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03 (금)

[정희모의창의적글쓰기] 기계 번역과 언어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세계일보

몇 년 전 일이지만 국내에서 문자번역에서 기계와 인간의 대결이 관심을 끌었던 적이 있다. 관련기사를 보면 인간 대표로는 경력 5년 이상의 전문 번역사 4명이 나왔고, 기계 대표로는 구글, 네이버, 시스트란의 번역기가 나왔다고 한다. 한영, 영한 번역을 문학과 비문학으로 나누어 경쟁했는데 국제기준에 따라 판정한 결과는 인간의 승리였다. 30점 만점에 인간은 20점을 대부분 넘겼지만 기계는 셋 중 하나만 겨우 10점을 넘겼다. 아직 언어를 옮기는 일에 기계가 인간을 따라잡기는 힘든 것 같다.

번역기계는 경제기사와 같은 비문학 지문에서는 비교적 정확한 번역을 했지만 문학 지문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비유나 상징, 반어법의 경우는 더 번역하기 어려웠다. 한·영 번역에서 ‘강아지가 이불에 실례를 했다’란 우리말을 기계는 ‘강아지가 담요에게 무례했다(The puppy disrespects the quilt)“라고 영어로 옮겼다. 이는 영·한 번역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in such a small device’라는 문장을 ‘그러한 작은 장치’라고 번역했지만 실제 그것은 ‘휴대전화’였다. 문맥에 따라 ‘작은 장치’가 우리말 ‘휴대전화’를 의미한다는 것을 몰랐다. 번역기계는 사람만큼 상황적 맥락, 문화적 환경에 따른 언어 차이를 아직 읽어 낼 수가 없다.

번역기계는 기본적으로 단어 의미, 배열순서. 단어 간의 관계, 문장구조를 배경으로 해서 의미를 만들어 낸다고 한다. 문제는 특정 문맥에서 비롯되는 특정한 의미를 읽어 내지 못한다는 점이다. 번역기는 ‘저기 은행(the bank)을 보세요. 남자들이 낚시를 하고 있어요’로 번역한다. 앞뒤 문장을 보면 ‘은행(bank)’이 아니라 ‘둑(bank)’으로 번역해야 한다. 번역기계는 애초 개별 문장 단위를 기초로 했기 때문에 이어지는 문장 맥락을 해석하기가 힘든 것이다.

우리가 경험하듯 최근의 번역기계는 엄청난 발전을 하고 있다. 앞뒤 문맥에 따라 의미를 찾아내려는 노력이 지속되고 있다. 그렇지만 설사 이것이 완성된다 하더라도 완전하기에는 여전히 부족할 것이다. 언어의 의미는 앞뒤 문장을 넘어 훨씬 더 다양한 인간의 생각과 판단, 문화적 환경, 은유와 비유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아주 추운 날 건물 앞 현관에 하얀 종이로 ‘추워요!’라고 적혀 있는 안내문을 보았다. 과연 번역기계는 그 의미가 문을 닫아달라는 간곡한 청유의 뜻인 것을 알아낼 수가 있을까?

정희모 연세대 교수·국문학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