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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절망하는 작가 없다는 게 단단한 희망, 다시 ‘폴짝’ 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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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 20돌 맞아 20명 작가 인터뷰한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

35년차 편집자 “잘 되는 책 공통점? 공감에서 나온 가독성”


한겨레

스무 해의 폴짝

정은숙 지음/마음산책·1만8000원

출판사 마음산책이 20주년을 기념하는 방식은 ‘질문’이었다. <스무 해의 폴짝>은 정은숙 대표가 이 출판사에서 책을 냈던 문학 저자 스무 명을 만나 질문하고 그 대답을 기록한 인터뷰 모음이다. 그 어렵다는 출판 시장에서 스무 해를 버텨냈다는 자부심 같은 건 이 책에선 찾아보기 어렵다. 대신 스무 해, 420여 종의 책을 냈지만 여전히 모르겠다는 혼란스러움과 여기서 뻗어 나온 절박한 질문이 가득하다. 4일 오후 마포구 사무실에서 지은이 정 대표를 만났다.

“독자를 모르겠어요. 독자가 뭘 좋아하는지, 무엇을 읽고 싶어 하는지 미궁 속으로 빠져들었어요. 특히 중고서점이 생기면서 독자들의 ‘초기 반응’이 너무 약해졌어요. 신간이 중고서점에 풀리기를 독자들이 기다리기 때문에 신간이 나와도 바로 기세가 꺾이고 아무 호응이 없어요. 물론 온라인 서점 데이터로 (독자의 선호를) 짐작할 수는 있지만, 짐작만으로 산업에 종사할 수는 없잖아요.”

답을 구하고자 작년 가을 시인 김용택부터 올봄 평론가 신형철까지 스무 명의 문인을 만나 물었다. 책을 둘러싼 세상의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이 시대에도 ‘쓰는 일’을 왜 멈추지 않는지. 그는 답을 얻었을까.

“‘독자는 변화했다. 그러나 문학은 내가 쓰고 싶어서 쓰는 것이다. 그러니 어떤 변화가 와도 문학은 계속된다.’ 작가 스무 명의 공통적인 답변이었어요. 생산자(작가)가 절망하지 않고 있고, 걱정하는 분도 예상외로 없더라고요. ‘아, 작가가 이렇게 열심히 쓰겠다고 하니, 책을 만드는 즐거움은 사라지지 않겠구나’ 희망을 갖게 됐어요.”

희망은 단순하지만 변화는 복잡하다. 정 대표는 소설가 김숨에게 질문하면서 ‘글을 통해서 새로운 매체에 닿고 싶어 하는 마음으로 창작하는 경우가 많고, 독특한 스타일을 찾아 읽는 독자도 늘어나고 있다’는 말을 보탰다. 책이 드라마·영화의 1차 콘텐츠가 되면서 출판을 ‘발판’으로 보는 새로운 욕망을 지닌 작가가 생겼고, 책에 대한 독자의 마음가짐도 경외심에서 ‘필요한 것만, 빠르게 읽겠다’는 실리적인 태도로 변모했다. 이렇듯 작가와 독자의 욕망이 변했기에, 둘을 잇는 출판사의 역할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정 대표는 “예전에는 책만 잘 만들면 끝나는 거였다면, 이제는 어떻게 하면 이 책이 더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할까 ‘출간 이후’를 더 많이 고민하고 있다”며 “출판사가 작가와 저작권 에이전시, 작가와 작가 등을 연결하며 콘텐츠를 둘러싼 관계망을 구축하는 ‘고리’ 역할을 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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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 20명에게 각자의 취향을 반영한 운동화를 선물한 정 대표는 “관념으로서의 문학이 아니라 육화한 문학을 대하는 기분이었다”고 썼다. 마음산책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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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고리’를 자처하는 게 출판사만은 아니다. 김중혁·김금희 등 다수 작가가 소속된 ‘블러썸 크리에이티브’처럼, 작가 매니지먼트를 전담하는 기획사들이 생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작가의 강연·방송 일정·저작권 문제를 조율해 온 출판사 입장에서는 다시 한 번 존재 이유를 물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저는 변화를 추동하는 모든 일에 부정적인 대응을 하지 않아요. 다만, 이런 시대에 저자와 어떤 관계를 구축할 것인가 ‘전환’은 고민하죠. (…) 책을 만드는 일은 매니지먼트가 대체할 수 없어요. 편집자는 단순히 작가의 원고를 받는 사람이 아니라, 작가의 뿌리·정서를 헤아리고, 작가를 유혹해 쓰게 하고, 작가의 마음에 응해주며, 독자의 마음까지 읽어 작가와 독자 사이 균형을 맞추는 ‘마음의 기술자’거든요.”

‘마음산책은 들판에 문학과 작가를 자유롭게 풀어놓는다’는 소설가 하성란의 말처럼, 정 대표는 작가가 협소한 형식의 울타리를 편하게 넘나들도록 ‘기술적으로’ 유도해왔다. <마음사전>(김소연, 2008) 같은 시인이 쓴 <…사전> 시리즈,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김금희, 2018) 같은 ‘짧은 소설’ 시리즈, <뭐라도 되겠지>(김중혁, 2011) 같이 콘셉트와 주제가 비교적 명확한 산문집 등을 출간해 온 것이다. “새천년에 생긴, 문예지 없는 문학 출판사는 무엇이 달라야 하나 고민하다 ‘기획’을 하자는 결론에 다다랐어요. 그렇게 기획을 하고 저자를 섭외해서 소설보다 풍성하면서 시인의 단단한 문장이 담긴 산문집 시리즈를 냈습니다.”

산문이라는 자유로운 문장의 들판에 작가를 ‘풀어 준’ 덕분인지, 마음산책의 책들은 초록을 연상시킨다. 실험적이기보다는 자연스럽고, 화려하기보다는 정갈하다. 정 대표 역시 마음산책만이 지닌 정체성으로 ‘생명력’을 꼽았다. “우리는 모두 세상에 던져진 존재잖아요. 저희가 책을 내는 분야인 문학·예술·인문의 책들은 이 세계에서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질문하게 만들죠. (…) 책이 만들어주는 자기 대화의 시간, 자기 대면의 기회를 통해 독자가 ‘내가 살아 있다는 실감’을 갖게 하는 책을 만들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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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 20주년을 맞은 마음산책 정은숙 대표가 이 출판사의 첫 책 <굴비낚시>(김영하·2000)와 최근 책 <스무 해의 폴짝>을 양손에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마음산책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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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산책을 차리기 15년 전인 1985년부터 오늘까지 정 대표는 35년째 책을 만들고 있다. 300여명의 저자와 1500여 종의 책이 그를 거쳤다. 출판계에서 이만한 빅데이터를 가진 이도 드물다. 그런 그에게 ‘잘되는 책의 공통점’을 꼽아 달라고 청했다. ‘가독력’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가독력은 곧 공감이에요. 자기 얘기 같은 보편성을 갖고 있어야 잘 읽혀요. 그건 필수인 것 같아요.”

18년 전 <한겨레>와 인터뷰하며 여성 후배들에게 ‘사장을 꿈꾸라’고 했던 정 대표는 이번에도 비슷한 조언을 했다. “한국의 출판편집자는 80%가 여성인데, 출판사 가운데 여성 대표는 10%도 안 됩니다. 자기 색깔을 가지고 책을 계속 내고 싶고 편집의 즐거움을 누리고 싶다면 창업도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습니다.”

시집 두 권을 낸 시인이기도 한 정 대표는 매일 아침 침대 곁에 둔 1000권의 시집을 무작위로 골라 ‘시점’(詩占)을 친다. 시로 하루의 길흉을 점치는 게 아니라 시 행간에 놓인 자신의 마음을 읽는다. 책을 내는 일은 결국 사회를 읽어내는 일. 그는 “자기 자신에 집중하는 게 세상을 읽어내는 직관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고 했다. 수십 번 질문 끝에 얻은 희망으로 운동화 끈을 단단하게 동여맨 그가 다시 ‘폴짝’ 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최윤아 기자 a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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