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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세계포럼] 검찰개혁 어디로 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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檢 권력형비리 수사 감감무소식

‘산 권력’ 수사 막는 엉터리 개혁

‘공룡 경찰’ 통제장치 구멍 숭숭

수사권조정안 전면 재검토해야

요즘 검찰발 권력형 비리 수사 관련 뉴스가 사라졌다.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라임·옵티머스 펀드 사태 등 문재인정권 인사들이 연루된 주요 사건 수사가 별 이유 없이 미뤄지거나 지지부진하다. 정의기억연대의 회계부정 의혹 수사는 두 달이 넘도록 아무 소식이 없다. 윤미향 민주당 의원의 소환 일정조차 잡지 않았다니 어이가 없다. 서울중앙지검은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피소 사실 유출 사건을 2주 넘게 뭉개고 있다. 검찰 내부에서도 “그 많던 수사는 누가 다 먹었을까”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세계일보

채희창 수석논설위원


검찰개혁을 ‘1호 공약’으로 내세운 문재인정부는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누차 강조했다. 검찰수사심의위원회는 이 정부 들어 검찰의 기소 독점을 국민들이 직접 견제하기 위해 도입한 것이다. 그간 수사심의위가 낸 8차례 권고안을 검찰이 모두 수용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과 가까운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지휘하는 ‘검언유착 의혹’ 수사팀은 수사심의위의 한동훈 검사장 수사중단·불기소 권고를 거부했다. 압수수색 도중 수사팀장과 한 검사장이 육박전을 벌이는 검찰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는데도 정작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입을 닫고 있다.

문재인정부의 검찰개혁이 궤도를 이탈하고 있다. 최근 법무부 산하 법무·검찰개혁위원회가 내놓은 권고안은 노골적이다. 검찰총장의 수사지휘권을 박탈해 이를 전국 6개 고검장에게 나눠 주고, 중요 수사 개시 때는 검찰총장이 법무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권고안대로라면 법무장관은 검찰총장 대신 고검장에게 수사지휘를 할 수 있게 된다. 제왕적 검찰총장을 없애겠다면서 법무장관에게 제왕적 권한을 주는 것이 과연 민주적 통제인가. 현 정권의 눈엣가시가 된 윤석열 검찰총장이 더 이상 수사에 간여하지 못하도록 하는 꼼수 아닌가. 이쯤 되면 개혁이 아니라 개악이다.

지난달 30일 당정청이 내놓은 3대 권력기관 개혁 방안도 허점투성이다. 개혁안은 검사의 직접수사 개시 범위를 부패·경제·공직자 등 6대 범죄로 축소시켰다. 3급 이상 공직자 수사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5급 이하는 경찰이 맡는다. 국가정보원의 대공수사권이 폐지되고, 검찰과 국정원의 축소된 권한은 경찰로 이관된다. ‘말 안 듣는’ 검찰 힘은 빼고 ‘고분고분한’ 경찰 힘은 키워준 것이다.

수사대상 공직자 직급과 범죄 액수 기준을 둬 수사 주체를 제한하는 건 코미디 수준이다. 개혁안이 실행되면 검찰은 4급 공직자만, 뇌물사건은 3000만원 이상만 수사할 수 있게 된다. 공직자 부패 범죄는 수사 단서가 하위 공무원에게서 잡혀 고위층으로 확대되는 게 상식이다. 급수에 따라 수사기관을 나누는 게 말이 되나. 검찰은 아예 공직 수사에 손대지 말라는 얘기나 다름없다.

경찰이 수사·정보·보안업무를 총망라하는 ‘공룡 수사기관’이 될 것이란 우려도 크다. 대공수사권을 넘겨받고 3000여명의 정보경찰까지 보유할 만큼 막강해지는데 통제수단은 허술하기 짝이 없다. 2년 임기가 보장된 검찰총장도 정권의 압박으로 무장해제됐는데, 임기 보장도 안 된 경찰청장이 무슨 수로 권력비리 수사를 할지 의문이다.

국민 입장에선 수사권이 검찰에 더 많이 있든, 경찰에 더 많이 있든 그 행사가 더 공정해지는 게 중요하다. 살아 있는 권력은 손대지 못하는 수사기관을 원하는 국민은 없을 것이다. 현 정권이 민주적 통제를 내세워 국가 사법권을 입맛대로 좌지우지하려는 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제동을 걸지 않으면 그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검찰개혁이 이미 궤도를 벗어났다는 말도 나온다. 오죽했으면 검찰총장이 “민주주의라는 허울을 쓴 독재와 전체주의를 배격해야 한다”는 말까지 했을까. 국민이 아닌 정권을 위한 검찰개혁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경고일 것이다. 검찰개혁의 요체는 누가 뭐래도 정치적 중립성과 수사 독립성을 지켜주는 것이다. 이걸 보장하지 않고 검찰개혁을 논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국민의 법 감정에 부합하지 않는 법무·검찰개혁위의 권고안과 당정청의 수사권 조정안은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채희창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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