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18 (토)

청승맞고 암울해도 어쩌겠어, 우리 미래인 걸…웨이브 [막차리뷰]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경향신문]

경향신문

‘모태솔로’인 <일주일 만에 사랑할 순 없다>의 주인공이 사랑을 찾기에는 지구종말까지 남은 시간이 짧아도 너무 짧다. 웨이브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번 ‘막차 리뷰’는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OTT) 웨이브가 지난달 10일 공개한 <SF8>을 살펴봤습니다. <SF8>은 근미래의 이야기 8편을 담았는데요, 40대 남성 기자는 이 중 <일주일 만에 사랑할 순 없다>를, 20대 여성 기자는 <간호중>을 추천했습니다. 물론 ‘마음대로 별점’도 빠지지 않습니다.

독자 여러분은 누구의 추천작에 더 마음이 가시나요. <SF8>은 오는 14일부터 MBC에서 매주 금요일 한 편씩 방송됩니다.


■지구멸망, 초능력자, 로맨스가 다나오는데 뭘 고민하십니까

8편 중 한편을 고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시놉시스만 보고 클릭을 해버렸다. 홈페이지에 소개된 ‘일주일 만에 사랑할 순 없다’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지구 종말까지 일주일이 남았다. 종말 소식에 별별 취향의 사람들이 커밍아웃을 하기 시작한다. 심지어 초능력자들까지!! 초능력자들을 모아 종말을 막으려는 혜화. 그리고 종말 순간에도 외롭기만 한 모태솔로 김남우. 이들은 종말을 막고 사랑도 할 수 있을까?’ 김동식 작가가 쓴 동명의 단편소설을 안국진 감독이 드라마로 만들었다.

지구종말이라는 극단적인 상황, 그리고 이 위기를 타개할 초능력자들의 등장. 당장 <어벤져스> 시리즈의 화려한 캐릭터들이 떠오른다. 초능력자들이 지구종말을 막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 분명하다. 그 와중에 남녀주인공 간에 사랑도 꽃 필 것이다.

경향신문

사랑을 만들어가기에 일주일은 짧아도 너무 짧다. 초능력이란 것도 사랑에 별 도움은 되지 못한다. 사랑은 서로의 감정이 함께 고양되어야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웨이브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잠깐만 시놉시스를 다시 보자. 주인공은 ‘모태솔로’다. 뭔가 서늘한 기운이 느껴진다. 모태솔로가 지구종말을 맞이한다는 설정, 갑자기 온 세상 청승이 다 모일 것만 같지 않은가. 그렇다. <일주일 만에 사랑할 순 없다>는 ‘자신의 초능력을 모르고 살던 모태솔로 주인공이 지구종말 일주일을 앞두고 애타게 사랑에 빠지고 싶어하는’ 서글픈 이야기다.

<SF8>은 <어벤져스> 시리즈보다는 영국의 옴니버스 드라마 <블랙 미러>에 훨씬 더 가깝다. 가까운 미래에 벌어질 법한 일들을 그럴듯하게 영상에 담았다. <블랙 미러>처럼 무거운 주제의식을 가진 어둡고, 진중한 이야기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러나 <일주일 만에 사랑할 순 없다>는 그 궤도에서 잠시 이탈한다. 지구종말이라는 소재는 그 무엇보다 무겁지만, 이야기는 코믹하게 전개된다.

사실 이 드라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구 종말이 아니다. ‘일주일’이란 시간이다. 이 일주일이란 짧은 기간 동안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당연히 모태솔로 주인공은 연애가 하고 싶다. 평생을 외롭게 살아왔는데 죽을 때 마져 외롭고 싶지 않다. 그러나 사랑을 만들어가기에 일주일은 짧아도 너무 짧다. 초능력이란 것도 사랑에 별 도움은 되지 못한다. 사랑은 서로의 감정이 함께 고양되어야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드라마 제목만 보면 결코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을 것 같다. 그래도 기대를 갖고 끝까지 지켜볼 만하다고 감히 말씀 드린다. 미리 말해줄 수는 없지만 주인공이 갖고 있는 초능력은 모든 모태솔로들에게 희망을 준다. 어떤이는 그걸 ‘희망고문’이라 부르겠지만.

경향신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홍진수 기자 soo43@kyunghyang.com>

■SF인가, 현실고증인가. 철학적 고민 빠지게 하는 묵직함

<간호중>(감독 민규동)은 <SF8> 시리즈의 포문을 여는 첫 번째 에피소드다. “주님이 카인에게 물으셨다. 네가 무슨 짓을 저질렀느냐. 네 아우의 피가 땅에서부터 내게 울부짖고 있다.” 성경구절을 인용한 오프닝에서 눈치챌 수 있듯 생명·윤리에 대한 철학적 고민을 하게 하는 드라마다. 8개 에피소드 중 가장 ‘가까운 미래’를 그리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뇌경색으로 쓰러져 10년째 식물인간 상태로 누워있는 엄마(문숙)를 위해 딸 연정인(이유영)은 자기 얼굴과 똑같이 생긴 간병 로봇을 구입한다. 정인은 고급 대화 기능이 추가된 로봇 ‘TRS-70912B’에게 ‘간호중’이란 이름을 붙이고 진짜 사람처럼 의지한다. 인공지능(AI) 기능이 탑재된 간호중은 정인과의 교류를 통해 ‘마음’을 인지하기 시작한다. 정인의 다친 손가락을 입에 가져가 빨고, 인간과 같은 감정 표현을 하기도 한다.

경향신문

<간호중>은 ‘마음’을 인지하기 시작한 간병 로봇 간호중(이유영)을 통해 시청자로 하여금 생명·윤리에 대한 철학적 고민을 하게 만든다. 웨이브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홀로 생계와 부양을 감당하는 여성을 향한 차별적 시선은 미래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 우울감에 빠진 정인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암시를 남기고, 간호중은 ‘환자와 보호자 중 누구를 살릴 것이냐’를 두고 선택의 기로에 선다. 그리고 이 대목에서 고민에 빠지는 건 간호중만이 아니다. 인공지능 시대 도래 이후 인간이 마주한 수많은 윤리적 문제가 후반부에 몰아치듯 쏟아진다. 시청자의 마음에도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로봇에게도 마음이 있을까, 로봇은 인간을 사랑할 수 있을까, 로봇에게 영혼이 있다면 로봇의 작동을 영구히 멈추는 것은 살인인가. <엑스마키나> <A.I.> 등 서구 SF 영화를 통해 마주한 익숙한 질문이지만, 그 배경이 한국으로 바뀌면서 놀랍도록 신선해졌다. 뻔한 설정에 자극성만 더해가는 드라마판에 인간다움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 오랜만이기 때문일까. 간호중과 사비나 수녀(예수정)의 논쟁을 통해 AI를 둘러싼 과학과 종교의 대립을 보는 재미도 있다.

한국사회가 처한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한 점도 눈에 띈다. ‘돌봄 노동’을 수행하는 간병 로봇은 초고령화 사회에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될 확률이 크다. 원작 소설 <TRS가 돌보고 있습니다>와 달리 로봇과 보호자의 성별을 여성으로 설정한 이유도 ‘돌봄은 여성의 몫’이라는 현실과 맞닿아 있다. 청계천을 따라 늘어선 낡은 상가 안에 자리한 최첨단 병실은 발달한 의료기술과 더불어 심화된 빈부격차를 상징한다.

경향신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홍진수 기자 soo43@kyunghyang.com> <이유진 기자 yjleee@kyunghyang.com>

▶ 장도리 | 그림마당 보기
▶ 경향 유튜브 구독▶ 경향 페이스북 구독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