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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임세원법이 못지켜준 의사들, 가운 안 '칼 방호복' 챙겨입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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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병상 이상만 비상벨·보안요원

중·소규모는 예외, 여력도 없어

가운 안에 몸통 보호장구 착용

“경찰과 직통 비상벨 설치해야”

6월 말 전주 예수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실에 20대 조현병 환자가 갑자기 들이닥쳤다. 휴대전화를 든 손으로 50대 정신과 의사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경찰 관계자는 “전에 진료를 받은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게 이유였다”고 말했다. 사건 발생 직후 진료실 앞 보안요원과 간호사가 환자를 제압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반면 5일 부산 북구의 한 정신과의원 김모(60)원장은 조울증 환자가 휘두른 칼에 변을 당했다. 김 원장이 퇴원을 요구하자 불만을 품고 진료실에 난입했다. 환자가 병원에서 담배를 계속 피워 퇴원을 요구한 게 화근이었다.

부산 의사는 숨졌고, 전주 의사는 다쳤지만 목숨을 잃지는 않았다. 차이가 뭘까.

전주 완산경찰서 관계자는 “보안요원이 현장에서 바로 상황을 제압한 덕분에 큰 사건으로 번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핵심은 보안요원이다. 서울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고(故) 임세원 교수가 가져온 변화다. 임 전 교수는 2018년 말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목숨을 잃었다. 직후 보건복지부와 국회가 달려들어 보완책을 냈다. 소위 임세원법(法)이다.

그런데 임세원법이 부산 김 원장을 비껴갔다. 지난해 4월 의료법이 개정되면서 100병상 이상 정신병원·종합병원에만 비상벨과 보안요원을 두도록 의무화했다. 예수병원은 100병상이 넘고, 부산 의원은 20병상이다. 정부는 입원환자 1인당 하루 1210~3200원의 환자안전관리료를 신설해 비용 조달을 돕는다. 하지만 100병상 미만은 해당사항이 없다.

전국 정신병원은 1670개. 이 가운데 100병상 이상 285개만 임세원법을 적용한다. 나머지 1385개(83%)는 무방비 상태다. 게다가 이 중 정신건강의학과의원 1087개는 입원실이 없다. 환자안전관리료는 입원환자가 대상이어서 1087개 의원은 여전히 사각지대로 남게 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의사들이 자구책을 냈다.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일부 정신과 의사들이 의사 가운 안에 몸통을 보호하기 위해 칼을 막는 방호복을 입고 진료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서울의 한 병원 관계자는 “의사들이 방호복을 입고 근무한다”고 말했다. 강북삼성병원은 7개 진료실끼리 연결해 대피통로를 만들었고, 플라스틱 방패(의사용), 호신용 스프레이(간호사용)를 비치했다.

임세원 교수 비극 직후 의원급에 주변 경찰서나 파출소와 연결된 비상벨을 설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유야무야 됐다. 홍정익 보건복지부 정신건강정책과장은 “보안인력과 비상벨을 의무화하려면 여기에 드는 비용을 보상해줘야 하는데, 의원급은 방법이 마땅찮다”고 말했다.

영국은 정신의료기관이 한국식의 112 전화 벨을 울리면 무조건 가장 가까운 경찰이 출동한다. 호주는 인근 경찰과 연계해서 처리한다. 미국은 엑스레이 검색대를 둔 데도 있다. 백종우 교수는 “비상벨을 누르면 3분 내 경찰이 출동하는 게 최상의 대책”이라며 “이런 사실이 알려지기만 해도 예방 효과가 난다”고 말했다.

근본 대책은 환자 관리 강화다. 윤석준 고려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입원한 정신질환자 8만 명 중 재활치료를 제대로 받는 사람이 1만 명이 안 된다. 임세원법을 만들었지만 예산이 뒷받침되지 않아 치료의 질, 지역사회 서비스의 질이 달라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전주=김준희 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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