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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여자들이 도심 거리를 가로지를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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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도시를 걷는 여자들

로런 엘킨 지음, 홍한별 옮김/반비·1만9000원



작가 리베카 솔닛이 20년 전에 썼던 <걷기의 인문학>과 짝을 이룰 만한 책. <도시를 걷는 여자들>은 지속적으로 배제되어온 여성 경험을 되짚어가며 도시에서 걷는 여자에 관한 전복적 사유를 풀어낸다.

애초 ‘산보자’는 근대화 물결이 넘실대는 유럽 도시 속에서 ‘위반하는 행위자’, 진취적이고도 철학적으로 사유하는 ‘남성’을 상징했다. 보들레르의 계승자로서 이들은 지성인, 과학자, 혁명가, 민주적 영웅이었다. 반면 거리를 활보하는 도시 여자들은 성폭력을 유발하는 철부지나 성매매 여성으로 취급되었다. 작가이자 비평가인 지은이 로런 엘킨은 지금까지 쓰인 ‘남성 작가-산보자의 정전 목록’을 비판적으로 작성한다. 그리고 인간이 만든 도시의 이름은 젠더 중립적이 아니었으며, 이 공간은 “문화자본을 지니지 못한 사람들의 존재를 무시”했다는 점도 일깨운다. 그렇게 지은이는 도시 속을 걸어다닌 여자들의 ‘다른 역사’를 수집해 증명한다. 저항했다가 죽고 만 교외의 여자들, 큰 꿈을 꾸었다가 죽은 여자를 되살려 걷게 하는 일이기도 했다.

‘남성 산보자’를 뜻하는 ‘플라뇌르’의 여성형을 ‘플라뇌즈’라고 일컫는 지은이는 이들을 “도시의 창조적 잠재성과 걷기가 주는 해방 가능성에 긴밀하게 주파수가 맞추어진, 재능과 확신이 있는 여성”이라고 정의한다. 뉴욕, 파리, 런던, 베네치아를 누빈 ‘플라뇌즈’의 이름은 조르주 상드, 버지니아 울프, 아녜스 바르다, 그리고 탈식민주의 페미니즘 문학의 선구자 진 리스 등이었다. 한국에서 그들의 이름은 나혜석, 김일엽, 김명순 등이었을 것이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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