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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9 (수)

[여의나루] 국회, 치열하게 토론하고 당당히 표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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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윤희숙' 나비효과일까. 지난 4일 열린 7월 임시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는 여야 의원들의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법안 찬반토론에 나선 의원은 14명, 5분 자유발언을 한 의원은 6명으로 20명이 본회의장 발언대에 섰다. 평소에 보기 어려운 치열한 토론전(戰)이었다. 본인 부고만 아니면 어떤 기사라도 자신의 이름이 입길에 오르는 걸 원한다는 정치인들이다. 지난달 30일 "저는 임차인입니다"로 시작한 미래통합당 윤희숙 의원 발언이 여론의 주목을 받은 것을 목격한 여야 의원들이 다투어 토론에 나선 것은 당연하다. 퇴장 등 소극적 저항으로 일관하던 야당과 토론 판 깔아주기를 꺼리던 여당이 대동단결한 장면이었다.

윤 의원의 발언은 사실 엄청난 게 아니었다. 경제학 박사만 아는 새로운 이론을 펼친 것도 아니고, 정부·여당이 깜짝 놀랄 비밀을 폭로한 것도 아니다. 지극히 상식적인 논리를 차분하게 풀어 놓은 것이었다. 부동산 시장, 그중에서도 임대차 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을 법률을 일사천리로 통과시키는 국회의 현주소를 지적한 것이다. "나라에 정책이 있다면, 인민은 대책이 있다"는 중국인들의 말이 있다던가. 의도가 좋은 정책도 부작용이 있게 마련이다. 치열한 찬반토론 과정을 거쳐 제대로 된 법을 만드는 게 국회의 책무이다. 여당이 무슨 배짱으로 그런 과정을 생략한 채 군사작전하듯 법을 만드느냐는 윤 의원의 지적은 상식에 속한다.

21대 국회의 첫 번째 시험은 낙제점을 면키 어렵다. 1987년 이후 18대 국회의 지연 기록인 2008년 7월 11일을 넘어서 7월 16일 지각 개원식 신기록을 세웠다. 법사위원장을 비롯한 18개 상임위원장을 여당이 독식한 국회 모습도 민주화 이후 처음이다. 법안 처리 과정에서 일방적으로 독주하는 거대 여당도 낯설다. 이대로 21대 국회 임기 4년이 계속된다면 국회의 존재 의미를 깊이 생각지 않을 수 없다. 여당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문제는 야당의 자리매김이다. 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의 말처럼 현재의 야당은 무력감·모멸감을 느낄 법도 하다. 의석수로만 따지면 야당이 퇴장해도 여당은 오불관언이다. 단독으로 모든 의사 진행이 가능한 터에 야당 부재를 더 좋아할 수도 있다. 장외투쟁은 더구나 언감생심이다. 여론의 싸늘한 반응이 불 보듯 뻔하다. 그렇다고 '독재' 운운하는 비난만으로 국민의 폭넓은 호응을 끌어내기도 어렵다.

윤희숙 신드롬은 딜레마에 처한 야당에 망외의 소득이다. 단순히 특정인의 스타 탄생을 말하는 게 아니다. 야당의 활로를 보여주었을 뿐 아니라 확대하면 의회의 존재 이유인 '말'이 살아날 조짐을 보였기 때문이다. 여당을 비난하고 집단퇴장하거나 집회를 열어 주먹을 흔들어야 투쟁이 아니다. 법안 처리를 막아야만 야당의 투쟁이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법안심사소위, 안건조정위원회, 전원위원회, 찬반토론, 자유발언, 무제한토론 등 법이 허용하는 모든 수단을 통해 현안에 대한 의견을 개진해야 한다. 앞서 본 것처럼 그 과정에서 여당도 토론에 참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비난, 야유 등 성숙하지 못한 모습이 많이 보이지만 말의 승부가 정착되고 언론과 국민이 공정한 심판자로서 평가한다면 달라질 것이다. 토론 후 표결 참여도 당연하다. 박지원 국정원장 청문회 후 부적격 의견을 병기한 보고서를 채택한 것처럼 마지막까지 표결 기록을 남겨야 한다. 퇴장은 스스로의 무기력함과 자괴감만 더할 뿐이다. 여야 대결구도가 별 의미가 없는 21대 국회이다. 치열하게 토론하고 당당하게 표결하는 새로운 국회상을 만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여야 모두 분발을 기대한다.

노동일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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