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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30 (목)

[ESC] 건륭제는 왜 미식가가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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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중식당 ‘진진’의 왕육성 요리사가 만든 닭요리 ‘꼬샤오기’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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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중국의 권력자 중에 최고 미식가는 누구일까요? 공자도 미식가 반열에 단골로 오르는 인물이지만, 권력자는 아닙니다. 아마도 황제겠죠? 건륭제를 최고로 꼽는 중국사 연구가들이 많습니다. 그는 강남 지방을 순행할 때면 자신의 일상식과 연회를 담당하는 요리사 수백명을 대동했다는군요. 그뿐만이 아닙니다. 양과 젖소도 데려갔는데, 그 수가 1700마리가 넘었답니다. 하루 4끼를 먹었다는 건륭제는 오리와 새끼 양, 제비집과 죽순 등 진귀한 식재료를 맘껏 즐겼지만, 정작 그가 가장 좋아한 건 술지게미 음식이었답니다. 소흥주와 소흥주 술지게미로 절인 저장성(중국 동남부에 있는 성) 출신 닭. 그 닭의 야들야들한 껍질엔 노란 달걀노른자 지단과 볶아 맛나게 느끼한 하얀 죽순 등이 올라갔지요. 듣기만 해도 혀가 안달복달합니다.

술을 거르고 남은 찌꺼기가 술지게미입니다. 우리도 익숙합니다. 사납도록 가난했던, 모질게 고팠던 우리네 과거에도 술지게미는 따스한 식재료였지요. 산해진미를 탐했던 권력자의 솔푸드가 버려도 상관없는 ‘찌꺼기’란 게 뜻밖이군요. 하지만 그의 미식엔 이유가 있었답니다. 당시 시대정신이라고 하면 과하겠죠. 그의 요리사들은 만주족과 산둥성 출신 한족이 대부분이었답니다. ‘만한일체’(만주족과 한족 일체)를 이뤄내고 싶은 그의 의지가 담긴 구성이었죠. 다르지만, 달라서는 안 되는 사람들. 그들을 하나로 묶기 위해 그는 궁중 회식 때마다 사냥한 고기구이 같은 만주족 음식과 생선, 가금류, 찹쌀 등이 재료인 한족 음식을 같이 냈다고 합니다. 이질적인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는 데 식사만한 건 없다고 전 감히 주장합니다.

이번주 커버 기사도 비슷하지만 다른, 다르지만 결국 식탁 위에선 같아질 수밖에 없는 품종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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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향 팀장 mh@hani.co.kr, 도움말 정세진 명지대 중어중문학과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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