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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조은 칼럼] 장산곶매 이야기 좀 빌려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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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시장 사건이 15년 후 또는 30년 후 페미니즘 운동과 사회운동 그리고 지성사에서 어떻게 기록되고 조명될 것인가는 간단치 않다. 성폭력은 진영 논리로 접근하면 안 되지만 성폭력의 정의, 발화 방식, 맥락과 정황에 대한 해석은 사회적 정치적 논쟁이 경합하는 장일 수밖에 없으며 미래 세대를 위한 교육의 장이기도 하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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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달간 매일 풀 수 없는 숙제를 껴안고 잔 느낌이다. ‘위력에 의한 성폭력’ 혐의를 안고 세상을 하직한 인권 변호사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죽음(이하 ‘박 시장 사건’ 약칭)은 우리에게 너무 많은 숙제와 질문과 과제를 남겼다. 전장을 방불케 하는 진영 논리가 판을 가르고 눈만 뜨면 뜨겁게 달군 말과 글이 화살촉처럼 날아와 박혔다. 참을 수 없는 말의 가벼움과 그 무거움을 감당하기 힘들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용어를 빌려 말한다면 에너지 안 들이고 비판으로 명성을 얻는 “나쁜 비판의 잉여 쾌락”족이 집단으로 등장한 듯하다. 판단할 수 있는 정보와 정황은 태부족이어서 할 말을 찾지 못해 우울증에 걸린 집단이 있다면 나는 거기에 속한다. 기명 칼럼을 쓸 순서를 받아들고 고심했다. 원래 쓰려고 했던 주제를 미뤄놓고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한다.

박 시장의 죽음은 구성원 모두에게 각각 다른 이유로 이해받지 못한다. 던져보는 질문도 각양각색이지만 가장 기본적이고 간략한 의문은 어떤 성폭력을 했을까, 그리고 왜 죽음을 택했을까 정도로 요약될지 모르겠다. 첫 번째 질문을 캐물으면 2차 가해여서 더 나가지 못한다. 증거가 되는 문자의 정황과 맥락을 알고 싶지만 멈춘다. 두 번째 질문 또한 죽은 자는 말이 없으므로 추정의 영역이다. “모든 분에게 죄송하다”는 어떤 의미일까 지금도 혼자 곱씹을 때가 있다. 이를 둘러싼 풍문과 논박에 덧붙일 만큼 나는 정보가 없다. 박 시장 사건을 에워싸고 벌어지는 언쟁을 바라보며 우리가 공통된 의미 지평을 잃어버린 통약 불가능한 비극적 공동체로 가는 징후로 읽어야 할까라는 우려도 한다.

잠깐 장산곶매 이야기를 빌려오고 싶다. 1970년대 중반 황석영 작가가 한 일간지에 <장길산>을 연재하며 서막 글로 올렸을 때 깊게 각인되었던지 장산곶매의 죽음 장면이 예기치 않은 순간 불쑥 떠올랐다. 장산곶매 이야기를 구전설화로 널리 알린 분은 백기완 선생인데 이번에 칼럼을 쓰면서 백기완 선생과 황석영 작가의 장산곶매 마지막이 다름을 새롭게 독해하게 되었다. 장산곶매 설화의 줄거리는 간단하지만 민중 서사 특유의 은유로 가득하다. 요약하면 장산곶이라는 동네에 엄청나게 날개가 크고 험악한 독수리가 마을을 집어삼킬 듯 쳐들어왔는데 마을 사람들은 잠들어 있었고 매 혼자서 밤새 싸워 겨우 독수리를 물리쳤으며, 피투성이가 되어 낙락장송 위에서 지친 몸을 쉬고 있는데 피 냄새를 맡은 구렁이가 매를 향해 기어 올라간다. 그때야 마을 사람들이 알고 뛰쳐나와 매더러 빨리 날아오르라고 소리치는데 매는 퍼덕거리며 날지 못한다. 자신들을 지켜줄 매라고 발목에 묶어준 그 표식 끈이 나뭇가지에 걸려 매가 날지 못하는 것을 보며 마을 사람들은 발을 구른다. 백기완 선생의 장산곶매는 밤새 싸우고도 훨훨 날아가는 데서 끝난다. 딸에게 주는 편지 형식의 수상록에서도 그렇고 뒤에 구전설화를 모아서 엮어낸 <장산곶매 이야기>에서도 매가 “나무등거리에 낑겼던 끈을 끊고 지화자 으라차차차 하늘로 날으는 것이었다”로 맺는다. 반면 황석영은 <장길산> 서막에 도입한 장산곶매 설화에서도 그렇지만 <장산곶매>라는 희곡에서도 끈에 묶인 채 독수리와도 싸우고 구렁이와도 싸워 이겼으나 결국 발에 묶인 끈을 풀지 못하고 죽음을 맞는 것으로 마감한다. 마당극 형식을 취한 이 희곡에서 당골네의 입을 빌려 “매듭이 걸려? 몸주님 표시를 하느라고 묶어드린 끈 매듭이 장수매를 죽게 하였고나. (…) 가지에 걸린 매가 날지 못하여 날개를 퍼덕거리는 안타까운 여러 밤이 끝도 없이 흘러가는고나”로 한숨을 내뱉으며 끝난다. 신탁이 내린 숙명도 아니고 개인 결함도 아닌 공동체와의 관계로 풀어낸 매의 죽음이라는 비극성이 아프게 읽혔다. 처음에는 동네 사람들이 수호신이라고 장산곶매 발목에 매준 끈에 대한 은유에 끌려 읽기 시작했는데 차츰 장산곶매 환유에 빠졌다. 통일운동가 백기완 선생은 발목의 끈을 끊고 하늘로 나는 전형적 영웅 서사로 민중의 꿈과 기를 살리고자 했다면, 작가 황석영은 마을 사람들이 살아갈 장산곶매 이후를 상상할 여지를 남긴 셈일까? 같은 사건을 다르게 만들어내는 것은 이야기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나는 2002년 재직 중이던 대학의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 입장에 섰다가 가해 교수로부터 명예훼손 및 업무방해로 피소된 적이 있다. 같은 학과 ㄱ교수가 일본 체류 중 일본인 제자를 추행해서 학과에 진정이 들어왔고 학생들이 해당 교수 수업 거부 운동을 벌이는 2년여의 긴 싸움 끝에 학과장인 나는 명예훼손 및 업무방해로, 피해 제자는 무고 및 명예훼손으로 피소되었다. 물증이 힘든 성폭력의 피해자가 고소하는 순간 가해자 명예를 훼손한 명예훼손 민형사에 걸려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이른바 역고소 사건이 일어났는데 그 중심에 서게 된 것이다. 역고소 사건이 공식적으로만 12건이 터져 있던 때다. 현직 사회학 교수가 같은 학과 교수에게 피소되면서 역고소에 관심 없던 언론이 약간의 지면을 할애했고 검찰에서 무혐의 처리되면서 다른 사건들도 소 취하로 일단락되었다. 성폭력의 이슈화는 시대적 역사적 맥락과 무관하지 않다. 80년대 부천서 ‘성고문’ 사건은 국가 공권력이 개입된 성폭력을, 90년대 서울대 신 교수 사건은 성폭력에서 ‘피해자 중심주의’ 관점을, 우리 학과 사건은 역고소를 이슈화하며 온 셈이다. 우리 학과 사건을 소환한 것은 성폭력 사건을 문제화하는 시대적 역사적 사명과 소명의 흐름을 드러내고 싶은 데 그치지 않는다. 사건 15년이 지난 뒤 일본인 피해 제자가 중학생이 된 아들을 데리고 서울에 왔었다. 힘든 시기에 함께 싸워준 당시 과대표들을 만나 감사도 전하고 아들 앞에서 그 이야기를 처음으로 꺼내 들려주고 갔다. 아들은 심각하게 귀 기울여 들었다. 여기에 가져온 이유다.

여전히 일상적 성폭력 문화와 성폭력 은폐의 카르텔은 강고하다. 2010년대 말에 와서야 현직 검사의 고투 끝에 한국판 미투가 촉발되었고 이제 ‘위계에 의한 성폭력’이 운동의 의제로 설정된 데 반론을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박 시장 사건이 15년 후 또는 30년 후 페미니즘 운동과 사회운동 그리고 지성사에서 어떻게 기록되고 조명될 것인가는 간단치 않다. 성폭력은 진영 논리로 접근하면 안 되지만 성폭력의 정의, 발화 방식, 맥락과 정황에 대한 해석은 사회적 정치적 논쟁이 경합하는 장일 수밖에 없으며 미래 세대를 위한 교육의 장이기도 하다. 다시 평론가 신형철의 말을 빌려 “일부 나쁜 비판의 목소리들은 그들 자신의 쾌락을 위한 것이지 대의나 약자를 위한 것이 아니다”로 끝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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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 ㅣ 사회학자·동국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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