“

류다솔

“1인 시위를 위해 자리를 잡다가 국회 앞 곳곳에서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무지갯빛 나치 하켄크로이츠(‘갈고리 십자가’라는 뜻으로 독일 나치즘의 상징)를 보았습니다. 앞으로 더 시끄럽게, 더 적극적으로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차별에 저항해 나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젠채

“회개하라는 쪽지를 건네주신 익명의 분께…. 난 당당하다고 말하고 싶다.”

경향신문

문규씨가 지난달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창구

“평등열차는 이미 출발했습니다! 늦으신 분들 어서 올라타세요~.”

H

“무관심하게 지나가는 사람들과 혐오 발언을 서슴없이 하는 여성분을 국회 앞에 서서 직접 눈으로 보며 아직 바꿔나가야 하는 것이 정말 많다는 걸 몸소 느끼게 해준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혜민

“지나가시는 분들이 보면서 차별금지법에 관심을 가져주시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하고 왔습니다. 다들 지치지 않고 화이팅하면 좋겠네요.”

이영

“장기화되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우울감을 느꼈지만, 많은 분들이 함께 만들어 온 평등을 위한 흐름에 함께하면서 덜 외로웠던 것 같습니다.”

해밀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함께 할 수 있어 기뻤습니다. 혹 아직 차별금지법 국민동의 청원에 서명하지 못한 분이 있다면 꼭 참여하시고 주변에도 널리 공유 부탁드립니다.”

평화

“주말이라 유동인구가 적어 아쉬웠습니다. 가능하면 많은 분들께 알리고 싶고 동의를 구하고 싶은 일입니다.”

조이

“차별금지법 제정 얘기가 나온 지 10년도 훨씬 지났는데 ‘대체 언제 만들어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할 때마다 절망감만 커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조금씩이지만 사람들의 인식이 변하고 있고, 같은 뜻을 품고 행동하는 길동무들이 곁에 있으니 아직은 희망을 품고 싶습니다.”

홀릭

“옆에서는 차별금지법 결사반대 예배가 진행돼 이어폰을 꺼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회적 소수자를 혐오하고 법을 잘못 알고 외치는 그 소리가 너무 컸기 때문입니다. 차별금지법 제정에 함께해 주시길 바랍니다.”

캔디

“결국 우리는 법을 제정하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미래를 함께 살아가고 또 만들어 갑시다.”



“눈을 마주치고 피켓을 읽어주시는 분, 인사를 건네주시는 분들도 많이 계셨어요. 모두가 차별과 무관할 수 없는 삶을 살아가는 만큼, 많은 분들께 차별금지법의 의미와 필요성이 온전히 닿았으면 좋겠습니다.”

심지

“‘여성이 불안한 차별금지법 세상을 만들려는 사람들’을 규탄한다는 피켓을 보고 좀 심란했던 게 사실입니다. 그래도 ‘나 여기 있어요’ 하고 차별금지법을 지지하는 목소리를 작게나마 보탤 수 있어 좋았습니다.”

고운

“평등열차에 바깥은 없습니다.”

화용

“불미스러운 일이라고는 높은 습도밖에 없었던 1인 시위였습니다.”

경향신문

추은혜씨가 지난 1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준영

“이번에는 반드시 이뤄내요, 차별금지법.”

카노

“‘백날 들고 있어봐라 되나’라며 확신에 찬 듯한 어떤 이의 말에 무력감이 들기도 했지만, 나 역시 우리는 결국 평등한 사회로 나아갈 것이라는 확신이 있기에 피켓을 들어 올린다.”

광훈

“피켓 앞을 지나가는 이들 중에는 관심을 두는 이, 눈인사를 건네주는 이, 지지와 연대를 말해주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잠시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이지만 그 덕에 그 새 긴장감은 사라지더군요.”



“민주주의와 인권을 무시하는 행태는 공적 영역에 대한 제재를 통해 그 폭력성이 되물어질 것이며, 시민성이 무엇인지 전사회적으로 재논의되리라 믿습니다.”

추은혜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 하늘이 구멍이라도 난 듯 쏟아지는 비가 아쉬웠지만 꽤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조미연

“비 내리는 국회 앞에서 포괄적 차별금지법(평등법) 제정의 날, 맑게 갠 하늘을 상상했습니다.”

레고

“2007년 11월, 누더기 차별금지법 반대를 위해 청와대와 광화문 정부중앙청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했을 때가 기억이 났습니다. 13년 전보다 조금 더 세련된 피켓을 가지고 나오긴 했지만, 여전히 나와 같이 나란히 서 있는 그들을 보고 있자니 시간이 멈춘 것 같기도 했습니다.”

이보라·윤기은 기자 purple@kyunghyang.com

▶ 장도리 | 그림마당 보기
▶ 경향 유튜브 구독▶ 경향 페이스북 구독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