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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월성원전 공론조사, 표본그룹 설계부터 부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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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성원전 맥스터 증설 공론조사 조작 의혹

찬반의견 비율 반영 등 공론조사 기본원칙 무시

시민단체·전문가 “공론조사 신뢰도 떨어뜨려”

‘한수원 자회사 소속 직원 대거 참여’ 주장도


한겨레

경북 경주와 울산 시민단체 회원들이 6일 청와대 앞에서 월성원전 내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 증설 공론조사에 대한 조작 의혹을 제기하며 11일째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농성을 벌이고 있다. 월성핵쓰레기장 반대 주민투표 울산운동본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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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성원전 인근 주민들이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맥스터) 증설에 찬성하는 비율이 높게 나타난 공론조사 결과가 조작된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가 표본그룹에 주민 찬반 비율을 반영하지 않는 등 공론조사의 기본 원칙도 지키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공론조사에서 대립하는 주제를 다룰 때는 찬반의견 비율을 반영해 표본을 구성해야 한다는 점이 무시된 것이다. 게다가 표본그룹에 맥스터 증설의 이해관계인으로 분류될 수 있는 월성원전 근무 한수원 자회사 직원들이 대거 참여했다는 주장까지 나와, 공론조사 신뢰도에 의문이 제기된다.

7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재검토위는 경주 시민 26만명 가운데 3천명을 시내 60개 지점에서 임의 표집해 공론조사 표본 그룹을 선정할 모집단을 구성했다. 재검토위는 모집단에 표집된 시민들을 상대로 맥스터 증설에 대한 찬반 의견을 ‘매우 반대’에서 ‘매우 지지’까지 7점 척도로 구체적으로 조사했다. 하지만 이렇게 파악한 찬반 의견 비율은 정작 표본그룹인 시민참여단 150명을 구성할 때는 반영되지 않았다.

재검토위는 모집단으로 표집된 시민 가운데 시민참여단으로 활동할 의사를 밝힌 사람들만 놓고 나이와 성별, 거주지역만을 고려해 추첨하는 방식으로 시민참여단을 구성했다. 맥스터 증설에 반대하는 대다수 주민들이 공론조사에 부정적인 상황에서 참여 의사를 밝힌 주민만을 대상으로 표본그룹을 구성할 경우, 여론이 왜곡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찬반이 대립하는 사안을 두고 표본 그룹을 구성할 때는 찬반 비율을 반영한 ‘2상 표집’을 하는 것이 공론조사의 기본원칙(‘1상 표집’은 찬반 대립이 분명하지 않은 경우 찬반 비율을 고려하지 않는 방식)”이라며 “이런 식으로 공론조사가 신뢰성을 잃게 만들면 우리 사회가 다양한 갈등적 현안을 풀어나갈 중요한 기제 하나를 잃어버리게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2017년 10월 신고리원전 5·6호기 공사 중단과 계속을 놓고 벌어진 공론조사 때는 이런 원칙에 따라 모집단의 찬반 비율을 반영한 표본 그룹이 구성된 바 있다.

이에 대해, 이윤석 재검토위 대변인(서울시립대 교수)은 “신고리 공론조사 뒤 공사 중단을 원했던 시민단체 쪽에서 나온 가장 큰 불만이 찬반 비율을 고려해 시민배심원단을 구성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번엔 그분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해드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참여자들의 합리적 판단에도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다”며 “우리의 선택에 다양한 평가가 내려질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런 문제를 파악하지 못했다는 반응이다. 김대자 산업부 원전산업정책관은 “공론조사 방식은 재검토위가 독립적으로 논의해 만든 부분이라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사실 우리는 마지막까지도 잘 몰랐다”고 말했다.

일부 지역의 경우, 시민참여단이 대부분 한수원 자회사 직원들로 채워졌다는 주장도 나왔다. 경주시 감포읍 노동리의 김태열 이장은 “한수원 자회사인 ‘퍼스트키퍼’와 ‘시큐텍’의 직원, 또는 청원경찰이 6월27일 시민참여단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한 감포읍 시민참여단 38명 중 21명이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이윤석 대변인은 “시민참여단에 한수원 자회사 직원들이 포함될 수 있지만, 그 비율이 극히 작아 최종 결과에 영향을 미치진 않을 것이라 생각해 그에 따른 별도 조처를 취하진 않았다”고 말했다.

앞서 재검토위는 지난달 24일 월성원전 맥스터 증설에 대한 경주 지역 공론조사 결과 시민참여단의 81.4%가 증설에 찬성 의견이었다고 밝혔다. 앞으로 공론 조사 결과를 담은 권고문은 산업부에 제출돼, 정부가 맥스터 증설 여부를 최종 결정짓는데 활용될 예정이다. 이상홍 ‘월성핵쓰레기장 추가건설반대 경주시민대책위’ 집행위원장은 “주민들이 맥스터는 수용하지 못하더라도, 공론조사 결과에는 승복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며 공론조사 의혹에 대한 철저한 진상조사를 촉구했다. 지난 6월초 한길리서치가 조사해 나온 반대율 55.8%와 20일 뒤 시민참여단 1차 조사에서 나온 반대율 2.6%의 격차를 고려할 때 공론조사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시민단체 쪽 주장이다. 이들은 근본적으로 전국적 공론조사를 거쳐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을 새로 짜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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