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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스포츠 미투 1호’ 김은희 코치 [못다 한 이야기- #ME T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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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김은희 코치. 연합뉴스


김은희 고양테니스아카데미 코치는 초등학교 때 본인을 상습 성폭행한 테니스 코치를 법정에 세워 유죄 판결을 이끌어냈다. 그는 21대 총선을 앞둔 지난 1월 미래통합당(당시 자유한국당) 인재로 영입되기도 했다. 피해자에서 조력자로 거듭난 그를 지난달 30일 서울 광화문의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코치님은 체육계 미투 1호로 알려져 있습니다. 2001∼2002년 사건이 벌어졌고, 2016년 고소를 하기까지 15년 가까이 어떻게 지내셨나요? 누구의 도움을 받으셨는지요?

“2016년 전에는 어떤 노력은 전혀 하지 않았어요.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를 몰랐으니까요.”

-친구들이나 가족한테도 말하지 않았나요?

“가족들은, 부모님을 포함해 전부 모르셨어요. 친구들도 거의 몰랐죠. 드문드문 중고등학교 때 여자 코치선생님께 말씀드렸던 것 같고, 왜 어렸을 때 친구들끼리 속 깊은 얘기를 나눌 때 있잖아요? 그럴 때 진짜 친한 친구나 후배 한 두명 정도 이렇게 손꼽을 정도에게만 이야기 했었어요. 그러다가 2012년에도 고소를 하려고 알아봤었는데 그러면서 대학 선후배들도 알게 됐죠.”

-2012년에도 고소를 하려고 했다고요?

“네. 그때 조두순 사건으로 만 13세 미만 아동이 성폭력을 당하면 성인(만 20세)이 되는 날부터 공소시효가 시작되도록 걸로 법이 바뀌었다는 걸 알았어요. 2012년 제가 22살이었으니까 그럼 공소시효가 안 지난 거잖아요. 그래서 상담소 같은 곳에 전화해본 다음 고소를 해볼까 했던 거죠.”

-그런데 결국 안 하셨죠?

“안 한 게 아니라 못 했어요. 증인이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어요. 경찰에서도 힘들다, 어렵다 이렇게 얘기했고요. 너무 오래된 일이라 증거도 없을 거고, 증인도 없으니 이건 안 된다, 이렇게요.”

-결국 고소장을 제출하신 건 2016년인데 그땐 어떤 생각이었나요?

“그때 우연히 어떤 테니스 대회에서 그 사람을 대면했는데, 아이들 옆에 있더라고요. 중학생쯤 되는. ‘저런 사람은 아이들 곁에 있으면 안 되는데?’ 이런 생각이 딱 들었어요. 어떻게든 아이들 옆에서 떼어놓고 싶었죠. 그 아이들 중에서도 어쩌면 저 같은 피해자가 있을 수 있고, 혼자 고통받고 있을 수 있잖아요. ‘만약 내가 신고를 하지 않는다면, 앞으로의 피해는 나로부터 비롯된거다’라고 생각했어요.”

-어쨌든 시일이 오래 지나서 소송 준비하는 게 쉽지 않으셨을 것 같아요. 당시에는 미투 운동이 불붙었던 때도 아니고요.

“미투에도 종류가 있다고 생각해요. 가해자를 처벌하려는 목적이 있을 것이고, ‘사소해보일 수 있는 어떤 행동도 나에겐 고통이다’라는 걸 공감받고자 하는 거일 수도 있고요. 저는 처벌이 목적이었고, 그 사람에게 벌을 주는 게 목적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저와 함께 공감하고 이런 게 없었다고 해서 힘들었던 건 없었어요. 또 어차피 열이면 열, 다 제가 진다고 했던 터라 법적으로 이기려는 마음도 없었어요. 제가 벌주고 싶었단 의미는 그 사람한테 조금이라도 마음의 짐을 지어줄 수 있다면, 그 사람을 조금이라도 힘들고 고통스럽게 만들고 싶다는 거였어요. 왜 사람이라면, 고소장이 접수됐다는 말만 들어도 두 다리 뻗고는 못 자잖아요. 그런 심리적 고통이라도 주고 싶었어요.”

-증거는 어떻게 찾으셨어요?

“제가 알기론 병원 기록이 5∼10년이면 폐기된다고 들었는데, 운 좋게 제가 다녔던 데는 의사 선생님이 16년이 지났는데도 컴퓨터를 하드째 갖고 계시더라고요. 그걸 의사선생님이 제 이야기를 듣고는 다 복구해주셨어요. 사비 들여서요. 그렇게 진료기록을 받을 수 있었어요. 또, 경기도, 강원도에 사는 증인들 찾아가서 부탁하고 그랬죠.”

-2012년에는 증인들이 진술을 꺼렸다고 하셨잖아요?

“그때는 안 됐는데 2016년에는 가능했던 게 제가 생각했을 때는 그 동료 중에 부모가 된 친구가 2명 있었다는 게 큰 것 같아요. 이제 본인들도 아이가 있으니까 생각이 달라졌겠죠. 사건에 대해 설명하고, 그 사람이 처벌받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 다시 이야기했어요. 그러니까 설득이 되더라고요. 또, 2012년에는 다들 사회초년생이라 각자의 삶에 집중해야 할 시기니까, 남한테 신경을 쓰기 어려울 수 있잖아요. 그런데 2016년에는 그때보단 안정을 찾은 면도 있고. 또 결정적으로 2016년에는 체육계 종사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그러니까 좀 더 자유롭게 증언할 수 있었겠죠.”

-재판 중에 혹은 그 이후로 2차 피해를 겪으셨는지.

“저 같은 경우는 다른 게 끼어들 여지가 없었잖아요. 제가 (그때 초등학생이었으니까) 그 사람이랑 감정이 조금이라도 개입될 여지가 없었고, 남녀관계 이렇게 해석될 수 없는 상황이었고, 일방적이고 위계에 의한 사건이라는 게 분명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피해자다움이라든가 ‘진짜 피해자 맞아?’ 이런 뒷얘기를 듣지는 않았어요. 그렇긴 한데 다만 분명 잘못한 건 그 가해자인데 테니스하는 모든 사람이 손가락질받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은 있었어요. 실제로 그런 이야기를 듣기도 했고요. ‘왜 이제와서 문제를 일으켜서 우리까지 피해를 보나’ 이런 이야기요.”

-지금은 굉장히 활발하게 활동하고 계신데 ‘트라우마를 극복했다’고 봐도 될까요?

“음… 그건 극복이 되지 않는 것 같아요. 기억상실증에 걸려 기억이 없어지거나 다시 태어나지 않는 한. 그게 없었던 일이 되지 않는 이상 평생을 갈 수밖에 없죠. 그래서 피해자 김은희로서의 삶과 지도자로서의 삶, 두 개를 좀 분리해서 보려고 해요. 제가 힘들거나 할 때는 지금도 제 스스로가 통제가 안 돼요. 특정 시기나 상황에서 어두운 기억이 발현이 될 때가 있어요. 그 또한 저의 모습인 건데, 그걸 평생 가져가야 한다고 하면, 분리를 시켜서 생각하는 게 개인적으로 더 편하더라고요. 그래서 다른 피해자를 위로하듯 저 스스로를 위로하고 그래요.”

-쉽지 않아보여요.

“맞아요. 또 지금은 제가 도움을 받는 입장이라기보다는 주는 입장이 됐잖아요. 옛날엔 도와달라고, 어렵다고 징징거리기도 하고 그걸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피해자가 왜 숨어야 돼?’ 이렇게 뻔뻔하다 싶을 정도로 당당한 편이었거든요? 그런데 요즘엔 내가 약한 모습을 보이면 다른 피해자들한테까지 영향이 갈까 봐 나는 강해야 되고, 생각도 깊이해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게 생겼어요. 그렇다보니까 최근들어 피해자인 나를 탓하기도 해요. 내가 피해자인 게 원망스럽달까, 왜 그런 일을 당했을까 이런… 내가 잘못해서 피해자가 된 게 아닌데 그걸 아는데도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스포츠계에 피해자가 얼마나 될까요?

“없다고 보긴 어렵겠죠. 그런데 그건 어디나 마찬가지일 거예요. 위계가 벌어지는 곳에는 어디나 문제가 있을 수 있잖아요. 군대도 그렇고, 직장에서도 갑질이 벌어지는 것이고. 다만 체육계는 체육계의 특수성이 있으니까 그런 것과 결부돼 더 부각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개인도 문제고, 조직에도 분명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복합적인 문제인 거죠. 개인의 문제가 일차적으로 있는 것이고, 그게 실현되도록 한 구조가 있는 거고요. 저는 그런데 이런 걸 해결하는 데 결국은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구조가 바뀌어도 생각이 안 바뀌면 성폭력은 끊임없이 일어날 거예요. 법이 있어도 범죄는 계속 일어나잖아요. 제가 권력형 위계에 의한 성폭력 가해자들을 만나보면요 본인들은 스스로를 불사신으로 생각해요. ‘나는 이게 발설되거나 드러나도 처벌받지 않을 거고, 아무 일 없이 살아남을 수 있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어요. 그만큼 스스로 절대적인 권력을 갖고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그런 말도 안되는 일을 저지르는 거고요.”

-그래서 피해자에게 힘을 실어주는 게 중요한 일이겠네요.

“그렇죠. 피해자가 힘이 있었다면 피해를 겪지도 않았을 거예요. 저 또한 어릴 때 말할 수 없었던 이유가 ‘어른은 어른 편이야’란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나에겐 엄마, 아빠뿐이었으니까요. 만약에 제가 그때 더 큰 힘이 나를 지켜주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면 그때라도 말을 했을 거예요. 피해자에게 힘이 돼주는 사람이 누구냐, 그건 굉장히 중요한 거예요. 만약에 제가 어느 국회의원을 알아요. 그런데 피해를 당했어요. 그렇다면 그 국회의원을 알 때와 모를 때 저의 대처가 전혀 다를 거라는 거죠.”

-국회의원이 됐다면 어떤 법을 발의하고 싶었어요?

“저는 신고자에 대한 의무를 강화하고, 신고 의무를 어기면 처벌을 강화하도록 하고 싶었어요.”

-아동학대의 경우처럼요?

“네. 책임도 가해자 한 사람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가해자를 책임지는 수직계열상에 놓인 책임자들이 있을 거 아니에요. 그들에게 연대책임을 묻도록 하고 싶었어요. 그게 구조적으로 변하는 거죠. 사실 성폭력 신고는 누구든 할 수 있는 거예요. 내가 길을 가다가도 정황상 의심이 된다고 하면 신고할 수 있죠. 그런데 우리나라는 신고해서 무죄가 나오면 (가해자가) 무고죄라든지 명예훼손이나 이런 걸 걸겠다고 하니까 당사자는 말할 것도 없고 주변에서도 협박으로 느끼고 움츠러들잖아요. 그걸 깨야된다고 생각해요. 사실 피해가 일어나고 있는 경우에는 그 피해 당사자가 신고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닐 때가 많아요. 그래서 신고하는 걸 강화하고 그들을 보호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김 코치님 가해자는 10년형을 받았는데, 혹시 따로 사과는 받으셨나요?

“아니요, 전혀. 몇 년 뒤면 나오는데 그 때 보복이 무서워요. 그 사람은 지금도 인정 안 해요. 끝까지 자기는 그런 적 없다고 하면서 사과 안했어요. 그래서 더 불안해요. 가족들도 걱정되고. 잃을 게 없는 사람이 제일 무섭잖아요. 그래서 ‘해코지 안 하겠다, 보복 안 한다’는 조건으로 선처라도 해줘야 하나 이런 생각도 했어요. 본인이 후회한 상태에서 형을 사는 게 아니니까. 게다가 저는 신분이 다 노출돼있으니까 더 걱정되는 거죠.”

-마지막으로 피해자분들께 해주고 싶은 한 마디가 있다면요?

“가해자에게 하는 최고의 복수는 나의 행복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행복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증오와 고통에 사로잡혀있다면 그건 가해자만 좋은 거예요. 피해자들이 불행하다고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정리=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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