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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아빠 사별 후 엄마 성 따르자 곱게 안 봐···성 하나에도 차별 축적”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릴레이 1인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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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5일 정오쯤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보슬비가 내렸다. 대학생 윤연재씨(20)는 우산 없이 비를 맞으며 피켓을 들었다. 피켓에는 ‘나중은 없다. 우리가 있다. 국회는 차별금지법 제정하라’고 적혔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지난달 17일부터 시민 신청을 받아 매일 국회 앞에서 1인 릴레이 시위를 벌인다. 윤씨는 이날 참가자 중 한 명이다. 전날도 참가했다. “외롭네요. 혼자 우뚝 서 있는 이 상황이 앞으로 펼쳐질 제 미래 같아요. 많은 사람들이 (차별 속에서) 이런 상황을 견뎌왔을 거예요. 다들 혼자가 아니니까 꿋꿋이 서 있으면 좋겠어요.”

윤씨가 차별금지법 제정을 바라는 이유 중 하나는 여성 차별 문제 때문이다. 윤씨는 2년 전인 고교 3학년 때 ‘이씨’에서 ‘윤씨’로 성을 바꾸기 위해 법적 절차를 밟았다. 그의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것은 물론 윤씨의 고민을 귀담아 들어주는 친구였다. 윤씨는 아버지 대신 어머니의 성을 따르고 싶었다. ‘이연재’에서 ‘윤연재’가 되는 건 쉽지 않았다. 6개월이 걸렸다. 성씨를 바꾸기 위해 필요한 서류만 약 15장이었고, 조부모로부터 개명 동의도 얻어야 했다. “할머니가 섭섭해 하셨어요. 주변에서도 ‘꼭 바꿔야 하느냐’고 물었죠. 성을 따르지 않아 섭섭하다면 엄마들은 모두 섭섭해 해야 하나요. 성 하나에도 차별이 축적돼 있다고 생각했어요.”

윤씨도 때로 타인을 차별한 경험이 있다. 그는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해 ‘노력한 사람이 보상 받는 게 당연한 게 아니냐’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는 “이후 노력이라는 것도 굉장히 조건화된 그룹만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모든 사람은 어떤 측면에선 주체이고 어떤 측면에선 타자다. 차별금지법은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라는 점을 사람들이 알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성소수자 인권 활동가 이드씨(가명)도 전날 오후 6시쯤 시위자로 나섰다. 그는 성소수자 친구들이 교사나 사회복지사 일을 하다가 정체성을 드러낸 뒤 실직하는 것을 목격했다. 지난달 국회 앞에서 한 차별금지법 지지 기자회견에 참여했을 때, 어떤 여성으로부터 우산으로 위협 당했다. 경찰은 이를 제지하지 않았다고 한다. 혐오 발언도 무방비로 들어야 했다. 이드씨는 말했다. “기자회견조차 인정받지 못했어요. 시민으로서 격이 떨어져 있는 거죠.”

최근 신촌역에서 훼손된 성소수자 지지 광고판에는 그의 친구 사진이 담겼다. 그는 차별금지법이 생겨 혐오가 줄어들기 바란다. “정치인들이 국민에게 위임 받은 권력을 보편적 인권을 위해 힘쓰기를 촉구합니다.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가길 바랍니다.”

경향신문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릴레이 시위 참가자 윤연재씨가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김기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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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라·윤기은 기자 purpl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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