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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7 (화)

‘로빈후드 증세’ 현실로 대한민국은 세금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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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5일 저녁 서울 중구 청계천로 예금보험공사 앞.

이날 열린 ‘부동산 규제 정책 반대 조세저항 촛불집회’에서 ‘6·17 규제 소급적용 피해자 구제를 위한 시민모임’ ‘7·10 취득세 소급적용 피해자 모임’ 등 온라인 카페 회원과 시민들이 청계천 남측 도로, 인도를 가득 메웠다. 이들은 ‘악덕증세 중단하라’는 피켓을 들고 “평생 집 한 채를 보유했는데 세금 폭탄을 맞게 됐다” “집값은 정부가 올려놓고 왜 투기꾼 취급하나” 등등 각종 불만을 토해냈다.

정부의 세금 정책을 두고 여론이 들끓는다. 종합부동산세, 양도세, 취득세 등 주택 보유, 거래 관련 세금을 줄줄이 올리면서 집주인 불만이 속출하는 모습이다. 부동산 세금뿐 아니라 소득세 최고세율을 최고 45%로 높이는 등 사실상 부유층에 대한 징벌적 과세에 나섰다. 종부세, 양도세, 취득세에 이어 소득세, 금융투자소득세까지 이른바 ‘부자 증세 5종 세트’가 완성됐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전 국민 재난지원금 등 대규모 재정 지출로 나라 곳간이 비자 상위층 세금을 더 걷어 아래층을 지원하는 ‘로빈후드 증세’라는 비판도 적잖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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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세금 얼마나 올랐기에

▷다주택자 증여 취득세율 최대 12%

정부가 최근 내놓은 ‘2020년 세법개정안’의 핵심은 고소득자와 고액 자산가 세 부담을 늘리고 개인투자자 주식 양도차익 등에 세금을 물리는 것이다.

‘부자 증세’ 중 가장 파장이 큰 분야는 부동산 세금이다. 정부는 내년부터 종합부동산세, 양도세를 대폭 올린다. 3주택 이상 보유자와 조정대상지역 2주택 보유자는 1.2~6% 종부세율을 적용받는다. 기존에는 과세 표준에 따라 0.6~3.2%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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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종합부동산세, 양도세, 취득세 등 부동산 세금을 줄줄이 올리면서 논란이 뜨겁다. 사진은 서울 강남권 아파트 전경. <매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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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종부세 세율을 올리면서 향후 개인이 내야 하는 종부세가 10조원 이상 늘어날 전망이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종부세 세율 인상과 공시가격 인상 등으로 2021~2025년 개인이 내는 종부세가 9조3087억~10조1882억원가량 늘어날 것으로 추산됐다. 법인이 내는 종부세까지 합치면 5년간 주택 종부세 세수가 최대 15조원가량 증가할 전망이다.

양도세 부담도 만만찮다. 내년 6월 1일 이후 다주택자가 조정대상지역에서 집을 팔 때 기본세율에 20~30%를 중과한다. 다주택자 주택 양도세율은 최고 75%까지 오른다. 주택을 2년 미만 보유했다 팔 때는 최고 70% 양도세를 내야 한다. 1년 미만일 경우에는 40%에서 70%로 오른다.

일례로 14억원 아파트 1채 소유자가 매입 후 1년 내에 17억원에 팔아 양도차익이 3억원이라고 가정해보자. 지금은 지방소득세까지 포함한 양도세가 1억3090만원이다. 하지만 내년 6월부터는 1억원가량 늘어난 2억2907만원을 양도세로 내야 한다. 1년 이상 2년 미만 보유한 경우에도 양도세가 1억301만원에서 1억9635만원으로 껑충 뛴다.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신년 기자회견에서 “보유세는 강화하는 방향이 맞지만 거래세 완화는 장기적으로 긍정적”이라고 밝혔는데 실제 정책은 180도 달라져 실수요자 반발이 거세다.

정부와 여당은 다주택자의 증여 취득세율도 최대 12%까지 올리기로 했다. 보유세, 양도세 인상으로 다주택자 증여가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우회로를 차단하기 위한 목적이다. 지방세법 개정안에 따르면 1주택자가 조정대상지역 내 주택을 구입해 2주택자가 되는 경우 취득세율을 8%로 높였다. 3주택자 이상은 12%까지 적용한다. 증여하는 경우에도 취득세율이 12%로 치솟는다. 정부가 부동산 세금을 줄줄이 올리다 보니 시장에서는 “부동산 정책 실패를 일반 국민에게 뒤집어씌운다”는 비판도 적잖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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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세율 최고 45%

▷‘한국판 부유세’ 비판 쏟아져

부동산 세금뿐 아니다. 주식, 가상화폐 등 금융상품 세금 부담도 만만찮다.

정부는 2023년부터 주식, 채권, 펀드, 파생상품 등의 투자로 발생하는 모든 소득을 ‘금융투자소득’으로 합산해 20% 세율을 물린다(3억원 초과는 25%). 논란이 컸던 개인투자자 주식 양도세 관련해서는 양도차익 중 연간 5000만원이 넘는 금액에 세금을 물리기로 했다. 일례로 국내 주식에 투자해 1억원 수익을 냈다고 가정해보자. 2023년부터는 투자수익 1억원에서 5000만원을 공제한 후 20% 세율로 매긴 금융투자소득세 1000만원을 내야 한다.

고소득층 소득세 부담도 커진다. 정부는 ‘5억원 초과’인 소득세 과세표준 최고 구간을 ‘10억원 초과’로 올리고 45% 세율을 적용한다. 2017년 소득세와 법인세를 동시에 인상해 소득세 최고세율을 40%에서 42%로 인상한 지 3년 만이다. 소득세의 10%인 지방세를 포함하면 소득세율이 최고 49.5%까지 치솟는다. 연소득 10억원이 넘는 대상자는 1만6000여명. 이들은 연간 9000여억원, 즉 연평균 1인당 5600여만원의 소득세를 더 내야 한다. ‘한국판 부유세’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논란이 커지자 정부는 “증세가 아니다”라고 해명했지만 실상은 다르다. 한국 경제 저성장 기조가 이어지면서 세수 확보가 점차 어려워지자 고소득층으로부터 거액의 세금을 거둬들인다는 분석이다.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해 3차에 달하는 대규모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한 영향도 크다.

심지어 정부가 ‘교통딱지로 세수 메우기에 나섰다’는 비아냥까지 나올 정도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6년 809만건이던 속도위반 단속 건수는 현 정부가 출범한 2017년 1184만건으로 늘었다. 이후 단속 건수는 2018년 1215만건, 지난해 1240만건으로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이에 따라 세외수입인 교통 과태료, 범칙금 부과액도 크게 높아졌다. 2016년 7915억원에서 지난해 8862억원으로 급증했다. 올 들어서도 6월까지 4469억원이 걷혀 사상 최초로 교통 과태료, 범칙금만 90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김예지 미래통합당 의원은 “대다수 시민이 세금 폭탄에 이어 과태료 때리기까지 연달아 얻어맞았다. 과도하게 걷은 과태료가 전액 국고로 들어가 부족한 세금 충당에 활용된다는 논란이 있는 만큼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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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세금정책 난맥상

▷실수요자 증세…세수 확보 효과 ‘글쎄’

정부의 ‘부자 증세 5종 세트’를 두고 벌써부터 논란이 뜨겁다.

첫째 다주택자뿐 아니라 1주택 실수요자 세금 부담까지 급등했다는 점이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1주택자 세금은 지난해 말에 비해 거의 변화가 없다”고 밝혔지만 실상은 다르다. 1주택자 종부세율뿐 아니라 보유세 기준인 공동주택 공시가격이 매년 가파르게 상승하기 때문이다. 서울 공동주택 공시가격은 최근 3년간 매년 10% 넘게 올랐다. 보유세를 산정할 때 적용하는 공정시장가액비율도 2018년 80%에서 올해 90%, 내년에는 95%로 높아진다. 1주택자가 내야 하는 일반 종부세율은 기존 0.5~2.7%에서 최고 3%로 오른다.

이에 따라 1주택자 종부세는 올해 356만원에서 내년 439만원으로 평균 84만원 늘어난다. 2023년 807만원, 2025년에는 1286만원까지 증가할 전망이다. 예를 들어 서울 마포구 아현동 마포래미안푸르지오 전용 84㎡를 보유한 1주택자 보유세는 2017년 153만9240원에서 올해 324만9360원으로 2배 이상 늘어난다. 내년에는 452만원을 보유세로 내야 한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정부가 다주택자 세금만 늘린다고 강조했지만 실제로는 1주택 실수요자 세금 부담도 커졌다. 보유, 양도할 때 내는 세금이 줄줄이 높아진 데다 서울 집값이 전체적으로 뛰어 갈아타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1주택자 양도세 부담도 만만찮다. 실거래가 9억원을 초과하는 1주택자의 장기보유특별공제에 거주기간 요건을 추가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10년간 아파트를 보유할 경우 거주기간과 관계 없이 80%의 양도세 공제율을 적용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10년 보유기간 중 5년만 거주할 경우 세액공제를 60%만 받아 양도세 부담이 늘어난다.

10억원에 매수한 아파트를 10년 보유해 20억원에 매도한다고 가정해보자. 장기보유특별공제를 받을 경우 지금까지는 차익의 80%인 8억원을 공제받았지만 내년부터는 10년간 직접 거주해야만 공제가 가능하다. 5년간 거주했을 경우 6억원만 공제받는다. 1주택자라도 양도세 부담이 급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둘째 ‘부자 증세’에도 세수 확보는 여전히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우려다.

한국납세자연맹에 따르면 지난해 양도세 세수는 16조1011억원으로 전년 대비 1조9200억원 줄었다. 감소율이 10%를 넘는다. 정부가 2017년 8·2 대책 이후 양도세 부담을 꾸준히 늘렸는데 오히려 양도세 세수가 줄어든 배경은 뭘까. 집주인들이 정부 의도대로 집을 팔지 않고 계속 보유하거나 증여하는 방안을 택했기 때문이다. 과거 사례를 봐도 김대중정부는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부동산 경기 활성화를 위해 2000년 양도세 부담을 낮췄다. 그런데도 그해 세수는 오히려 30% 이상 늘었다.

코로나19 여파로 기업 경기가 악화돼 법인 세수가 감소세라는 점도 변수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올해 국세 수입은 지난해(293조5000억원)보다 5.7% 줄어든 276조7000억원에 그칠 전망이다.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정책 부작용을 재정으로 해결하려는 재정만능주의로 올해 국가채무가 111조원가량 늘어날 것으로 우려된다. 세수 호황이 끝나 올해 최대 30조원에 달하는 역대 최대 규모의 세수 결손이 발생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셋째 소득세율 인상이 자칫 경기 회복에 찬물을 끼얹을 우려도 크다.

정부 발표대로 소득세율이 45%로 오르면 한국의 소득세 부담은 국민소득 3만달러, 인구 5000만명 이상 국가인 ‘3050클럽’의 평균(43.3%)을 웃돌게 된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6개국 중에서는 7번째로 높다. OECD 주요국이 최근 소득세 부담을 줄여온 점을 감안하면 글로벌 추세에 역행한다는 우려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노르웨이는 최근 발표한 수정 예산안에서 일반 소득세율을 23%에서 22%로 낮췄다. 네덜란드도 소득세 최고세율을 51.75%에서 49.5%로 인하하기로 했다. 다른 유럽 국가도 근로소득자 소득공제를 통해 세금 부담을 낮추는 데 힘쓰는 중이다. “정부가 소득세 최고세율을 45%까지 높인 만큼 향후 고소득 근로자의 조세격차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부동산 세금뿐 아니라 소득세, 금융투자소득 관련 세금을 줄줄이 인상할 경우 경제주체의 소득 활동 의욕을 떨어뜨릴 우려도 크다. 조세 형평성에 어긋날 뿐 아니라 부자들 지갑을 닫게 해 가뜩이나 코로나19로 침체된 경기를 더욱 위축시킬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국세청에 따르면 한국 소득 상위 1% 계층의 세 부담 비중은 41.6%로 일본(38.6%), 미국(38.4%), 영국(29%) 등 주요국보다 훨씬 높다. 전체 소득에서 소득 상위 1%가 차지하는 비중은 11% 수준에 그치지만 전체 소득세의 42%가량을 부담하고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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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 정책 어떻게

▷‘핀셋 증세’ 대신 면세 비율 줄여야

전문가들은 조세 형평성을 위해서라도 고소득층에게 과도한 세금을 물리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세수 확보를 위해서는 세금 사각지대를 찾아내거나 세금을 내지 않는 면세자 비율을 줄이는 것이 급선무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18년 기준 국내 면세자 비율은 38.9%에 달한다. 국민 10명 중 4명이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미국(30.8%), 캐나다(17.8%), 일본(15.5%) 등 다른 국가에 비해 한참 높은 수치다.

그런데도 정부는 비과세 감면·축소에 소극적이다. 중소기업 특별세액 감면, 지방 이전 공장·본사 법인세 감면, 아파트 관리비 부가가치세 면제 등 올해 일몰이 도래하는 비과세, 감면 항목의 일몰을 대부분 연장했다. 고속버스 요금 부가가치세는 항구적으로 면세하기로 했다. 이로 인한 세수 감소 효과만 6조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정 계층 세금 감면을 확대하면서 고소득층에만 높은 세율을 적용하는 것은 징벌적 과세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넓은 세원, 낮은 세율’이라는 조세정책의 기본원칙을 되살려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 한목소리다.

“정부는 면세 기준을 그대로 두면서 세수를 더 확보해야 해 부자 증세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주식, 가상화폐 등 투자수익에서 발생하는 세수는 시장 상황에 따라 변동성이 크다는 점이 문제다. 특정 계층에 대한 과도한 핀셋 증세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넓은 세원 확보 방안에 힘써야 할 때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 의견이다.

[김경민 기자 kmkim@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70호 (2020.08.05~08.1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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