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18 (토)

아프로디테를 숭배하던 코린토스는 어떻게 ‘부자 도시’가 되었나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책&생각] 신화와 축제의 땅, 김헌의 그리스 기행

⑧코린토스의 아프로디테 축제

그리스 본토-펠로폰네소스반도 잇는 교통의 길목 자리한 코린토스

매년 여름 아프로디테를 기리는 축제의 공간은 환락의 장소로 변해


한겨레

코린토스의 중심에 있는 아폴론 신전. 김헌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아름다움과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는 헤라와 아테네를 물리치고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라고 쓰여 있던 황금사과의 주인이 되었다. 트로이아의 왕자 파리스가 아프로디테를 황금사과의 주인으로 선택하는 순간,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신으로 공인된 셈이다. 코린토스는 아프로디테를 도시의 수호신으로 삼았고, 아름다움과 사랑을 지고의 가치로 삼는 도시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곳으로 가보자.

그리스 본토에서 펠로폰네소스반도로 이어지는 좁은 땅을 이스트모스라고 하는데, ‘목’이라는 뜻이다. 이스트모스가 끝나는 부분, 즉 펠로폰네소스반도가 시작되는 목 같은 지점에 코린토스가 있다. 그야말로 그리스 본토 쪽과 펠로폰네소스반도를 잇는 교통의 길목이다.

무역으로 돈을 번 상인들의 집결소

그리스 본토와 펠로폰네소스반도를 오가는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생긴 병목현상이 코린토스를 부자 도시로 만들었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며칠씩 묵었고, 아예 짐을 풀어 장사를 하자 큰 국제시장이 형성되었다. 기원전 583년에 참주였던 페리안드로스는 4대 범그리스 제전 가운데 하나인 이스트미아 제전을 열어 몰려든 인파에게 볼거리도 제공했다. 숙박업과 요식업으로 주민들은 돈을 벌었고, 그곳을 통과하는 사람들에게 통행세를 부과하며 거래가 활발한 아고라에서 시장세를 거두면서 코린토스는 돈을 긁어모았다. 심지어 이스트모스 서쪽에 있는 코린토스만에 도착한 배를 동쪽에 있는 사로니코스만으로 옮겨줄 포장도로(디올코스, Diolkos)까지 닦아 엄청난 통행세를 챙겼다. 그것도 페리안드로스의 작품이었는데, 원래 그는 운하를 뚫으려고 했지만 당시 기술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대안으로 디올코스를 닦은 것이다. 로마의 카이사르는 운하를 뚫으려는 계획을 세웠으나 착수하기도 전에 죽었고, 네로 황제의 운하 건설 계획은 진행되긴 했지만 그가 죽은 뒤 곧바로 중단되었다. 그 후에도 여러 차례의 시도가 있었으나, 그들이 꿈꾸던 운하는 1893년에 와서야 비로소 뚫렸다.

코린토스로 모여드는 뜨내기들을 상대로 ‘사랑을 사고파는 일’도 조직적으로 이루어졌다. 그것은 코린토스 중심에 세워진 아폴론 신전의 여사제들이 맡았던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그 일로 엄청난 고수익을 챙긴 곳은 코린토스의 남쪽에 우뚝 솟은 아크로코린토스에 있던 아프로디테 신전이었다. 아프로디테의 여사제들은 아프로디테의 아름다움과 사랑을 지치고 외로운 나그네들에게 베푼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그들은 시장의 길거리에 늘어서 있던 포르네(pornē)들과는 다르다며, 스스로를 헤타이라(hetaira)라고 불렀는데, ‘친구, 전우, 동반자’라는 뜻이었다. 어쨌든 코린토스를 통해 이오니아해와 에게해를 오가며, 멀리는 이탈리아반도와 소아시아를 잇는 무역으로 엄청난 돈을 번 상인들이 코린토스에 머물면서 신비롭고 아름다운 여사제들과의 사랑을 탐닉하며 돈을 아낌없이 탕진했다. 아프로디테의 은총이라 떠벌리던 사내들의 꿈은 다시 대박을 터트려 코린토스를 찾는 것이라는 말이 나돌았고, 전 재산을 날린 선장들은 “코린토스 여행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지”라며 짐짓 센 척을 했다.

아프로디테에 대한 감사와 욕망

코린토스는 아프로디테를 기리는 축제(Aphrodisia)를 매년 성대하게 열었다. 7~8월 사이였다고 하니, 딱 이맘때다. 사람들이 기리는 축제의 주신 아프로디테는 정신적 사랑과 아름다움을 지키는 ‘천상의 아프로디테’(Aphrodite Urania)가 아니라, 지상의 ‘모든 사람을 위한 아프로디테’(Aphrodite Pandemos)였다. 축제는 여신을 상징하는 새인 비둘기의 피로 제단과 신전을 정화하는 일로 시작되었다. 여신상을 깨끗하게 목욕시킨 뒤, 정결하게 청소한 신전에 다시 세우는 일이 중요한 행사였다. 여사제들을 비롯한 아프로디테 밀교 의식의 참가자들에게는 소금과 남근 모양의 빵이 주어졌다. 거세된 우라노스의 남근이 바다에 빠지자 거품이 생기더니 아프로디테가 태어났다는 전설 때문에 생긴 의식이다. 코린토스는 그런 아프로디테를 수호신으로 섬겼다. 아름다움과 사랑을 최고의 가치로 여겼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부를 가져다준 아프로디테에 대한 감사와 욕망이 투영된 것이기도 하다.

한겨레

코린토스의 유적지 중 하나인 페이레네 샘. 김헌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비극적 신화가 깃든 두 개의 샘

아프로디테의 도시였던 코린토스에는 역설적이게도 비극적인 여인들과 관련된 두 개의 유명한 샘이 있다. 우선 아폴론 신전 서쪽에 있는 글라우케 샘에 얽힌 이야기를 보자. 글라우케는 코린토스의 왕 크레온의 딸이었다. 어느 날, 황금양털의 모험으로 이름을 날린 이아손이 코린토스에 왔다. 크레온은 그를 사위로 삼고 싶어 안달이 났다. 그러나 이아손은 아들이 둘이나 딸린 유부남이었다. 보통은 ‘아깝다’며 포기할 일인데, 크레온은 욕심을 버리지 않았다. 이아손의 아내 메데이아와 두 아들을 내쫓고 기어이 그를 사위로 삼으려 했다. 메데이아는 분하고 억울했다. 더욱 분통이 터지는 것은 이아손이 크레온의 제안을 덥석 물더니 자신을 버리고 새장가들겠다고 들뜬 꼴이었다. 가만히 앉아서 당할 메데이아가 아니었다. 그녀는 결혼을 축하하며 코린토스를 떠나겠노라 선언하고 공주에게 아름다운 옷과 화관을 선물했다. 순진하게 기뻐하며 선물을 몸에 걸치는 순간, 공주는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였고, 딸을 구하려던 크레온도 함께 타버렸다. 메데이아가 마법을 쓴 것이다. 공주는 샘에 몸을 던졌지만 불길은 꺼지지 않았고, 그녀는 잿더미가 되었다. 그때부터 글라우케 샘이라 불린다.

한편, 아폴론 신전 동쪽에는 페이레네 샘이 있다. 페이레네는 요정이었고 포세이돈의 사랑을 받았다. 둘 사이에는 레케스라는 아들이 태어났지만, 아르테미스 여신의 실수로 목숨을 잃었다. 페이레네는 아들의 죽음에 슬퍼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다가 그만 온몸이 녹아내려 샘물이 되었다. 그래서 페이레네 샘이 되었고, 거기서부터 항구까지 닦인 길은 레카이온 길이라고 불렸다. 나중에 영웅 벨레로폰테스는 이 샘 곁에서 물을 마시고 있던 날개 달린 말 페가소스를 발견했고, 그 말을 타고 무시무시한 괴물 키마이라를 물리쳤다. 그는 코린토스를 세운 전설적인 인물 시시포스의 손자였다.

그런데 아크로코린토스의 아프로디테 신전 뒤편에도 페이레네 샘이 있다. 그렇다면 페이레네는 도대체 어디에서 통곡의 눈물을 흘리다가 샘이 된 것일까? 코린토스인들은 페이레네 샘이 시작된 곳은 아크로코린토스인데, 그 물이 지하로 흘러 아래쪽에도 또 하나의 페이레네 샘이 생겼다고 믿었다. 다른 이야기도 전해진다. 아크로코린토스의 샘은 강물의 신 아소포스가 시시포스에게 베푼 선물이라고도 한다. 제우스가 아소포스의 딸 아이기나를 납치했을 때, 시시포스가 이 사실을 아소포스에게 알려주었다. 딸을 되찾은 아소포스는 시시포스에게 이 샘물이 솟아나도록 해주었다. 코린토스를 세우고 높은 곳에 도시의 중심지를 만들었던 시시포스에게는 아크로코린토스에 사는 사람들을 위한 샘물이 절실했기에, 아소포스의 선물은 무척 반가운 것이었다.

반면 화가 난 제우스는 시시포스가 죽자, 저승 세계에서 산꼭대기로 커다란 바위를 굴려 올리고, 굴러떨어지면 다시 굴려 올리는 영원한 벌을 내렸다. 아크로코린토스를 보는 순간, 땀을 뻘뻘 흘리며 산꼭대기 위로 커다란 돌덩이를 굴리며 올라가는 시시포스의 모습이 떠오른다. ‘시시포스’라는 이름은 그가 산꼭대기로 바위를 굴리며 힘겹게 내뱉던 가쁜 숨소리를 그대로 닮아 있다. 아마도 그가 수없이 많은 무거운 건축자재를 가파른 아크로코린토스 꼭대기로 쉴 새 없이 옮기도록 지시한 것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노역을 강제한 시시포스가 저승에 가면 산꼭대기 위로 영원히 돌을 굴리게 될 것이라며 원망 섞인 저주처럼 지어낸 이야기가 아닐까.

김헌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부교수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언론, 한겨레 구독하세요!
▶네이버 채널 한겨레21 구독▶2005년 이전 <한겨레> 기사 보기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