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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너무나 가벼운 트럼프 입…"베이루트 공격"→"사고일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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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사고였을 수도, 공격이었을 수도"

"아무도 몰라…누구도 말할 수 없을 것"

전날 "끔찍한 공격"에서 한발 물러서

에스퍼 "사고라고 믿어" 또 공개 반기

대통령-국방장관 여름 내내 불협화음

중앙일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5일(현지시간) 레바논 베이루트 폭발 참사는 공격에 의한 것일수도, 사고일수도 있다고 말했다. 전날 "끔찍한 공격"이라고 규정한 데서 한발 물러선 것이다.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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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 베이루트에서 일어난 대규모 폭발에 폭탄 공격설을 제기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하루 만에 아직 원인을 모른다며 한발 물러섰다. 반면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은 이번 폭발이 ‘공격’이 아닌 ‘사고’일 것이라고 선을 그으면서 다시 한번 대통령과 다른 목소리를 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5일(현지시간) 백악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브리핑에서 폭발 원인에 대해 “사고였을 수도 있고 매우 공격적인 무엇인가였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전날 미군 장성들의 판단을 근거로 들며 이번 폭발을 “끔찍한 공격”이라고 규정한 데서 후퇴한 발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직 모른다”면서 “지금은 아무도 말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어떤 사람은 그것이 공격이었다고 생각하고,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폭발이 ‘테러 공격’이 아니라 ‘사고’로 보인다고 밝힌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을 겨냥한 발언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날 에스퍼 장관은 온라인으로 진행된 애스펀 안보포럼에서 관련 질문을 받고 “대부분은 보도된 바와 같이 그것이 사고였다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 계속해서 정보를 파악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여지를 두긴 했지만, 폭발 원인과 관련해 국방 수장이 대통령과 반대되는 의견을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이다.

대통령과 국방 수장의 진단이 이처럼 엇갈리자 백악관이 진화에 나섰다. 마크 메도스 백악관 비서실장은 CNN 인터뷰에서 “대통령은 정보기관으로부터 브리핑받은 대로 국민에게 전달했다”고 방어했다. 다만, 초기 브리핑에 근거한 것이어서 시간이 지나면서 조사 결과가 바뀔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테러공격이 아닐 가능성도 언급했지만 기존 주장에서 완전히 물러선 건 아니라고 AP통신은 전했다. 폭스뉴스는 “트럼프 대통령은 폭발이 사고일 가능성도 있다고 말함으로써 전날 발언을 헷지(위험분산)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미 행정부 당국자들은 여러 정황을 들어 이번 폭발이 사고라는 데 무게를 싣고 있다. 익명을 요청한 국방부 관리는 대통령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고 CNN은 전했다.

한 관리는 “만약 누군가 이 정도 규모로 공격을 감행했다는 징후가 있었다면 이 지역에 있는 미군 병력과 자산을 보호하기 위해 자동으로 무력 증강이 이뤄졌을 것”이라면서 “지금까지 그런 움직임은 없다”고 말했다.

국무부는 이날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하산 디아브 레바논 총리의 통화 사실을 전한 보도자료에서 이번 참사를 “끔찍한 폭발”이라고 지칭했다. ‘공격’이라는 표현은 사용하지 않았다. 폼페이오 장관은 레바논 정부가 폭발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며 말을 아꼈다.

초기 조사에서 사고로 잠정 결론 내린 레바논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공격’ 발언이 나온 뒤 미 외교 당국에 이 시점에 공격이란 용어를 사용하는 것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고 미 국무부 관리를 인용해 CNN이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사고 직후 열린 백악관 브리핑에서 ‘사고가 아니라 공격이라고 확신하느냐’는 기자 질문에 “미군 관계자들한테 들은 바에 따르면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위대한 장군들과 만났는데, 그들은 이게 제조 관련 폭발은 아닌 것 같다고 느끼는 것 같았다”고 했다. 이어 “나보다 더 많이 아는 그들은 이것이 공격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면서 “무슨 폭탄 같은 거였다”고 말해 폭탄 테러설에 불을 지폈다.

폭스뉴스는 대통령에게 정보를 전달했다는 "장군들"을 국방부 관리들이 찾아내지 못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에스퍼 장관은 최근 몇몇 이슈에서 자주 이견을 드러냈다. 지난달 독일에서 미군 1만1000명을 철수하는 결정이 공개됐을 때 에스퍼 장관은 미국의 장기적인 국방전략에 따른 재배치라고 설명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독일이 방위비 분담금을 제대로 내지 않아서라고 말했다.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사망으로 촉발된 인종차별 항의 시위 사태 당시 군을 동원해 시위대를 진압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 방침에 에스퍼 장관이 항명성 발언을 하기도 했다. 또 에스퍼 장관이 군에서 남부연합기와 상징물 사용을 금지하자 트럼프 대통령이 격노했다고 한다.

지난 6월 3일 대통령이 에스퍼 장관을 신임하느냐는 질문에 케일리 매커내니 백악관 대변인은 "현재까지 에스퍼 장관은 여전히 장관"이라고 어정쩡한 답변을 내놨다.

전날 베이루트 항구의 한 창고에 보관된 질산암모늄이 폭발하면서 최소 135명이 숨지고, 5000명이 다쳤다고 레바논 정부를 인용해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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