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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1 (토)

10대 소녀들의 낭만적이지 않은 성장통 ‘워터 릴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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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린 시아마 열풍 힘입어 13년 전 데뷔작 지각 개봉

한겨레

<워터 릴리스> 스틸컷. 블루라벨픽쳐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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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소녀 마리(폴린 아카르)는 친구 안나(루이즈 블라셰르)의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 경기를 보러 수영장에 갔다가 난생처음 느낀 감정과 마주한다.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 팀 주장 플로리안(아델 에넬)에게 첫눈에 반한 것이다. 마리는 무작정 플로리안을 졸졸 따라다닌다. 플로리안이 버린 쓰레기 뭉치에서 먹다 버린 사과를 발견하고는 기꺼이 베어 물 만큼 그를 향한 감정은 깊어만 간다.

플로리안은 이 구역의 ‘여왕벌’이다. 남자들은 어떻게든 그에게 접근하려고 안달이고, 여자들은 그를 두고 헤프다며 쑥덕거린다. 플로리안은 그걸 알면서도 남자들과 자유분방하게 어울린다. 어느 날, 수영장에 들여보내주기만 하면 뭐든 하겠다는 마리가 나타난다. 다른 애들처럼 자신을 함부로 판단하지도 않고, 뭔가를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묵묵히 곁에 있어주는 마리에게 플로리안은 남모를 고민을 털어놓는다.

마리의 절친 안나는 첫사랑을 하고 싶다. 수영장에서 우연히 마주친 남자애를 첫 키스 상대로 점찍었다. 그의 눈에 들려고 초대받지도 않은 파티에 불쑥 찾아가는가 하면, 이웃집 할머니 반려견을 데리고 산책을 나와 우연히 마주치는 것처럼 작전을 짜기도 한다. 하지만 남자의 마음은 플로리안을 향한다. 포기를 모르는 안나는 쪽지와 선물로 고백하고 꿈에 그리던 상황을 맞이하지만, 기대만큼 달콤한 것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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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 릴리스> 스틸컷. 블루라벨픽쳐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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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3일 개봉하는 영화 <워터 릴리스>는 셀린 시아마 감독의 데뷔작이다. 2007년 작이니 13년이나 지각 개봉을 하는 셈인데, 이는 올해 초부터 불어닥친 시아마 열풍 때문이다. 지난해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에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과 각축을 벌이며 각본상과 퀴어종려상을 받은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지난 1월 개봉해 14만명 넘는 관객을 모았다. 18세기 말 프랑스를 배경으로 두 여인의 불꽃 같은 사랑을 섬세한 감정 표현과 그림 같은 영상으로 담아낸 영화는 열혈 팬덤을 만들어냈다. 이에 힘입어 시아마의 2011년 작 <톰보이>를 지난 5월에 개봉한 데 이어, 이번에 데뷔작까지 개봉하는 것이다.

<워터 릴리스>는 소외된 여성의 정체성과 욕망을 여성 스스로의 목소리로 대변하는 시아마 작품세계의 출발점이다. 시아마 감독은 10대 시절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 경기를 보러 갔던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며 각본을 쓰기 시작했다. 또래 10대 선수들이 멋지게 활약하는 모습에 매혹됐던 그는 이를 바탕으로 10대 소녀들의 솔직하면서 섬세한 성장담을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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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 릴리스> 스틸컷. 블루라벨픽쳐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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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 위로 보이는 선수들은 우아하며 항상 미소를 잃지 않는다. 하지만 수면 아래에서 보면 선수들의 팔과 다리는 쉼 없이 파닥거리며 고통을 견딘다. 영화 속 세 소녀도 마찬가지다. 겉으로는 평범하거나 남 부러울 것 없어 보이지만, 내면에선 각기 다른 이유로 부딪치고 아파하고 절망한다. 영화는 소녀들의 첫사랑과 성장통을 마냥 낭만적으로 묘사하거나 대상화하지 않는다. 대신 너무 현실적이어서 괴롭기까지 한 순간들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동성애자이기도 한 시아마 감독은 “세 소녀는 10대 시절 나 자신을 흔들었던 세가지 고민을 각각 반영한 캐릭터”라며 “동성애도 나오지만 그 자체를 주제로 삼기보단 하나의 여정에 불과한 소재로 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내면에서 우러나는 여성의 관점으로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고 바라는 ‘소녀’가 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연출 의도를 설명했다.

영화는 제60회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과 ‘황금 카메라’ 부문에 초청됐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에서 원치 않는 결혼을 앞둔 귀족 엘로이즈를 연기한 아델 에넬의 10대 시절 풋풋함도 매력적이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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