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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천장은 비 새고 벽엔 곰팡이가 덕지덕지.. 폭염보다 두려운 장마철 '쪽방촌 사람들' [현장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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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영등포 쪽방촌


파이낸셜뉴스

서울 영등포구 쪽방촌 한 거주자의 방 모습. 좁은 방에 물건들이 가득 차 발 디딜 틈도 없었다. 사진=윤홍집 기자 쪽방촌의 복도는 어두침침했다(왼쪽). 10여명이 함께 사용하는 쪽방촌 화장실은 곳곳에 녹이 슬어 있었다(오른쪽). 사진=윤홍집 기자


"딸칵!"

요란한 소리와 함께 불이 켜지자 바퀴벌레들이 순식간에 흩어졌다. 서울 영등포 쪽방촌에 거주하는 50대 장씨의 방이다. 2평(6.61㎡) 남짓 크기 쪽방은 이불 한벌 펼 공간이 전부였다. 비가 온 탓에 벽지는 곰팡이가 슬어 누렇게 울었다. 이곳에서 20년을 넘게 살고 있다는 장씨는 "살아본 사람은 알겠지만 장마철이 가장 힘들다"고 말했다.

■"비가 오면 더 덥다"

6일 영등포구 쪽방촌 입구에는 '이곳은 경찰이 순찰을 강화하는 구역입니다'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건물 벽 곳곳에는 '최성재 2月 20日' 같이 사람 이름과 날짜가 적혀 있었다. 한 남성에게 무슨 의미냐고 묻자, 월세를 안 낸 표시라고 답했다. 이 남성은 웃옷을 벗은 채 땀을 흘리고 있었다.

현재 영등포 쪽방촌에는 36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이들은 6.6㎡ 이내의 좁은 공간에서 평균 22만원의 임대료로 생활한다. 주민들의 평균 소득은 월 50만원 수준이라고 알려졌다. 그마저도 정부의 보조금이 대부분이다.

열악한 상황은 한눈에 확인할 수 있었다. 장마 영향으로 비가 새는 곳이 눈에 띄었다. 건물 복도에는 물이 고여 웅덩이가 생겼다. 페인트는 누군가 할퀸 듯 벗겨져 있었고, 복도 조명은 어두침침했다. 환기가 잘 안되는 탓에 습해서 가만히 있어도 땀이 주르륵 흘렀다. 주민들이 왜 집 밖에 있는지 알 거 같았다.

답답함을 견디지 못해 집밖에서 머무는 주민이 많았다. 집 밖에 있으면 다른 주민과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다. 장마가 힘든 이유는 비가 와서 밖에 있지 못하기 때문이란 말도 있었다. 반대로 생각하면, 방에 있는 게 그만큼 곤욕이라는 뜻이다.

건물 밖에서 만난 50대 B씨는 "비가 차서 누렇게 젖은 천장을 보면 마음이 참담하다"라며 "창문도 없고 습해서 장마철이 더 덥다. 선풍기를 켜봐야 찝찝함만 더해진다"고 하소연했다.

기초생활 수급자라는 60대 B씨는 "방이 쉬러 가는 곳이 아니라 죽으러 가는 관 같다"면서 "비 때문에 빨래도 마르지 않아서 썩은내가 진동한다"고 털어놨다. B씨의 방에는 마르지 않은 옷이 옷걸이에 걸려 있었다. 입은 옷을 포함해 옷은 단 두벌뿐이라 갈아입기도 힘들어 보였다.

■'공공주택지구' 지정됐지만…

한층에 하나 있는 화장실은 10여명이 사용한다. 세탁기와 세면대는 붉게 녹이 슬어 있다. 관리자에 따르면 이곳 월세마저 낼 형편이 안되는 사람이 절반가량이다. 매달 월세 날이 가까워지면 관리자를 피한다는 얘기다. 거주자가 몇 달째 월세를 안 내고 사라지는 일도 있는데, 관리자는 "어디 가서 살아있는지도 죽었는지도 알 수 없다"고 말끝을 흐렸다.

5년째 쪽방촌에 거주하는 78세 장 모씨는 그나마 형편이 나은 편이다. 쪽방촌에선 드물게 창문이 있는 방에 살고 있다. 장씨는 월세 24만원에 7년 계약을 하고 이 방에 들어왔다. 그는 "자신보다 안 좋은 방에서 월 30만원씩 내고 사는 사람이 많다"며 웃었다. 장씨의 권유로 방에 들어가보니 TV와 밥솥, 선풍기 등 가전기기가 보였다. 쪽방촌에선 낯선 물건들이다.

장씨는 가족이 있냐는 질문에 "없다"고 짧게 답했다. 결혼을 하지 않았냐고 묻자, 가족과 연락을 안 한지 20년이 넘었다고 했다. 그는 젊은 시절 지하철 열차 안에서 물건을 팔았다. 그러다 상황이 악화돼 홀로 쪽방촌으로 왔다. 얼마 전 공공주택에 당첨됐지만, 못 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최근 당뇨 합병증으로 인한 방광암에 걸려 6차례나 수술을 받았기 때문이다. 장씨는 "죽기 전에 이곳을 벗어날지 모르겠다"고 덤덤히 말했다.

국토교통부와 서울시 등은 지난 7월 영등포 쪽방촌을 공공주택지구로 지정했다. 쪽방촌은 사라지고 2021년 말부터 영구임대주택을 착공한다. 사업이 완료되면 쪽방촌 주민 일부는 저렴한 임대료로 이곳에 거주할 수 있다. 다만, 모든 주민이 이곳에 갈 수 있는 건 아니다. 지원 자격이 안 되는 주민들은 쪽방촌에서도 쫓겨나야 할 처지다.

쪽방촌 주민 C씨는 "공사가 시작되면 나가야 한다"라며 "그때는 거리에서 노숙을 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banaffle@fnnews.com 윤홍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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