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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낭만적인 고고학 산책 - C W 체람 [조은정의 내 인생의 책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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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언젠가 드러난다

[경향신문]

경향신문

어리석게도 적군이 두고 간 목마를 성안에 들여 전멸했다는 ‘태양의 도시’ 트로이 이야기는 섣부른 판단을 하지 말라는 상징을 입은 신화였을 뿐이다. 가난한 목사의 아들 슐리만이 할머니에게 그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는. 8개 국어에 유창하고 사업적으로 성공한 그는 모두가 전설의 나라라고 했던 트로이를 발굴해 역사 앞에 내세웠다. 그로부터 20년 후, 길을 가다가 쓰러진 그는 누구의 돌봄도 받지 못하고 죽어갔다. 남루한 양복 안주머니에 든 지갑을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도덕이 남루한 세상에서는 옷을 갖추어 입고 외출할 일이다.

‘로제타 스톤’은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 때 한 장교가 발견한 것이다. 그 또한 훌륭한 학자였으나 동생을 위해 헌신한 형을 가진 인문학자 샹폴리옹 덕에 로제타 스톤은 해독됐다. 인류는 더 이상 소통되지 않는 언어 탓에 바벨탑 아래서 울고 있을 이유가 없게 된 것이다. 돌무더기의 빈 공간에 석고 반죽을 흘려넣은 고고학자 피오엘리 덕에 폼페이를 덮은 화산재 아래 묻힌 것이 건물만이 아님을 알게 됐다. 필사적으로 달렸지만 성벽 아래에 멈출 수밖에 없던 남편은 아내를, 아내는 아이를 온몸으로 감싸고 순식간에 생을 마친 그 순간의 사랑에 천년 후 인간도 눈시울을 붉힌다.

시장에서 대추야자를 고르던 여인, 초원에서 말 달리던 청년의 존재를 사라지게 하는 것은 시간만이 아니다. 전쟁, 질병, 가뭄, 홍수 그리고 반란과 같은 재난은 이들의 삶과 공간을 신화로 봉인했다. 이 책은 그 봉인을 푼 이들에 대한 기록이자 비판이다. 이들은 누가 뭐라든 과거로의 여행을 두려움 없이 멈추지 않았다. 그 여행 덕에 우리는 잠들어 있는 모든 진실이 언젠가는 드러난다는 희망을 만날 수 있다.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르더라도 말이다.

조은정 | 미술사학자·고려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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