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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9 (수)

"동일기능 동일규제?…금융판 '배달의 민족'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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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양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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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사-빅테크 규제 역차별 예시/그래픽=김지영 디자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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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이터 사업자 선정 절차가 5일 시작되면서 금융권의 속앓이가 심해졌다. 빅테크기업과의 형평성 문제를 꾸준히 제기했지만 ‘기울어진 운동장’이 현실로 다가와서다. 금융위원회는 마이데이터 사업에서 업권별 ‘균형’을, 빅테크기업의 금융업 진출과 관련해서는 ‘동일기능, 동일규제’를 원칙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금융권은 어불성설이라고 본다.

금융권의 불만은 크게 두 축이다. 우선 마이데이터 사업에서 금융사는 대부분의 데이터를 공개하는 반면 빅테크기업은 자회사의 결제 정보만 제공하는 등 둘 사이에 공유하는 내용이 불균형하다는 것이다. 활발해진 빅테크기업의 금융업 진출에 대해서는 역차별 문제를 지적한다. 새로 진입한 빅테크기업에만 규제 문턱을 낮춰줬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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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성수 금융위원장(사진 오른쪽 두번째)이 23일 서울 중구의 한 음식점에서 5대 금융지주사 회장들과 조찬 간담회를 진행했다. (왼쪽 두번째부터 시계방향으로)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 김광수 NH농협금융 회장,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 은성수 금융위원장, 윤종규 KB금융 회장/사진제공=금융위원회



금융권은 규제의 형평성 문제에 좀 더 주목한다. 은행, 카드 등 업권별로 두루 얽혀있고 사업 운영, 상품 판매, 마케팅 등 단계별로 역차별이 존재한다고 봐서다. 하나은행 하나금융경영연구소가 금융위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국제결제은행(BIS) 등 글로벌 금융기구는 동일한 영업행위에 대해 동일한 규제를 적용하라고 권고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규제 역차별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은행은 특정 보험사 상품을 25% 이상 판매할 수 없지만 빅테크기업은 제한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간편결제 사업자에 후불결제를 허용한 건 가맹점 수수료율 규제를 적용받는 카드사를 역차별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금융사의 불만이 들끓자 금융위는 ‘동일기능, 동일규제’ 원칙을 강조했다. 하지만 금융권의 반응은 차갑다. 은행은 깐깐한 은행법의 묶여있는 반면 빅테크기업은 은행법보다 느슨한 전자금융거래법의 적용을 받게 된다는 점에서 ‘동일기능, 동일규제’란 말은 성립될 수 없다는 것이다. 두 법의 규제 범위와 강도가 다른데 동일규제라는 것은 말장난이라는 얘기다.

기능 면에서도 금융사와 빅테크기업의 역할은 다르다. 신한금융지주가 내부용으로 작성한 보고서를 보면 금융사와 빅테크기업의 기능은 각각 제조, 판매로 구분된다. 빅테크기업이 플랫폼을 앞세워 금융시장에 자리잡으면 기존 금융사는 대출, 카드 등 상품을 제조하는 입장이 되고 빅테크기업은 플랫폼을 활용한 판매자 역할을 하게 된다. 신한금융은 이 경우 ‘금융판 배달의 민족’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소비자는 편리해졌지만 이전에 없던 배달료가 생겨 가격이 높아지고 기존 음식점들도 불만이 커졌다는 데 주목했다. 금융사 역시 빅테크기업 플랫폼의 선택을 받기 위해 높은 수수료를 내고, 덩달아 소비자 부담도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빅테크 플랫폼이 우월적인 지위를 남용하면 특정 금융사 상품에 쏠림 현상이 발생해 전체 금융시스템이 망가질 수 있다고 봤다.

금융연구원에서는 별도의 규제·감독 필요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이보미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빅테크기업이 플랫폼으로 금융상품을 연계한다면 단순히 판매 채널로서 판매를 대리하게 될 것”이라며 “이 경우 별도의 규제·감독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A금융지주 데이터 담당 임원은 “금융사와 빅테크가 함께 경쟁하며 성장하는 모델은 바람직하지만 공정경쟁이라는 전제가 필요하다”며 “금융당국의 ‘동일기능, 동일규제’는 말만 그럴 뿐 ‘기울어진 운동장’이란 사실 그 자체가 변한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양성희 기자 y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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